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없이 지난 노사정 대타협 100일
성과없이 지난 노사정 대타협 100일
  • 이준영
  • 승인 2015.12.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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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9·15 노사정 대타협' 이후 100일을 넘어섰지만 노동개혁의 성공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혁 입법 발의 강행, '노사정 합의 위반'이라는 노동계의 반발, 여야의 극심한 대립 구도 등이 맞물려 노동개혁이 추진 동력을 잃고 표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9·15 대타협의 정신은 아직 살아 있는 만큼, 정부와 노동계 모두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장기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대타협 파기' 논란·정치판 혼란, 100일 동안 개혁 발목 잡아

노동계와 재계, 정부는 9월15일 노사정위 본회의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지난해 9월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가 출범한 후 대화 결렬과 재개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나온 대타협인 만큼 국민의 기대도 컸다. 청년실업 해소와 노동시장 선진화의 큰 발판을 마련할 거라는 기대였다.

대타협 후 정부와 여당은 '속도전'을 내세우며 노동개혁 5대 입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근로자법·파견근로자법 개정안 등 5대 입법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였다.

문제는 5대 법안의 내용에 노사정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허용업종 확대' 등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들 사안과 관련해 노사정 대타협에서는 공동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으로 대안을 마련, 입법에 반영하자고 합의했다.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가 워낙 큰 만큼 시간을 두고 합의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여당이 발의한 기간제법 개정안에서는 현재 2년으로 제한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본인이 원할 경우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파견법 개정안 등은 55세 이상 고령자, 고소득 전문직과 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 등 제조업 파견 업무를 허용했다.

노동계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언했던 이들 내용이 법안에 포함되자 한국노총은 '노사정 합의 파기'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타협 무효 선언까지 불사하겠다는 한노총의 강력한 반발에 노사정 논의는 공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사정 및 전문가그룹 각각의 의견을 병기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미봉책'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국회에서도 노동개혁 논의는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표류했다.

내년 4·13 총선의 선거구 획정 논란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갈등, 야당의 분열 등으로 정치판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면서 노동개혁 추진에 필요한 동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5대 법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임시국회가 끝나는 내년 1월 8일까지 논의를 마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고용노동부는 5대 법안 추진이 쉽지 않은 만큼,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이라도 노동계와의 협의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 해고를 뜻한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을 말한다.

고용부는 30일 전문가 좌담회를 열어 양대 지침에 대한 정부안의 골격을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노동계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안이어서 두 사안의 논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 전문가들 "대타협 살아있다…긴 호홉으로 논의 이어가야"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타협의 정신만은 살아있는 만큼 논의의 불씨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대타협의 정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악재로 장기 경기침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마저 격화하면 한국 사회에 큰 혼란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 위기를 극복할 힘은 결국 대화와 타협의 정신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면 합의의 틀을 조금씩 갖춰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생각을 버리고 긴 호홉으로 논의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에 대해 일종의 '노동 햇볕정책'을 펼 것을 제언했다.

5대 법안으로 노동개혁을 완결지을 수 있을 것처럼 너무 힘을 줘 밀어붙인 나머지 노동계가 지레 겁을 먹고 거세게 저항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논의의 속도를 늦추고 힘을 뺀다면 오히려 노동계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권 교수는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노동개혁을 성공시킨 유럽 선진국들도 수년의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며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하지 말고, 조금씩 논의의 폭을 넓혀가면서 점진적으로 달성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계에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일본 노동조합의 중앙조직인 렌고(連合)가 20여년의 장기 경기침체, 저출산 고령화 등 국가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경영계와 대화하고 타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을 그 좋은 예로 꼽았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근로 확대 등 타협을 하면서도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6.8%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뢰를 얻은 것도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자세가 바탕이 됐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미래를 지향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고 타협할 줄 아는 자세는 노동계와 정부 모두에게 필요할 것"이라며 "노동개혁도 모든 주체들이 그러한 자세를 근간으로 삼아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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