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법개정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법개정이 아니다
  • 승인 2007.07.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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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임금과 고용의 무게중심 등 사회적 합의 필요

비정규입법이 시행된 지 불과 2주도 안돼 재개정을 검토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신세계, 홈플러스, 우리은행, 부산은행,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이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반면 이랜드 등 일부 기업은 해고, 외주·용역화를 서두르는 등 상반되는 양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차별시정 범위가 중소기업으로 확장되는 2008년에 비정규입법이 비정규직 확산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시장에 맡겨 풀지 않고 법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입법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비정규 내부에서도 기업규모에 따라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재개정 목소리의 배경이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법개정이 아니다.

법 개정논의는 과거 사회적 논란 되풀이할 것

첫째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다시 재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비정규직 입법을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이 커지면서 비정규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문제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은 뒷전에 밀렸다. 이 결과 ‘차별시정’ 즉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하나도 해결하기 어려운 최소선의 입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비정규입법 실행 이전에 이미 우려되었던 것이며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정부뿐 아니라 노사 모두가 자유롭지 않다. 게다가 노사가 재개정을 하자는 것에는 한목소리인 듯 보이지만 그 방향과 내용에서는 지난 시기 이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사회적 비용이 오히려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노사정이 비정규입법을 가지고 씨름하는 동안 비정규직의 삶의 조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지난 3년간 비정규직의 규모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파견은 2004년 8월 0.8%에서 지난 3월 1.1%로, 용역은 2.8%에서 3.0%로 각각 증가했다. 월평균 임금격차는 정규직 대비 65.0%에서 64.1%로 오히려 늘어나는 등 고용의 질이 악화되었다.

이러한 통계지표 이상의 더욱 큰 문제는 한국의 비정규직이 외국의 비정규직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현재 OECD 30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14.5% 수준이며, 이중 70% 이상이 파트타임이고 파트타임의 80% 정도가 여성이다. 또 비정규직으로 근로하는 기간이 정규직 전환의 긍정적 경력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외국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보완’하는 일종의 틈새노동의 성격이 강하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현재 비정규직 중 남성이 49.6%, 여성이 50.4%로 비슷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시간이 거의 차이가 없으며 업무별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규직을 ‘대체’하는 성격이 강하다.

한 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한국 노동시장의 최대 문제점인데 노사정은 구체적인 현실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대세라고 하거나 그 반대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막아야 한다고만 주장하는데 그쳐 의도하지 않게 비정규 노동시장의 악화를 방치했다.

셋째, 법이 아닌 다른 대책이 있음이 간과되었다.
예컨대 이번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의 결과 약 7만1000여 명의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으로 전환되고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이 기대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보완되어야 할 측면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를 활용하는 것이 공공부문의 경영혁신이나 국민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 공공부문의 외주화가 매우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민간부문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해 상대적으로 나은 임금 및 근로조건을 가지고 있는 외국의 공공부문과 대별되었다.

따라서 공공부문의 혁신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며, 비정규직법 재개정 논의에 앞서 실질적인 삶의 조건 개선이 가능한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해결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법은 문제 해결 위한 '출발선'

넷째, 지난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이 개별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었는지 정확히 파악한 뒤 개정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결국 재개정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검토돼야 할 많은 문제들이 많으며, 비정규직 입법 논의 때문에 가려진 문제들을 오히려 용기있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 비정규 입법이 무조건 폐기되어야만 하는 악법인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 비정규직 입법의 최대 문제는 '임금'과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하나도 잡기 어려운 일종의 ‘정치적 타협’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노사 합의가 어려워 일단 최소선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 비정규직 입법이 일종의 ‘출발선’의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비정규 입법 중 하나인 차별시정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고용형태별 차별 문제를 한 번도 다루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비정규직의 85.3%가 100인 이하 사업장에 있다는 점에서 차별시정의 필요성은 매우 크다. 오히려 차별시정이 보다 실효성이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도 노사는 모두 당장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정규직의 60%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심지어는 5년, 10년 이상씩 반복계약해온 기간제 근로자가 비정규직의 66.4%에 달한 현실을 고려하면 기존의 비정규직 근로의 활용방식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

외국과 달리 실업자보다 근로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일자리 창출에서 반드시 ‘질좋은 일자리’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비록 그 수가 적긴 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사업장들이 존재하며 정규직 전환의 다양한 방식이 논의되는 것 역시 비정규입법의 기여이다.

또 비정규직 입법의 시행과 더불어 그동안 외면되어 왔던 비정규직 현실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것 역시 중요한 진전이다.
비정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비정규입법의 시행을 통해 악화된 것도 아니다. 이미 2000년 이후 비정규 근로자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격렬한 장기 노동쟁의가 발생했고 2005년 1년 이상 장기쟁의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또 이들 비정규 근로자들의 쟁의가 분신, 자살, 점거농성 등 극렬한 형태를 띠는 것은 비정규 근로자의 2.8%만 조직되어 있고 의견개진이나 문제 해결의 통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조건이 매우 열악하기




문이다.

더군다나 2년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의 활용은 당연하거나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져 비정규직의 과도한 사용이나 남용에 따른 문제점이 지적된 적이 없다.


엄밀한 실태조사 선행돼야

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비정규 활용=효율성 제고=경쟁력 강화'라는 도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규직 근로자들 역시 이들을 고용의 안정판으로 생각했다.
비정규 근로를 사용할 ‘자유’만이 있을 뿐 비정규로 근로하면서 경험하는 불평등의 문제는 노사 모두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나친 자유로 인한 평등의 훼손, 효율성의 추구에 따른 형평성의 약화는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비정규직 입법 시행을 통해 부분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람 이외의 별도의 자원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함부로 사람을 자르거나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기업 내부적인 숙련 및 효율성을 현저하게 낮추는 한편 주관적인 고용불안과 단기주의, 한탕주의를 강화시킨다는 사실 역시 이제야 조금씩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비정규입법의 재개정을 논의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법 시행 이후의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통해 비정규 입법의 시행효과를 살펴보고, 상당수 기업이 비정규직 입법을 회피하려고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 실태조사는 6개월 정도의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며 노사 양측의 이견을 좁히거나 정부의 보완적 대책의 근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효과적이다.

다음으로 실태조사에 기초해 보완적인 대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확인되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야 한다. 즉 법의 재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법으로, 행정지도나 별도의 보완적인 정책을 통해 풀어야 하는 것은 행정지도 등으로, 또 보건의료 산별합의에서처럼 노사의 노력을 통해 가능한 것은 노사의 자율적인 협의나 합의로, 마지막으로 사회보장 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회보장책으로 넘겨야 한다.
특히 법이 비정규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양한 보완책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실에 맞는 유연한 법 적용 필요

특히 이미 나타난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기업 규모별로 상이한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은 비정규 근로를 활용하는 이유가 비용보다는 다른 이유일 가능성이 높고, 중소기업으로 갈 수록 비용압박이 크다.

따라서 대기업은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유연화를 인건비 절감이 아닌 임금체계의 개편에서부터 분리직군제 혹은 여타의 방식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중소기업은 비용압박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되 원하청 관계 개선에서부터 정부의 지원에 이르기까지 보다 폭넓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의 경영전략이나 인사노무관리 전략의 변화 없이는 정규직화가 어렵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노동력의 일정부분을 비정규직이거나 보다 유연한 고용형태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사정이 모두 인정하고 비정규직으로 근로한다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교하여 불합리한 처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물론 이번 비정규입법의 핵심이 차별시정이긴 하지만 사업장 수준에서 비교 가능한 정규직이 없을 경우 차별시정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간접고용은 그와 같은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용역의 경우 정규직 임금 대비 48.9% 정도의 급여밖에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들 근로자가 차별시정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차별시정의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기업이 쉽게 외주화를 선택하는 측면도 있다. 만약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유사하다면 기업은 굳이 비정규직을 쓸 이유가 없고 다른 한편 근로자들도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으로 근로하는 것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더불어 비정규직에게는 기업수준의 고용안정보다는 업종 혹은 산별수준의 직업안정이 필요한 만큼 산별 혹은 업종별 ‘취업안정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취업안정 시스템은 구조조정이나 해고 등 다양한 이유로 직업이동을 할 경우 △취업알선에서부터 직업이동시 기존과 유사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표준적인 임금체계의 개발 △취업시 필요한 교육 훈련에 대한 산업 혹은 업종별 수준에서의 지원 △직업이동시 불가피하게 경험하게 되는 실업상태에 대한 생활보조 등이 포함된다.


노사 양보를 통해 상생의 길 찾아야

셋째,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이나 차별시정을 위해서는 노사가 반발짝식 양보해야 할 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지원 등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비용분담이 필요하다.

비정규직의 상당부분은 30인 이하 기업 혹은 비공식부분에 속한 경우가 많다. 이들 사회적 취약계층의 삶의 질에 대한 개선은 기업만으로는 부담하기 어렵고, 오히려 사회보장 인프라의 확대를 통해서 개선이 가능하다.

예컨대 사회보험에 대한 면세혜택이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동의나 지원에서부터 정규직 근로자의 다양한 양보 또는 인건비 외의 다른 비용절감을 위한 사용자측 혹은 노사간의 협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넷째,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중장기적 방향에 대한 노사정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계는 '임금과 고용'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모두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양자의 입장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점에서 임금과 고용 중 어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이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더불어 이러한 과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협의해야 한다.
즉 효율성과 형평성의 딜레마가 해결된 혹은 적절하게 협의된 산업정책, 노동시장정책, 노사관계정책 그리고 사회보장정책의 기본 틀이 무엇인가에 대한 노사정의 모색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 이후 지속되는 비정규 장기 쟁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사관계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노사관계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공식, 비공식적 중재에서부터 다양한 교섭체계의 정착을 위한 법률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정규직의 76%가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별 교섭체계를 선호하며, 일부 업종에서는 업종별 혹은 산별 교섭이나 노사정 협의가 비정규 쟁의를 최소화하고 문제해결의 지름길 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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