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중독 조직
[신간 안내] 중독 조직
  • 김연균
  • 승인 2015.06.1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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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역기능적 조직에 저항하지 못하는가?

가정에서 시작해 학교, 직장, 종교, 시민단체, 넓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조직에 몸을 담는다. 이들 조직은 때로 우리 삶을 고양시키기도, 나락에 빠뜨리기도 하며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싼 조직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 통합을 외치면서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정부, 가족 같은 기업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일하는 사람을 착취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기업, 영적인 구원을 이야기하며 현세의 부패와 부정의에는 적극적으로 눈을 감는 종교 등, 조직이 일삼는 거짓말과 사기는 너무나 흔하다.

오랫동안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을 비롯해 종교단체,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직을 컨설팅 해 온 저자들은 오늘날 광범위한 조직이 공통된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질병이 직접적으로 조직 구성원의 삶뿐 아니라 전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질병은 다름 아닌 ‘중독’이다. 『중독 조직』은 중독이라는 병리적 현상을 통해 조직, 더 나아가 이 사회를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책이다.

알코올중독자처럼 행동하는 조직

무엇이 조직의 혁신을 방해하는가? 저자들은 중독 과정과 중독 행위에 깊이 매몰된 조직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중독에 빠진 개인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중독자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며, 중독물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몸과 정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저자들은 이와 같은 개인 중독자의 특성을 조직 수준에서도 똑같이 발견한다. 일례로 조직의 목표가 그 조직이 내건 공식적인 사명이나 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모순되더라도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부인하고 폐쇄적인 조직 시스템을 긍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조직의 행태는 중독물이 중독자를 그가 실제로 인식하거나 느끼는 것과 단절시켜 서서히 인지적․정서적 마비 상태에 빠뜨리는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두 저자는 이처럼 “중독이라는 질병, 또는 중독적인 세계관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스스로가 개인 중독자처럼 행위하는” 조직을 가리켜 ‘중독 조직’이라 부른다. 우리가 지금껏 ‘정상’이나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은폐해 온 조직의 문제들에 처음으로 ‘중독’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그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언까지 책 한 권에 꾹꾹 눌러 담았다.

중독적 행동이 어떻게 정상적인 규범이 되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 가운데 수도원장이 알코올중독자인 독일의 어느 오래된 수도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의 알코올중독은 수도원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지만 누구 하나 수도원장의 행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수도사들마저 알코올중독과 섹스 중독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반 기업에서도 흔히 벌어진다. 특히 조직 내 핵심 인물이 중독자인 경우, 그들의 중독적 행위는 조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이상하리만치 문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구성원 대부분이 이 비정상적인 상태를 너무도 쉽게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중독자를 보호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중독자가 이상한 행동을 보여도 “회사가 다 그렇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진짜 문제를 외면한다.

섀프와 패설의 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어쩌면 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이들, 즉 동반 중독자들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동반 중독자는 “중독자와 결혼 관계, 또는 그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중독 행위에 장기간 노출되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대체로 “훌륭한 순교자”에 해당하는 이들 동반 중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타인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 시스템은 동반 중독자들이 이타심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이러한 동반 중독자의 공모와 협조가 없다면 중독자 혼자서는 중독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 책의 가장 핵심인 3부를 보면 중독자와 동반 중독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조직을 어떻게 중독 조직으로 이끄는지가 상세히 나온다. 일단 중독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누구도 중독적 행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저자들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중독적 현실을 직시하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밟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이 드는 사례를 보며 중독 조직이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종류의, 모든 수준의 조직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모든 조직을 일거에 치료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 쉽게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회복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회복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소상히 담은 결론을 읽다 보면 저자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어진다.

우리 모두가 질병의 일부이다

섀프와 패설은 이십 년 전에 이미 “생존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신조”가 미국 사회에 자리 잡는 것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새로운 시대의 가치가 사기, 기만, 협잡, 그리고 무책임이나 극단적인 자기중심성 같은 중독 조직의 증상을 더욱 심화시키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 예상이 슬프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현상을 목도한다. 중독이 우리의 감각을 서서히 마비시켜 오로지 “한 방의 해결책”인 중독물을 얻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게 하듯, 사회 전체가 이윤만을 좇아 가없는 생존 경쟁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비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 감각이다.

저자들이 말하듯 “우리 사회에 중독 과정이 규범처럼 수용되는 이상,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이 중독 과정에 어떤 방식으로든 동참”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라도 시스템을 동시에 바꿔 내야 하는 것이다. 구성원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좀비 같은 상태”로 남아 있길 바라는 사회가 다름 아닌 중독 사회라면, 중독 조직은 그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그 접착제를 헐겁게 하려는 시도들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로운 통찰과 구체적인 대안을 담고 있다.

지은이 : 앤 윌슨 새프, 다이앤 패설 / 옮긴이 : 강수돌 / 출판 : 이후 / 02-3141-9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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