확 바뀐 인사제도, 아휴 숨차!
확 바뀐 인사제도, 아휴 숨차!
  • 승인 2004.10.1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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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부장 김씨는 최근 신경정신과 병원을 찾고 있다. 얼마 전 인사담당 이사와 면담을 한 후 잠도 오지 않고 불안초조 증상을 보여서다. 인사담당 이사가 보여준 자료는 그의 부하직원들이 그를 평가한 내용. 평소 일밖에 모르고, 어른들에게 싹싹한 성격인 그는 부하직원들과는 별로 대화가 없는데 부하들이 그에게 '처절하리만큼' 냉정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인사담당 이사는 그 이유를 물었고 개선방안을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그에게 말했다. 상사들과 친해 부장 자리까지 승승장구한 그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물론 하루종일 함께 일하는 부하들에게 배신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의 모 부장은 얼마 전 승진인사에서 탈락했다. 입사후 한 부서에서만 근무하며 성실히 일했으나 경영진측은 "간부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전 분야를 고루 경험해 부하들을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과 넓게 보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승진탈락 사유를 설명했다. 최근 외국 전문업체에서 인사시스템을 도입한 회사에 근무하는 한 여성간부는 "좀 과장되게 말하면 대학입시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치러야 하고 자서전 같은 자기평가서를 써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사평가 변화의 시작은 연봉제

"갑자기 회사의 인사관련 시스템이 바뀌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 기간에 내가 회사에서 이룩한 것, 업무능력 평가, 새로 배운 기술, 다음 기간에 성취목표로 삼은 구체적인 데이터 등을 써내야 합니다. 평소 겸손하라, 잘난 척하지 말라고 교육받아온 데다 연봉에 연연해하면서도 정작 돈과 관련해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거나 협상이나 조정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들은 인사고과 시즌이 되면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평가하듯 근태나 주관적인 느낌 등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던 시대는 지났다. 게다가 삼성을 비롯, 국내 대기업이 "수천 수만 명의 직원을 먹여살릴 인재를 키우고 찾으라"는 인재경영론을 내걸면서 인사고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인사고과 자료 수치로 계량화

이러한 흐름에 따라 국내의 인사평가 방식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배치(승진)'를 위한 것이었지만 현재는 '개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인사평가 변화의 단초는 연봉제 도입이다. IMF 외환위기 전후에 국내기업들이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인사평가제도에 큰 변화가 일었다. 그전만 하더라도 대다수 국내기업의 인사평가는 거의 승진을 위한 것이었다. 월급을 올려주지 않는 대신 승진을 시켜주던 관행이 이어져온 것이다. 이에 따라 인사고과도 직원들 중 누구를 뽑느냐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을 중간만 하라는 것이 성공계명의 하나로 통했다. 일을 잘해봤자 임금은 별 차이가 없고 그렇다고 승진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튀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막중한 일과 책임만 떠안는 것이 다반사였다. 상사와 술자리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나았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인재가 조직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례도 빈번했다. 기업으로서는 큰 손실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봉제 도입 이후에는 '성과'라는 단어가 화두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대기업은 물론 외국계 회사도 개개인의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인사고과를 실시했다. 평가받는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한 자료들을 수치화한 인사고과표를 눈앞에 들이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성과주의'란 슬로건을 내건 것으로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주관적인 평가에 대한 오차를 줄이기 위해 모든 자료를 외부기관에 아웃소싱해서 결과를 뽑아내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적인 기업과 외국계 회사 같은 경우는 실적에 대한 평가에 너무나 철저해 모든 자료를 숫자화해서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여 불필요한 인력과 조직을 과감히 잘라내자는 것이 과학적인 분석기법을 통해 철저히 인사고과를 행하는 이유다. 또 평가받는 개인에게 인사고과는 연봉을 얼마나 더 받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새로운 '역량고과' 도입 활용

물론 모든 것이 실적에 대한 수치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많은 평가자를 동원해 판단의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노력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이제 상사에게만 잘 보이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는 시대는 일부 앞서가는 기업에서는 옛날얘기에 불과하다. 한국전력 등 일부 기업의 직원은 같은 부서와 업무관련이 있는 다른 부서의 상사, 동료와 후배 등 최소한 대여섯 사람으로부터 다면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평가내용에 대해 본인이 수긍하지 않을 경우 치열한 토론을 통해 가감한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큰 흐름은 대다수 대기업들이 '성과'와 동시에 '역량'도 평가하는 것이다. 역량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 초 국내기업에 소개된 이래 많은 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인사업무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기업이라면 십중팔구 직무고과와 함께 역량고과를 직원평가의 한 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역량이라는 개념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보인 이유는 개념적으로 역량이라는 것이 기존의 평가에서 사용하던 태도나 능력이라는 요소보다 실제 수행(performance)에 훨씬 가까운 것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의 직원들은 고과양식에 나열된 능력과 태도라는 고과요소의 타당성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하던 상황에서 등장한 역량이라는 개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더욱이 인사평가에 '승진'과 '배치'뿐 아니라 '인재육성'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면서 역량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사실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유행처럼 번진 연봉제는 도입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조직 내부에 미비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은 성과주의제도 도입 이후에 그 제도 실행을 위한 제2단계 성과주의의 출발점으로서 역량에 주목하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증권사의 인사담당 부사장은 "인사평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면서 "이제는 평가에만 그칠 게 아니라 개발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역할을 역량이 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역량부문을 아예 없애고 회사에 '공헌'한 것만을 따지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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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역량'의 차이

역량이라는 개념은 1973년 매클러랜드가 처음으로 제기했다. 그가 정의한 역량이란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우수 성과자가 나타내는 차별적인 행동특성, 지식, 기술 등의 집합이다. 역량과 비슷한 개념으로 기존에 사용돼온 용어가 바로 '능력'이다. 그렇다면 능력과 역량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기본적인 관점에 차이가 있다. 기존의 능력평가 항목을 보면 능력과 성과의 직접적인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능력 따로, 성과 따로'란 생각을 가지고 평가제도를 운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역량은 전략실행을 위해 필요한 직무들을 정의하고, 그 직무들을 최고로 잘 수행하기 위한 행동특성이 무엇인가를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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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고과자의 자세


상당히 입이 무거운 직장인이라도 인사고과에 대해서는 꼭 한마디씩 한다. 인사고과가 자신의 이해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인사고과가 그만큼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사고과자의 자세를 양병무 인간개발연구원장을 통해 들어봤다.

1. '판사가 재판을 한다'는 진지한 자세로 평가를 해야 한다.

고과 결과에 따라 연봉이 차등화될 뿐 아니라 승진 승격 교육훈련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고과의 중요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2. 인사고과에 자신감을 갖도록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업무와 평가에 대한 자신감을 지적한다. 고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려면 그것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과를 하다 보면 현혹효과, 관대화 경향, 중심화 경향 등 여러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과자는 피고과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사실에 입각해 판단해야 한다. 단순히 감으로 하는 인사고과에서 탈피해 지도하고 관찰한 기록에 근거해야 한다.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고과에 필요한 사항들은 가능하면 기록으로 남기는 노력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고과 결과에 대한 입증책임이 고과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피고과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자신있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3. 개방적이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보화시대의 리더는 감독에서 코치로 변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와 파트너십을 형성해 함께 뛰어야 하는 것이다. 고과자가 모범을 보일 때 피고과자가 비로소 고과 결과를 수긍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남을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따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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