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되는 산재 범위…"수면무호흡증 사망도 인정"
확대되는 산재 범위…"수면무호흡증 사망도 인정"
  • 이준영
  • 승인 2013.12.12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GS건설의 용접 하도급 근로자로 일하던 조모씨는 2011년 숙소에서 잠자던 중 수면무호흡증으로 숨을 거뒀다. GS건설은 산업재해 보상금, 위자료 등의 명목으로 유족에게 2억2000만원을 준 뒤 유족을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러나 공단은 “업무와 무관한 질병으로 사망했다”며 산재 인정을 거부했고 GS건설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조씨가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평균 11.44시간 일하는 등 상당한 과로 및 스트레스 사실이 인정되고 이로 인해 수면무호흡증이 유발·악화됐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공단 관계자는 “수면무호흡증이 산재로 인정받은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인정 판정을 뒤집는 경우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공단이 질병 산재를 불인정해 제기된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는 비율은 2009년 9.4%에서 2011년 11.4%, 올해 10월까지 19.8%로 증가 추세다. 최근 4년 동안 패소율이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산업계 등에 따르면 부상에 비해 질병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받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질병의 원인이 복합적인 경우가 많아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지 밝히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비율은 부상의 경우 95%에 이르지만 질병은 30~40% 수준이다. 지난 1월에는 퇴근 후 잠을 자다가 돌연사한 권모씨의 가족이 6년 소송 끝에 산재를 인정받았다.

부산고법 제2행정부(부장판사 문형배)는 “주야 교대 근무와 월평균 100시간의 시간외근로 등 과로가 원인이 됐다”고 판단해 권씨의 산재를 인정했으며 공단이 상고를 포기해 확정됐다. 임상혁 녹색병원 노동환경연구소장은 “공단이 산재 인정을 점점 더 엄격하게 하는 추세여서 돌연사는 법원이 아니면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 산하 질병판정위원회는 위원 대부분이 의사여서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본다”며 “반면 법원은 공단에서 거의 고려하지 않는 인과관계 개연성, 사회적 가치 등도 보다 더 감안하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박종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법원의 산재 판단 근거를 공단이 빨리 파악·대응하지 못해 패소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단은 허리 어깨 등을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나이가 많이 들어서 생기는 ‘퇴행성’ 요소가 있으면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작업환경이 허리를 구부리는 자세를 많이 취해야 하는 등 퇴행성 질환을 악화시켰다’고 판단되면 산재로 인정한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일하다가 생긴 병에 대해 근로자들이 일일이 법원에서 시비를 가리게 하는 건 산업현장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근로자에게 이중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