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폐지 아직은 이르다
출총제 폐지 아직은 이르다
  • 승인 2006.03.2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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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자율감시 여건 조성 안돼…내년 재검토

이동규 공정거래위 경쟁정책본부장

지난 2004년말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론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주로 제기되는 주장들은 공정위 경쟁촉진 기능과의 상충, 투자저해, 적대적 M&A 위협, 글로벌 스탠더드에의 저촉 등이다.

그러나 이 사안들은 지난 2003년 12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수립과 2004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 과정에서 위헌문제까지 포함해 이미 충분히 논의된 내용들이다.

전문 연구기관의 실증분석, 각종 설문조사 및 헌법학자 등 전문가 의견을 통해 점검해 본 결과 근거가 없거나 문제되지 않는 것으로 이미 판단된 것으로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경쟁당국은 시장경쟁을 촉진하여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같은 대기업 집단 정책(이른바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도 기업집단 중심으로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온 우리 경제상황의 특성에 따라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촉진 차원에서 운용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도 지적한 재벌 문제

이 제도의 근본목적은 독과점 시장구조 및 진입장벽 구축 등 공정한 시장경쟁질서의 왜곡 방지, 기업집단 계열회사와 독립 중소·중견기업과의 불공정한 경쟁차단 등을 통해 시장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데 있다.

선진국 등 세계 각국도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력 집중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그 규제방식과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을 뿐이다. OECD도 2004년 5월 개정된 기업지배구조원칙을 통해 기업집단체제가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의 추구, 부당내부거래 등 남용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면서 효과적인 교정수단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가족그룹 형태로서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가 매우 크고 금융자본까지 지배하는 혼합ㆍ복합그룹 형태로서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큰 우리 대기업 집단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 필요성은 더욱 큰 것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교수도 최근 한국경제의 문제점으로 대마불사, 시장독점, 정치적 영향력 등 재벌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또 출총제에 대해서는 “실패할 경우 국가경제시스템에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는 대기업 출자에 대해 일정한 수준의 정부규제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경제전문가 73% 대기업 정책 완화 반대

우리 국민들도 대기업의 국민경제적 기여도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향후 대기업의 규모가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민간경제연구소와 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대기업들의 과거 또는 미래 기여도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대기업의 미래 규모에 대해서는 과반수인 54.9%가 지금이 적절하거나 지금보다 작아져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또 올해 초 모 신문사에서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73%가 출총제 등 대기업 정책의 대폭 완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정부는 출범 직후 시장개혁이 참여자들의 동참하에 방향성을 갖고 예측가능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팀에서의 논의를 거쳐 지난 2003년 12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수립· 발표한 바 있다.

출총제에 대해서는 2006년까지는 그 골격을 유지하되 4가지 졸업제도를 새로 도입, 대기업 집단 스스로의 소유지배 구조 개선을 유도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로드맵이 완료되면 2007년에는 시장상황에 대한 종합평가를 거쳐 출총제의 폐지를 포함해 대기업집단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방침도 명확히 제시했다.

그동안 기업·정부 노력 헛되지 않도록

이와 함께 보다 과학적ㆍ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전문연구기관을 통해 시장상황 평가를 위한 다양한 지표들을 만들어 중간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는 아직은 출총제를 폐지하고 시장자율감시에 의한 사후감시로 전환해도 될 만큼의 여건은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출총제를 폐지해야 하는지, 유지 또는 완화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강화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결국 정책적 판단의 문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로드맵을 사전에 제시해 예측가능하고 일관성있게 이를 추진해 오고 있고 많은 기업들도 이에 맞춰 스스로 소유지배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도 2007년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이행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올해에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팀을 다시 구성하여 준비작업도 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론이 다시 제기되는 것은 시장안정을 저해하고 그동안의 기업과 정부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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