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금 '통상임금 제외' 첫 합의
상여금 '통상임금 제외' 첫 합의
  • 이준영
  • 승인 2014.06.1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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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 본사를 둔 중견 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의 노사가 대법원 판결 이후 국내에선 처음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현대·기아자동차 노조 등 금속노조 산하 노조 대부분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며 강경 투쟁에 나서기로 한 것과 달리, 노조가 회사의 미래를 위해 당장의 이익을 양보하고 사측과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노사는 기존 700%의 정기상여금 중 500%를 성과연동형 상여금으로, 나머지 200%는 명절 상여금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고 12일 밝혔다.

그동안 회사는 명절상여금 100%를 제외한 600%를 두 달에 100%씩 상여금으로 지급해왔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내용대로라면 이 회사의 정기상여금 600%는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 성격이 강해 사실상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과 관련이 없는 성과급으로 돌린 것이다.

노사의 이 같은 합의에 따라 근로자들은 앞으로 업무 성과에 따라 최고 등급과 최저 등급 간에 연간 1700여만원의 임금 격차가 날 수 있다. 노사는 2016년부터 정년을 현재의 58세에서 60세로 연장키로 하고 58세 때는 임금 동결, 59세 90%, 60세에는 80%의 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임금피크제 시행에도 합의했다.

회사 측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인건비가 25% 이상 늘어나 최악의 경영난이 우려됐었다”며 “노조가 통큰 양보를 해 지속적인 투자로 회사 경쟁력 향상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정홍섭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 사이에 통상임금 확대가 임금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근로시간 단축, 특별근무 감소, 고용불안 등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프랑스 계열의 발레오 그룹이 전액 투자한 자동차 부품회사로 현대자동차 등에 ISG(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시동이 걸리고 멈추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는 장치) 등 신개념의 전장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2010년 100일 이상 파업하며 강경투쟁을 고집해온 금속노조 산하 전임 집행부에 반기를 들고 조합원 투표를 거쳐 금속노조에서 탈퇴한 뒤 기업별 노조로 전환해 올해까지 5년 연속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다. 회사 전체 근로자는 800여명이며 1인당 평균연봉은 8000여만원 수준이다. 강기봉 사장은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 복지 향상 등으로 노조의 통큰 양보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임·단협 현장에서는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노동계는 ‘법대로 하자’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재계는 그동안의 노사가 합의해온 임금협상의 ‘신의칙’을 들어 통상임금 범위의 무한정 확대는 곤란하다고 맞서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법원 판결은 상황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고용안정센터 직원 9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누락 수당 등 3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고, 광주지법에서는 철강재 포장회사 누벨 근로자 24명이 낸 소송에서 “회사는 소급분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합의는 일관성 없는 법원 판단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서 해법을 찾은 경우”라며 “성과중심적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통상임금 논란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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