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XX야’ 욕먹는 게 일상인 콜센터 상담원의 하루
‘이 XX야’ 욕먹는 게 일상인 콜센터 상담원의 하루
  • 이효상
  • 승인 2012.06.28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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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웃어야 나도 웃는다, 감정노동자의 비애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A씨는 전화벨이 울릴 때 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증상을 겪고 있다. 전화를 받자마자 욕설과 폭언, 음담패설 등을 내뱉는 고객들 때문에 전화 받기가 겁이 날 정도다. 하지만 본인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고객의 말에 대꾸하거나 먼저 전화를 끊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악성 민원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대응책이 없기 때문에 상담원들은 고객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A씨와 같이 고객 서비스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몸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일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감정노동자에는 주로 정신적 · 육체적 노동말고도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친절을 유지해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해당된다.

지난해 10월 실시한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국내의 서비스직 종사자는 약 540만 명에 달해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해가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이 낯설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인(www.albain.co.kr)이 우리 주변의 감정노동자들의 현황을 짚어보았다.

*‘고객이 왕’ 서비스 정신 아래 인신공격도 감수
우선 감정노동자에 포함시킬 수 있는 직종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제품 판매직원과 은행창구 직원부터 전화상담원, 캐디, 과외 교사까지 업종과 하는 일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감정노동자 안에 속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를 띠고 있는데다, 감정노동의 개념이 아직까지 낯설다 보니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절대적인 서비스 정신의 아래에는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이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는 제품 판매직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면 그 정도는 참아야지’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많고, 기업도 과잉된 고객만족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이들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 노동에 노출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마트에서 판매 일을 하고 있는 B씨는 얼마 전 한 손님에게서 온갖 폭언에 시달렸다. 이미 사용한 제품을 환불해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본사 규정 상 불가능하다고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 손님은 막무가내로 욕설과 폭언을 내뱉었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견디고 삭히는 것뿐이었다.

여자들의 꿈의 직업으로 꼽히는 승무원도 감정 노동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비행기라는 좁고 불안정한 공간에서 짧게는 1시간, 길게는 10시간이 훌쩍 넘도록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언제나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얼굴을 굳혔다가는 즉각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복장에 있어서 회사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화장, 손톱 색깔, 머리 스타일 등 모든 것이 평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승무원으로 막 입사한 C씨는 한 남성 고객에게 화장도 어울리지 않고, 몸매도 별로라며 인신공격 수준의 발언까지 들었다.

이처럼 감정노동자들은 신체폭력보다 더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언어폭력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하지만 생계 수단인 일자리를 쉽게 그만둘 수 없고,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2011년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서비스직 종사자 3,096명을 대상으로 감정 노동 휴유증을 조사한 결과, 26.6%가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어 이들의 피해가 심각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미비한 상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은 곧 매출이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되고, 감정노동자들이 대부분 비정규직 신분인 것도 제도 개선이 힘든 이유 중 하나다.

*감정노동자 처우, 개선의 여지는 보여
불행 중 다행은 감정노동자 문제가 점점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조금씩 개선의 여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 감정 노동자 인권 가이드를 마련하고, 이들을 위한 서명 캠페인도 벌였다. 또한 악성민원으로 몸살을 앓고있는 서울시의 다산콜센터도 해외에서는 1~2회 경고 후 또 반복되면 즉각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반영하여, 이제부터 강력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도 감정노동자들을 위해서 개선 사항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KT의 자회사 KTCS에서 자사 상담원을 대상으로 감성을 치료하는 ‘3E 하트닝’ 교육을 실시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글로벌 기업인 로레알코리아와 샤넬, 클라란스, 부루벨코리아, 엘카코리아 등은 감정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매달 소액의 ‘감정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감정 노동을 인정한다는 것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로레알코리아는 전직원을 대상으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근로자 직무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를 시행하고 있다.

사회에서도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1999년 정신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제정되었다. 2010년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한 건수는 308건에 달하는데, 한국의 15배다. 그 중 79건은 감정노동에 의한 산재로 추정되어 감정노동자 보호에 앞장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 위해 ‘감정적 격리’ 필요
그렇다면 감정노동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선 가장 먼저 할 일은 ‘감정적 격리’다. 쉽게 말해 일은 일이고, 나는 나라고 일과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도 뒤따라야 한다. 보통 근로자들은 근무가 끝난 뒤에 동료들과 술 한 잔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이것보다는 직장과 전혀 관계가 없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좋다.

이 밖에도 땀을 흘릴 수 있는 운동, 요가 등의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몸을 움직이면서 피곤했던 고객, 기분 상했던 일은 잊어버리고 운동 자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스트레스의 강도가 너무 세고, 일상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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