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과 경제력 집중 막아야 경제민주화 된다"
"독점과 경제력 집중 막아야 경제민주화 된다"
  • 승인 2005.02.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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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봉의 경북대 법대 교수

지난해 12월 논란을 거듭하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중 경제력집중억제와 관련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존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제한 강화 등은 일단 공정위의 원안대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는 여전히 기업투자의 제한,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및 적대적 M&A 위험 등을 들어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전경련이 최근 공정위의 역할변화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공정거래법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보호

여기서 역할변화란 공정위의 경제력집중 억제기능을 폐지하라는 종래의 주장과 동일하다. 그러나 전경련보고서의 논리는 한마디로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와 왜곡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정거래법의 이념은 헌법상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에 있다. 경제민주화란 정치적 의미의 ‘데모크라시’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독점이나 지나친 경제력집중을 방지함으로써 경제주체간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기능할 때에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소수의 재벌에 국부(國富)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그 결과 시장에서 경제주체간에 지나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며, 재벌기업의 지배가 총수일가에 의해 좌우되고 자자손손 이어지는 경제시스템은 현대판 군주제와 다를 바 없고, 경제민주화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의 자유는 사적 권력이 민주국가의 힘보다 커지도록 용인될 경우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재계가 출자총액제한 등의 폐지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경제력집중의 문제를 주로 재벌의 소유·지배괴리, 즉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전체를 지배하는 데에서 찾는 최근의 논의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지나친 경제력집중은 균형발전 위협

정부가 개별 기업내부의 지배구조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배구조가 아무리 선진화되고, 효율성과 경쟁력을 약속하는 듯 보이더라도, 지나친 경제력집중은 개별시장의 독과점과 무관하지 않고, 나아가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및 지속적 성장잠재력을 위태롭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재벌현상은 소유집중·시장집중 및 일반집중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역할을 좁은 의미에서의 경쟁정책 뿐 아니라 ‘시장경제의 기능보호’라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파악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행사도 고객이 일시 맡겨놓은 돈으로 총수의 계열지배를 유지·확대하여 일반집중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기업지배시장’(market for corporate governance)의 기능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기에 규제하는 것이다.

실익없는 논쟁 대신 집중 억제수단 개선 지혜 필요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우려는 몇몇 재벌이 기존의 지배구조를 시장에서 효율적인 경영성과로 지켜내기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경영권보호를 운운하는 것은 실상 총수일가의 세습적 지배를 불가침의 권리로 보호해주거나 적어도 눈감아달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편 경제력집중억제가 필요할 경우, 이를 어떤 법률에 규정하고, 그 규제기관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험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법률과 규제기관은 실로 다양하며, 출자총액제한 등의 경우 입법자인 국회가 공정거래법과 공정위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였고, 시장경제질서를 수호할 책무를 지닌 공정위가 다른 어떤 정부기관에 비하여 객관적인 입장에서 재벌을 규제할 전문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실익 없는 공정위의 역할논쟁 대신 경제력집중 억제수단의 보완·개선책을 모색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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