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비정규직 절반 넘어...직업관·산업 변화 반영
자발적 비정규직 절반 넘어...직업관·산업 변화 반영
  • 남창우
  • 승인 2006.12.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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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국회에서 의결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4년여 진통끝에 어렵사리 이뤄낸 사회적 합의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같은 일을 하고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나 여러 근로조건 등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시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 근로자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상징적이지만 임금 이외에도 사용자 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이가 크다면 실제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활될 가능성은 낮아 진다. 노동계와 사용자측의 2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의 연구(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 후마니타스. 2006)에 따르면 유럽 13개국의 경우 임시직 노동자 중 상용직으로 이동하는 노동자의 비율은 1년 이내 이동이 21~56%, 2년 이내가 34~71%였다. 반면 2년 뒤에도 여전히 임시직으로 남아 있는 비율은 25~50%에 달해 나라에 따라서는 임시직 노동자의 절반이 고용된 지 2년이 되어도 여전히 임시직으로 남았다. 임시직이 가교로서의 성격과 함정으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비정규직 근로자는 2004년 이후 540만명대에서 정체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1.1% 줄었다.<노동부 자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간 비정규직의 15% 정도만 정규직으로 이동해 많은 수가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유럽 13개국의 절반 수준이다. 또 노동시장의 양극화 정도가 심해 우리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그 자체로 함정이다.

비자발적 비정규직에 정책 배려 집중해야

함정을 가교로 바꾸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을 원하는 비정규직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정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정규직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06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2006년 현재 546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 35.5% 수준이다. 그런데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비정규직의 선택동기 중 절반이 넘는 280만명은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중 자발적 선택은 51.5%, 비자발적 선택은 48.5%였다. 특히 파견근로와 한시적 근로에서 자발적인 선택 비중이 각각 58.4%, 57.3%로 높았다.

비정규직의 선택동기는 자발적인 경우가 51.5%, 비자발적 48.5%였다. 특히 자발적 비중은 파견근로와 한시적 근로에서 높았다.

자발적인 선택의 이유는 ‘근로조건에 만족한다’가 42.1%로 가장 많았으며, 안정적인 일자리가 28.0%였다.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자리가 불안하거나 근로조건에 불만족하는 것은 아니라는 답변이다. 단기 프로젝트 성격이 강해 한 회사에서는 일시적인 업무로 단절되지만 용역이나 파견회사에 소속돼 오히려 일자리의 안정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력을 쌓아 다른 직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육아와 가사 등을 병행하기 위해서, 학업이나 직업훈련 등 취업준비를 병행하기 위해서라는 답변도 17.0%였다. 근무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프리터족(필요한 돈이 모일 때만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지칭)이나 노력한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며 능력을 중시한 답변도 12.9%였다.

자발적 비정규직이 없다는 주장은 해법의 걸림돌

자발적인 선택은 정규직 임금의 87.1% 수준으로 비자발적 정규직 53.9%에 비해 대우도 좋았다. 결국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고, 이들은 다른 직종에 비해 처우도 상대




적으로 높은 것이다. 각종 조사에서 순수한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적 격차를 10~20% 정도로 추정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발적 비정규직은 거의 없고 정규직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비정규직으로 취직을 했다”는 주장은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는 게 걸림돌이 된다.

또 이러한 주장의 경우 비정규직 850만명을 대부분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오산하게 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850만명은 2002년 노사정이 합의한 비정규직 근로자 범위와 통계 방법을 무시한 셈법이다.

비정규직의 수치를 늘려 자신들의 주장이 관심을 끌어내는 데는 설득력이 있을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불필요한 짐만 더 얹어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따라서 정부와 노사의 노력은 일자리가 없거나 능력개발 기회를 놓쳐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비정규직에 머물고 있는 260여 만명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비자발적인 비정규직은 ‘당장의 수입이 필요하거나’(65.2%), ‘취업 불가능’(19.4%) 등의 비중이 높았다. 또 50대 이상, 고졸이하, 일용직 등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도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경력을 쌓아 다음 직장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육아· 가사 등을 병행하기 위하여, 학업·학원수강·직업 훈련·취업준비 등을 병행하기 위하여. 2) 노력한 만큼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근무시간을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 기타. 3)원하는 분야의 일자리가 없어서,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통계청. 2006. 8.>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통과됐지만 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차별판단 기준의 합리적인 마련, 위장 도급을 예방하는 등 관련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260만명의 비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다.

우선 지원할 문제가 비정규직근로자의 능력개발이다. 능력 개발은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촉진해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

이를 위해 노동부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23일부터 능력개발카드제를 도입했다. 능력개발카드제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비정규직근로자가 고용지원센터에서 직업능력개발훈련과정을 수강할 수 있는 카드를 받아 노동부 인정을 받은 훈련과정을 수강하는 경우 연간 100만원, 5년간 300만원까지 훈련비용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비정규직의 디딤돌, 능력개발카드제·EITC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당수가 ‘당장의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여유 시간은 능력개발보다 부족한 생계를 채우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내년부터 도입되는 근로장려세제(EITC. Earned Income Tax Credit)도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년여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임금뿐만 아니라 인력운영 등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의 이점이 남아 있는 한 법안 시행으로 비정규직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친 낙관이다.

또 반대로 고용경직성이 강화돼 기업경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사용자측의 우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그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던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이고,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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