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반찬 시장도 내거야
대기업 반찬 시장도 내거야
  • 승인 2003.08.0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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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커피숍-빵집 등 중소업체 영역까지 진출... 문어발 경영 비판도
2002년 9월 한국 신흥 부촌의 대명사로 떠오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 워팰리스 인근에 문을 연 한 반찬전문점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 다. 이유는 "한국 최고의 상류층은 과연 어떤 반찬을 즐겨 먹을
까" 하 는 호사가들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당시 화제를 모았던 주인공은 종가집김치로 유명한 대기업 계열사인
( 주)두산식품BG의 "데이즈". 15평 크기인 이 가게는 반찬 장사가 사
업 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안테나숍"인 동시에 최고의 입맛을
공 략할 수 있는 체크 포인트인 셈이다. " 데이즈"에서는 김치-젓갈-
조림-튀김-전-나물 등 70종의 반찬을 판다. 가격은 재래시장의 반찬가
게에 비교해 10~15% 비싸지만, 나물 1일, 조 림 2~3일 등으로 유통기
한을 지켜 철저한 위생관리를 하는 점을 내세 우고 있다.

반찬류 브랜드 개발 젊은 주부 공략 두산식품BG 관계자는 "김치를 사
먹는 것이 보편화된 것처럼 반찬도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보편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도곡동과 압구정동, 경기 분당 등 3곳에 직영
점을 두고 있지만 반응이 좋을 경 우 체인망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
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대기업의 반찬 시장 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
리도 있지만 글로벌 시대에서 고품질의 고객 서비스는 불가피한
일"이 라면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철저한 위
생관리 와 품질 향상 등 긍정적인 면도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래시장이나 할인점, 백화점 매장 안에 반찬 판매 코너가 있
기는 했지만 대기업이 반찬전문점 시장에 뛰어들기는 두산이 처음이
다.

두산은 또 반찬가게 진출과 함께 새로운 반찬류 브랜드 "찬품"을 개
발, 식품 부문 사업을 확대했다. "찬품"은 "제대로 만들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반찬"이라는 제품 컨셉트를 갖고 있다. 가족 건강에 대
한 관 여도가 높은 30~40대 초반의 주부를 주요 고객으로 설정하고 적
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두산 종가집김치 장석문 마케팅팀장은 "그동안 국내 반찬류 시장은
영 세업체 위주의 산업으로 인식되어 제조 과정과 위생에 대해 소비자
가 신뢰를 가질 만한 브랜드가 없었다"면서 "최근 소비자의 라이프 스
타 일과 소비행태의 변화로 김치와 마찬가지로 반찬을 필요한 만큼 매
일, 혹은 자주 사먹는 고객이 증가함에 따라 시장의 성장 잠재성이 매
우 높아 이 시장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두산의 반찬 시장 진출은 국내 반찬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은 방
증하는 동시에 중소업체의 고유 영역으로 여겼던 먹을거리 시장에 본
격적인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의미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같은 대기업의 반찬 시장 진출에 대해 상당수 영세상인은 당혹해하
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7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ㅅ씨(40)
는 "백화점 등 대형 업체의 공세로 최근 들어 20~30대 손님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반찬 시장
진출 은 가뜩이나 힘겨운 영세상인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꼴"이라
며 "대형 반찬가게에 맞서려니 조미료도 안 쓰고 고급 재료만 넣는데
도 돈벌이 가 시원치 않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올해 국내 반찬 시장이 5천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
다. 아직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매년 10% 이상의 성
장세 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을거리 시장에서 대기업이 반찬 시장과 함께 앞다퉈 신규 진출하고
있는 분야는 밥장사-커피숍-빵집 등이다. 물론 패스트푸드점 등 외국
계 외식 사업에 대기업이 진출한 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중소업체
전유물로 여겼던 반찬 시장 등의 업종에 대기업이 앞다퉈 뛰어든 것
은 불과 1~2년 사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기업의 변화 바람이 예전
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회귀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불황이 장기
화 되면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란 비판도 일지만 매출을 끌어올려
야 한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자들 영역까지 손
을 대 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내놓고 있다. 선진 시스템 도입으로 보
다 위생적이고 과학적인 제품 생산과 유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폐지되면 더 늘 듯 중견기업인 삼양사는 최근 서
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입구에 카페형 빵 집 "믹스&베이크" 1호점을 열
었다. 매장에서는 케이크-샌드위치-빵- 샐러드-수프 등 식사 대용 먹
을거리와 커피-생과일 주스-스무디 아이 스크림 등을 만들어 판매한
다. 특히 무농약-저농약 야채로 만든 샐러 드, 각종 곡물이 추가된
빵, 녹차가 들어간 푸딩, 유기농 완제품 등 건 강식품을 중점적으로
판매한다.

대한제당도 최근 두산의 카페네스카페를 인수하고 커피전문점 사업을
시작했다. 일찌감치 외식업체 베니건스를 연 오리온그룹은 올 연말쯤
강남에 3층 규모의 최고급 중국식당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CJ그룹은 밥장사를 통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CJ는 밥장사를 하
는 CJ푸드빌, CJ푸드시스템과 빵장사를 하는 뚜레쥬르 등 여러 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신촌에 빵가게를 카페식으로 꾸민 "투
썸 플레이스"를 오픈해 빵 사업 확장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동원그룹도 63빌딩 외식사업부를 인수한 뒤 밥장사를 개시했고 최근
엔 커피숍, 건강보조식품 사업에 진출했다. 동원그룹은 밥장사를 통
해 연 간 3백50억원의 매출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신천역 인근에서 빵집을 하고 있는 ㄱ씨(56)도 "국가 경
제를 떠받치는 주요 산업에 역량을 모아야 할 대기업이 앞다퉈 동네
골목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막강한
자 금력과 마케팅 기법을 동원할 경우 영세업체의 도산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오는 9월 중소기업 고유업종 규제 법안이 폐지될 경우 대기업
의 중소업종을 향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 이다. 산업자원부는 중소기업만 생산할 수 있도록 돼 있는 중소기
업 고유업종 지정제도를 단계적으로 해제키로 했다. 중소기업 고유업
종 지정제도가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쟁을 통한 제품 생산성 확보에 걸
림 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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