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제조업 ‘손익계산서’
한미FTA 제조업 ‘손익계산서’
  • 남창우
  • 승인 2006.08.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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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효과 ① 상품] 관세·비관세·원천기술 장벽 낮아져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는 한미FTA 체결 시 경제성장률이 2% 상승하고 이는 가구당 연 소득(4인가족 기준) 110만 원 증가로 이어지며, 10만 명 이상의 고용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물론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이러한 전망이 반드시 현실화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각 부문별 산업이 한미FTA로 인해 얻게 될 효과를 꼼꼼히 살펴보면 허황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는 제조업 분야의 실익을 짚어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한미FTA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의 관세율이 낮기 때문에 관세철폐나 인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미FTA 협상이 단순히 관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역구제 등 비관세장벽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외면한 단순논리이며, 우리 상품의 대외 신뢰도 강화, 기술이전 촉진, 산업구조 선진화 등 한미FTA로 인한 구조적 선진화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관세 철폐가 전부 아니다

미국은 수입관세율은 낮지만 각종 비관세 무역장벽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쿼터제 등 수량규제 조치만을 취했으나 1970년대 말부터는 반덤핑, 상계관세(수출국이 수출품에 장려금이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 수입국이 이에 의한 경쟁력을 상쇄시키기 위하여 부과하는 누진관세), 특허권 침해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기업들에게 최대의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실제로 미국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55건의 반덤핑 조치를 취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기준으로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에 대해 19건의 규제를 받고 있으며, 1건은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규제 건수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미 수출 제품이 1983~2005년 기간동안 반덤핑 관세나 상계관세 결정에 따라 부과받은 금액은 373억 달러로, 같은 기간 대미 수출액의 7%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나다.

기업 입장에서 반덤핑이나 상계관세를 부과받게 되면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조치 철회 후에도 거래선이 단절돼 사실상 수출을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대응능력이 약한 중소기업에게는 치명적이다.

실제로 PC 강선의 경우 2004년 1월 반덤핑 관세 부과 판정을 받으면서 대미 수출 비중이 2002년 41.8%에서 지난해 8.0%로 떨어졌으며, 폴리염화비닐은 2003년 9월 최종 반덤핑 관세를 맞아 2002년 21.8%이던 대미 수출 비중이 2003년 0.4%로 폭락했다.

지난 4월 무역협회 조사에서도 대미 수출 기업들은 통관 및 위생검역(42%), 기술 및 비관세장벽(19.9%)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한 바 있다.

한미FTA는 이같은 비관세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 협상단은 통관과 무역구제 조치 등 분야를 중요 의제로 설정, 치열한 협상전을 벌이고 있다.

이미 체결된 캐나다-칠레 FTA에서 반덤핑 조치 적용 배제를 관세 철폐와 연계했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역시 반덤핑 당국의 결정에 대한 심사를 양국 간 패널이 맡도록 한 점 등은 고무적이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임호기 팀장은 “관세 철폐로 중국,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낮은 단가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당해온 것을 감안하면 비관세장벽의 철폐나 완화가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 철폐 효과는 교역규모 고려해야

그렇다면 관세철폐나 인하의 효과는 정말 미미한가? 상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수준은 4.9%로 우리의 11.9%보다 낮은 건 사실이지만, 관세율 조정 효과는 양국의 수출입 교역 규모를 감안해 파악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 중 하나인 자동차 시장을 들여다보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완성차 업계는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73만 여대의 자동차를 판매한 반면, 미국 자동차 업계는 4,000여 대 판매에 그쳤다.(산업연구원 자료)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협정 발효 초기에 완성차 및 부품의 관세가 전면 철폐된다고 가정할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는 4,400만 달러를 절감하는 데 불과하지만, 우리는 2억 4,500만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매출액 대비 순익률이 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2.5%의 관세 철폐 효과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팀장은 “우리나라의 자동차 시장 규모는 연간 115만 대 수준이나, 미국의 자동차 시장 규모는 연간 1,700만 대에 달한다”며 “미국과의 수출입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관세율만 놓고 보면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완성차 수입관세 8%가 철폐돼 국내 판매가격이 7.4% 떨어진 후 10년이 지났을 경우 미국 자동차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의 판매는 최대 1만 5,000대로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의 승용차 수입관세 2.5%와 상용차(픽업트럭) 관세 25%가 철폐될 경우 우리 자동차의 미국 판매는 100만 대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미국 현지 생산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FTA로 인한 효과에 의구심을 표하는 지적도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생산 차종을 다양화하고 현지 생산 차종과 수출차종을 차별화할 경우 현지 생산과 수출의 동시 증가가 가능할 것이다.

불리한 결과 예단해 기대효과 폄하 말아야

자동차처럼 관세율이 낮은 품목만 있는 것도 아니다. 중소기업이 주로 수출하는 섬유ㆍ의류, 가죽ㆍ고무, 신발 등의 경우 미국은 10~20%의 고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한미FTA 협상에서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섬유 분야를 보면 관세 철폐가 절실한 상황이다. 세계 최대 섬유 수입국인 미국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섬유수입 쿼터를 완전히 폐지하면서 각국의 쟁탈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섬유 가중평균 관세율은 13.1%로 다른 산업에 비해 높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섬유 업체들의 수출품은 두루 쓰이는 범용품 위주로 가격이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는 상태라서 관세 철폐는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경쟁국인 중국 제품은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관세가 철폐돼도 가격경쟁력을 좁히지 못하는 제품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2008년 올림픽과 2010년 해양박람회를 계기로 생산인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인건비도 크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관세가 철폐되면 충분히 경쟁해 볼 만한 조건이 갖춰지는 셈이다.

협상에서 미국 측이 엄격한 원산지 규정인 ‘원사 기준(yarn-forward)'이나 ‘섬유원료 기준(fiber-forward)'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같은 기준이 관철될 경우 한미FTA로 인한 섬유업계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섬유업계가 대부분 값싼 중국산이나 동남아산 원료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협상을 통해 풀어야 될 숙제이지만, 벌써부터 불리한 결과만을 예단해 기대효과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미FTA가 체결된 후 미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효과도 고려해야함은 물론이다. 이 대목에서는 한미 양국 산업이 서로 비교우위 분야가 명확한 상호보완적 교역구조를 갖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전자제품의 경우 우리나라는 IT단말기, 가전기기, 디스플레이, 메모리 반도체 등이 우위에 있는 반면,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은 생산활동에 필요한 대형컴퓨터, 계측기, 고성능 의료기기 등 한국에서 생산이 어려운 장비가 주를 이룬다. 따라서 우리나라 경기가 호전될 때 자본재 차원에서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지 무관세라고 해서 수입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상호보완적 교역관계…치고 받고 싸우지 않는다

가전에서는 삼성, LG 등 우리 기업의 디자인과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높은 물류비와 AS망의 부재 등을 감안했을 때 미국 제품의 국내 시장 잠식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견해다. 현재 가전시장에서는 미국산 제품보다는 중저가 중국산이 오히려 위협이 되고 있다.

전자산업진흥회가 업계를 대상으로 지난 한 달동안 실시한 설문조사(중소기업 참여 85%)에 따르면 60% 가량의 업체가 한미FTA를 찬성했으며, 25%가 반대, 16%는 관심없다고 응답한 바 있다.

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산 수입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4%에 육박하고 있으나 미국 자동차의 점유율은 0.4%에 불과하며, 관세가 철폐돼도 점유율은 1%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산업연구소와 업계의 분석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상무는 “미국차는 대형 위주이며 높은 임금 때문에 성능 대비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활발히 판매되지 않았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미국차 수입이 증대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이어 “국내 영업망을 갖추고 있는 GM차 수입이 늘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통상은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 받는 것 아닌가. 연간 100억 달러의 대미흑자를 내는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받는 타격이 클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중소기업 영향을 따져보기 앞서, 우선 중소기업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산업연구원이 중소제조기업 1,199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업체의 52.1%가 경영활동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으며, 부정적 영향을 예상한 업체는 12.5%에 불과하다. 특히 섬유 및 의류, 운송장비, 자동차부품, 전기전자제품, 일반기계 등 분야에서의 기대치가 높았다.

중소기업 주축 부품소재 수출 확대될 것

이들은 미국산 수입품과의 경쟁관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교역, 기술, 자본 등에서 미국과의 상호보완적 관계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미FTA로 인해 중소기업이 받는 영향은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품소재 산업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부품소재 역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양국 간 비교우위 분야가 명확한 분업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는 자동차, 전자, 기계 등 분야의 범용 부품에서 가격 및 품질경쟁력이 있는 반면, 미국은 국내에서 생산이 불가능한 첨단 부품소재에서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 따라서 관세가 철폐돼도 국내 부품소재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출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이 비록 섬유를 제외한 부품소재 분야에서의 관세가 2~3%대로 낮은 편이지만 우리가 수출하는 범용 제품이 가격에 민감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철폐 효과는 작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부품의 경우 지난해 미국의 부품 수입의존도는 30%이며 액수로는 850억 달러에 달한다. 산업연구원은 한미FTA 협정 발효 10년 후 국내 완성차 업체의 미국 현지 생산이 60만 대에 달하고 우리 부품 수입 비중이 30%를 차지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대미 자동차 부품 수출은 지난해 12억 780만 달러에서 27억 달러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더군다나 미국의 GM과 포드 등 자동차회사는 부품의 해외 조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GM은 지난해 6월 중국, 한국, 인도 등에서 부품 조달을 확대할 방침임을 밝힌 바 잇다.

최근 미국은 제조업 원가나 품질 경쟁력의 약화로 부품소재의 생산 및 조달을 아시아지역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으며, 부품소재의 구매 일원화를 통한 세계적 조달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첨단 부품소재와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우리의 고품질 저가 생산기능을 이용하는 구조가 활성화되면 중ㆍ고급 부품소재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인근 아시아 개발도상국이나 북미지역으로 수출하는 분업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한미FTA는 이처럼 관세 철폐 등으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산업의 구조를 보다 선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FTA로 원천기술에 다가선다

경쟁의 촉진을 통해 산업 간 혹은 산업 내 자원 배분이 효율화될 것이며, 기술ㆍ투자 세계 1위인 미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되면 경제성 높은 자본재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며 선진 기술과 경영기법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건이자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인 원천기술 확보의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또한 핵심ㆍ원천기술과 차세대 성장동력 등 신산업, 기술과 자본 격차가 큰 산업을 중심으로 협력이 이뤄질 경우 기술ㆍ자본 축적 효과는 매우 커질 것이다.

특히 우리 제품의 대외 신인도 향상은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상무는 “미국 현지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면 그 국가나 제품을 신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며 “우리 제품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FTA는 기본적으로 경쟁의 촉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분야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무역조정지원법을 제정, 내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정부는 이 법을 통해 향후 10년간 FTA 피해를 입은 기업에 2조 6,400억 원, 근로자에게는 2,073억 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무역조정지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면 자금, 인력, 기술, 판로, 입지 등 구조조정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또 경영안정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융자 지원도 이뤄진다.

지원대상 근로자는 전직 또는 재취업을 위한 정보를 제공받고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전직 혹은 재취업하는 사업체에 일정부분 정부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무역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통상국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미FTA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돌파구로 선택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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