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던트 푸어(student poor)' 34만여명
'스튜던트 푸어(student poor)' 34만여명
  • 이준영
  • 승인 2014.08.27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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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고학생(苦學生)이라 불리는 그들은 취업만 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스튜던트 푸어는 취업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4년제 대학에 적을 둔 학생 수는 2005년 185만9000명에서 2012년 210만3000명으로 24만4000명이 늘어났으나 같은 기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신입 사원 채용 규모는 겨우 9000명만 늘었다.

올해 26세가 됐지만 아직 수도권 한 사립대 3학년생인 양모씨의 한 달 생활비는 15만원, 하루 5000원꼴이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저녁은 학교식당 1700원짜리 메뉴로 해결한다.

밤늦게 공부해 졸린 날엔 1000원짜리 커피에 500원 하는 우유를 타 마시는 걸로 점심을 대신한다. 술값이 부담스러워 술자리엔 안 간다. 영화는 헌혈하면 주는 영화 예매권으로 가끔 본다. 한 살 많은 형(대학생)과 월세 40만원에 26㎡(약 8평)짜리 방을 얻어 사는 그의 가장 큰 사치는 한 달에 한 번 둘이서 치킨을 시켜 먹는 것이다.

양씨는 1·2학년 땐 술집과 옷 가게, 도로 공사장에서 일했다. 3학년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접었다. 스펙을 쌓으려 한 정부기관의 홍보단 활동을 하면서 돈 벌 시간이 줄었다. 학점이 떨어져 재수강 과목이 자꾸 생기는 것도 부담이었다. 취업을 위한 영어 공부 시간도 필요했다.

눈 딱 감고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골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두 분이 매월 부쳐주는 80만~100만원으로 형과 월세와 학비를 나눠 쓴다. 대신 먹고 쓰는 걸 최소화했다. 양씨는 "부모님이 주신 돈만으로는 사회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어쩔 수 없이 빈곤을 택했다"고 말했다. 등록금은 1학년 때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2250만원이나 된다.

스튜던트 푸어가 늘어나는 데는 취업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 영어 점수 등 스펙(SPEC·특정 장비의 기능을 뜻하는 specification의 준말)을 쌓기 위해 드는 비용이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2012년 청년유니온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생활비를 제외하고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스펙 비용으로만 평균 4269만원을 쓴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문을 뚫기 위해 스튜던트 푸어로 살다가 취업을 포기하거나 고리 채무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적잖다.

수도권의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중소기업에 취직한 신모(29)씨는 월급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그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공무원 시험 학원비 80만원과 교재비 20만원을 합쳐 100만원을 빌렸었다.

빚을 내더라도 빨리 합격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업이 없는 신씨가 기댈 곳은 대부업체. 금리는 연 36%였다. 3년 내리 취업에 실패하면서 대출금이 늘었다. 원금 100만원이 3000만원이 됐다. 신씨는 결국 복지 공무원 꿈을 접고 지금의 직장에 취직했지만 아직도 남은 빚이 1200만원이다.

그는 "언제쯤 월급을 온전히 쥐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퇴근 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연이자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쓴 대학생은 약 8만8000명이다.

전문가들은 '취업을 위한 지출 증가→비용 마련을 위한 저임금 노동과 빈곤한 생활→취업 실패→취업 준비의 장기화→저임금 노동과 빈곤한 생활 고착화'라는 악순환에 청년들이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북대 사회학과 이상록 교수는 "대졸자를 포함한 20대 중 상당수는 배울 만큼 배웠고 실제 사회에 내놔도 손색없는 상황인데 사회로 진출하는 입구가 좁아져 너무 오래 대기하고 있다"며 "이는 국가 전체에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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