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구내식당 대기업 진출 제재
공공 구내식당 대기업 진출 제재
  • 김연균
  • 승인 2012.03.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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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운영의 자유ㆍ고객 선택권 제한 논란
정부는 중견ㆍ중소 급식업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대기업들이 철수하도록 방침을 정했다. 구내식당 급식업을 중소기업 보호 업종으로 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기업 급식업체에서 비정규직 등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중견ㆍ중소 급식업체로 직장을 옮겨야 하고, 공공기관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대형 급식업체가 제공하는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받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외부 급식업체에 구내식당 운영을 맡기고 있는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인천공항공사,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한국공항공사, 한국연구재단 등 86개 기관, 181개 식당이다. 이 중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가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구내식당은 74개다. 한화호텔&리조트가 24개로 가장 많고 삼성에버랜드(17개), 아워홈(14개), 신세계푸드(11개) 등도 10개가 넘는다.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와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공공기관 가운데 올해 상반기 안에 계약이 끝나는 곳은 69곳이다. 하반기에는 63개 구내식당의 계약이 만료된다. 이들 식당은 올해 안에 중견ㆍ중소 급식업체로 운영 주체를 바꾸거나 직접 식당을 운영해야 한다. 나머지 구내식당들도 내년에 계약이 끝나면 운영자를 교체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구내식당 운영은 중소업체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분야”라며 “규모가 큰 기업집단이 대거 진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의 한 관계자는 “작년 매출 2000억원 중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것은 75억원 정도”라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국내 급식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여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기업과의 계약 해지를 ‘의무화’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기업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영업을 제한하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그러나 재정부의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 정부 정책 협조는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중요한 평가항목이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을 위해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은 경영평가단이 핵심적으로 보는 지표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사장 연임이나 임직원 성과급을 좌우하는 것이 경영평가”라며 “1점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공공기관들이 모든 것을 거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은) 전혀 자발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은 정부 정책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내심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기업을 급식업체로 선정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며 “그 이유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바꾸라는 것은 억지”라고 비판했다. 구내식당 운영업체를 선정하는 문제는 노사 협의 등을 거쳐야 하고 업무 성격과 직원들의 다양한 식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도 무조건 중소기업으로 바꾸라는 것은 기업의 자유와 고객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직원 복지와 관련한 구내식당에까지 동반성장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구내식당 운영사업을 중소기업에 넘겨주는 것이 ‘제2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작년 중소 MRO 업체들을 위해 대기업이 공공기관 MRO 사업에서 철수하도록 하면서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대기업과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으나 결국 ‘법적 규정’을 만들어 강제했다. 당시 공공기관들은 “동반성장이라는 명분을 위해 경영 효율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구내식당은 아직 제도화할 계획은 없지만 일단 다른 수단으로 지원하면서 (제도화 여부를)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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