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하면 할수록 손해 제조업 하소연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 제조업 하소연
  • 승인 2003.03.1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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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강서구 녹산공단의 한 철강업체. 불과 지난달 까지만 해도 24
시간 내내 바쁘게 돌아가던 생산라인들이 저녁 6시가 되자 일제히 멈
춰섰다. 가동률을 20% 줄였기 때문이다. 24시간 3교대로 생산라인을
가동하던 이 업체는 이번달부터 20시간 2교대로 가동률을 줄이는 특
단의 대책을 세웠다.

이 회사 관계자는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환
율이 폭등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
다"며 "현재는 제품을 생산해 봤자 제 가격을 받고 팔 수 없어 생산하
면 할 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이번달 매출은 20~30% 정도 줄어들 것
으로 예상한다"며 "이번 불경기는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 등 대외
적인 악재 때문이라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어 더욱 힘들다"고 말했
다.

광주.전남지역의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남공단에서 국내 굴지의 가전업체에 김치냉장고와 자동판매기 부품
을 납품하는 N사는 최근 2개의 공장중 제1공장 가동을 멈추고 2공장
만 운영한다. 17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도 2교대 순환 근무로 돌렸고
매출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하남공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 씨(45)는 "기업의 자금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말했
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력난이 중소기업의 가장 애로사항이었으나
지금은 매출이 줄고, 자금 회전이 안되면서 일감마저 줄어드는 악순
환이 이어져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재고누적으로 주력 생산품인 1톤급 프론
티어의 하루 생산량을 기존의 650대에서 550대로 줄이면서 광주지역
의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조업시간을 단축해야할 형편이다.

경남 마산지역의 수출업체들은 미.이라크 전쟁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년째 미국으로 수출을 해오고 있는 A업체 사장은 "미국의 이라크 공
격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수출선적기간이 14일이상 단축돼 납품기 일
을 맞출 수 없을 뿐만아니라 수주물량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 %
정도 감소했다"고 하소연했다.

■신규투자는 엄두도 못내■

이런 불경기로 지역기업들은 신규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 사하구 신평.장림공단에 있는 한 자동차부품 회사 대표는 "이
라크 전쟁 불안으로 인한 유가급등과 북핵 문제 등 국내외적인 악재
때문에 올들어 체감경기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며 "여러가지 불안
한 요소들 때문에 올해 신규 투자계획을 전면적으로 보류하고 있다"
고 말했다.

녹산공단에 위치하고 있는 한 조선기자재 업체 관계자도 "유가 폭등
으로 생산단가는 계속 오르는데 매출과 수출은 부진해 어려움이 가중
되고 있다"며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석유화학업종이 지역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울산의 기업들은 제
품을 생산하면 손해라는 여론이 팽배할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

최금성 삼성석유화학 울산공장장은 "국제유가 급등으로 원자재가는 큰
폭 올랐으나 경기부진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판매가는 인상되지 않
아 앞으로 제품을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
다 "며 "이 때문에 울산석유화학공단 입주업체 대부분이 생산 감축을
위 한 가동계획 조정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가계대출이 줄어들고 연체율이 증가하는 등 금융권에서도 경기 불안
의 목소리가 높다.

부산은행 개인고객기획팀 이종경 과장은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연체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며 "당
분간 이런 현상은 계속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소비위축 민심도 어수선■

지방기업들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그라
들고 있고 민심 또한 어수선하다.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부전시장. 한참 사람이 붐빌 오전 시간
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이 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다는 조 모 씨(56)는 "지난 연말
부터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해 최근에는 눈에 띌 정도로 사
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에
는 매출이 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구 달성공단 중소기업인 T사 J대리는 "월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
로 봉급이 적다"며 "최저 생계수준 이상의 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
정"이라고 애궂은 담배만 피워댔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20여년 동안 의류상을 운영해 왔다는 K씨(52)는 "
공치는 날이 허다하다"라고 하소연했다.

대구시 수성구 식당가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L씨는 "장사가 너무 안돼
가게를 딴 곳으로 옮기고 인테리어 등 내부도 새롭게 꾸몄으나 경기
불황에는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며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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