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하청근로자는 이기고 KTX 승무원은 진 이유는
현대차 하청근로자는 이기고 KTX 승무원은 진 이유는
  • 이준영
  • 승인 2015.02.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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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 근로자들과 KTX 여승무원들의 근로자 지위에 관한 판결을 하면서 진정한 도급계약과 위장 도급계약을 구분하는 구체적 기준을 내놨다.

대법원은 ▲도급인(원고용주·위탁 또는 협력업체)이 수급인(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업무수행에 관해 상당한 지휘·감독 명령을 하는지 ▲도급인 소속 근로자와 수급인 소속 근로자가 함께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지 ▲근로자의 근무 관리를 누가 하는지 ▲도급인 소속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수급인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는지 등의 요소를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의 경우 자사 소속 근로자들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상당 부분 동일한 업무를 맡겼으며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직접 지휘·감독했으므로 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현대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현대차 소속 근로자들과 함께 거의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현대차의 필요에 따라 업무가 구체적으로 결정됐고, 현대차가 미리 작성해 나눠준 각종 조립작업지시표 등에 따라 동일한 작업을 단순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협력업체의 전문적인 기술이나 자본이 투입될 여지가 없었다.

이런 점을 들어 대법원은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코레일을 상대로 소송을 낸 KTX 여승무원들의 경우에는 이들의 업무가 코레일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분리되는 것이며, 이들에 대한 지휘·감독도 코레일이 개입한 부분보다는 이들을 고용한 위탁업체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진 부분이 크다고 봤다.

KTX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소속인 열차팀장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긴 했지만, 코레일이 승무분야 업무를 안전 부분과 승객서비스 부분으로 나눠 안전과 관련한 부분은 열차팀장에게 맡기고 객실온도 조절, 승객 인사, 안내방송, 승차권 확인 등 안전과 직결되지 않은 서비스 부분을 따로 떼어내 여승무원들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열차팀장의 업무와 여승무원의 업무가 동일한 공간 내에서 수행되고 서로 협조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각 업무의 내용이나 영역은 구분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화재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여승무원도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아 화재진압 및 승객대피 등 활동에 참여하게 돼 있지만, 이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당연히 조치에 불과하고 여승무원의 고유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또 철도유통이 '고속철도승무원 운용지침' 등 규정을 마련해 이에 근거해 KTX 여승무원의 채용·승진·직급체계를 결정했고 자체 교육계획을 수립해 직접 교육 및 근무평가를 실시한 점을 들어 여승무원들에 대한 지휘·감독이 위탁업체 독자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열차팀장이 KTX 여승무원의 업무 수행을 확인하도록 되어 있던 규정에 대해서도 "업무상 감독이라기보다는 위탁협약의 당사자가 보유한 권리의 행사로서 위탁협약 내용에 맞춰 제대로 이행됐는지를 확인하고 감수하는 절차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근거들을 들어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과 철도유통과의 근로계약이 명목적·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며 사실상은 코레일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했다는 여승무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급 계약이 진정한 것인지 위장의 성격을 띠는지를 판단하면서 대법원이 내놓은 이번 기준은 앞으로 사내 도급계약의 합법성을 따지는 주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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