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만족 사례-DPI, 떠났던 동료 전원을 다시 품에 안은 뜨거운 협력
근로자만족 사례-DPI, 떠났던 동료 전원을 다시 품에 안은 뜨거운 협력
  • 승인 2001.07.16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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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설립되어 페인트·잉크 산업의 외길을 걸어온 기업. "노루
표"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1956년 업계 최초로 자체 연구소
를 설립하는 등 기술 개발에 주력하여 도료를 국내의 주요 수출산업으
로 키워온 기업이기도 하다. 주 생산품은 자동차용, 건축용, 선박용,
인쇄용 도료.

2000년 창립 55주년을 맞아 대한페인트·잉크에서 "DPI"로 회사명을
바꾸고 21세기 비전을 새롭게 결의했다.


1996년 DPI는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당했다. 제품창고와 원료창
고가 잿더미로 변한 큰 화재였다. 당시 업계에서 "노루표는 이제 끝났
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피해는 심각했다.

그러나 DPI는 불과 2개월 만에 복구작업을 마치고 오뚜기처럼 일어섰
다. 기적같은 이 이야기는 노조가 연출하고, 모든 근로자가 배역을 맡
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노조는 즉각 비상근무를 선포하고 무보수 철
야근무, 무보수 휴일근무를 선언하였다. 근로자는 퇴근도 잊은 채 복
구작업에 매달렸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던가. 불의의 화재로 창립 이래 처음
으로 적자를 보았지만, 이를 계기로 DPI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친구를
만났다. 겉으로 드러난 극단적인 상황은 없었지만, 내부적으로 대립해
오던 노사가 마침내 마음을 열고 손을 잡은 것이다.

1997년에는 화재보다 끔찍한 외환위기가 들이닥쳤다. 대형 매출처였
던 기아자동차가 부도에 빠지고, 시장이 침체되면서 회사는 심각한 경
영 위기에 직면했다. 가동률은 50%로 떨어졌고, 재고는 쌓여갔다. 게
다가 받을 수 있을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미수금은 늘어만 갔다.

회사는 가급적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방
법을 찾았다. 어찌 회사를 위해 헌신해온 가족같은 근로자를 내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공멸할 지 모
른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대두되었다. 노조는 고용조정이 피할 수 없
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노사 합의로 고용조정을 단행하던 그날,
회사는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재고용할 것을 눈물로 약속하였다.

회사에 남은 근로자는 노조를 중심으로 다시 회사 살리기에 앞장섰
다. 노조창립일, 회사창립일 등의 휴무일을 자진 반납했다. 낭비 요인
을 찾아 없애는 원가 절감 운동에 앞장섰다. "내가 열심히 일해야 회
사를 떠난 동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DPI는 외환위기라는 어둠의 터널을 벗어났다. 1998
년에는 32억원, 1999년에는 132억원, 그리고 2000년에는 156억원의 경
상이익을 실현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회사를 떠났던 동
료들도 100% 제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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