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나이듦을 배우다
[신간안내] 나이듦을 배우다
  • 강인희
  • 승인 2016.12.16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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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


나이듦을 배우다


왜 우리는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가?
우리 시대의 늙음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책

《나이 듦을 배우다》는 여성학이나 노년학에서 ‘늙음’이 ‘여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별개로 다루어지던 것들, 이를테면 건강, 정치학, 인문학, 페미니스트 노년학, 문화 분석까지 같이 묶어보려고 시도했다. 동시에 여성 노화에서 중요한 주제들, 즉 주거, 교통, 메디케어, 양로원 등도 주목했다. 노화와 관련해 뿌리내린 일상의 통념이나 편견이 우리의 사고 과정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하여 노화를 어떤 좁은 틀 안으로 구겨 넣는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노화는 느리게, 눈치채지 못하게, 피할 수 없이 몸으로 찾아오는 그 무엇쯤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받는 대우의 방식에 맞추면서 나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늙음을 배운다’는 것은, 나이 듦이 이 시대, 이 공간의 산물이며, 생물학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측면과 사회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낙관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일련의 삶의 경험임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조작되는지 알아야만 한다. 즉, 늙음을 배우려면 노화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 관찰한 후, 그 명령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우리 경험을 지배하는 노화에 대한 문화적 편견을 깨는 데에 의의가 있다.


■ 늙음을 둘러싼 문화적 통념은 어떻게 유통되는가


산업 국가들은 대부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한국사회 역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노년 인구는 점점 많아지지만 뉴스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서는 노화에 관해 주로 신체적, 의료적 건강을 다루거나 경제적, 정책적 측면에서만 노인 문제를 다루지 정작 사회적으로 큰 맥락에서 나이 듦을 이해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정서적인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는 담론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늙음을 둘러싼 문화적 통념은 유통되고 있으며, 의료산업의 세력 확산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되기도 하고 그 결과물이기도 한 노인의 환자화, 노화의 의료화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늙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대중문화나 주류 노년학과는 다르게 접근한다.

나이 듦을 배운다는 것은 신체적·물리적 변화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러한 변화가 특정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 예컨대 민족성이나 계층, 젠더, 정치경제적 풍토 아래에서 빚어지고, 여전히 그 영향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개인이 자기 삶의 질을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인종과 성별, 젠더에 따른 경제적 차이로 인해 노후의 삶은 현격하게 달라진다. 노동계층이나 유색 인종이 이 간극을 좁혀보겠다고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인종, 계층, 젠더로 인한 실질적 격차를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는 성공적으로 나이 들지 못하는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소비주의 혹은 상품 소비는 성공적인 노화에 한껏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이상적 시민이란 가능한 한 오래도록 젊게 사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도덕의 이름으로’ 유포한다. 이러한 가설은 공적 지원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노력을 최대화하는 신자유주의 원칙을 구현한 것이다. 그 결과, 이 무해하게 들리는 ‘성공적인 노화’는 정치적 어젠다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생산적’으로 나이 든다는 것은 노년을 경제적 유용성으로 파악할 뿐 아니라 사회적 순응의 대상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성공적인 노화’와 함께 제안되는 ‘생산적인 노화’라는 개념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화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단호한 개인주의’가 낳은 문화적 소산이자 보잘것없는 기념비에 불과하다. 즉, ‘성공적인 노화’라는 말은 인간을 자신의 운명을 비현실적·독자적으로 지배하는 존재로 상정하므로 사회적·정치적 행위자라는 전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 노년을 폄하하는 메시지

늙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늙음과 젊음을 저울질해봤을 때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지 이미 마음속으로는 판단이 서 있다. 누구나 나이 든다는 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노년을 폄하하는 메시지에 세뇌당해왔는지 모른다. 미국 사회는 대놓고 노인 세대를 살벌한 전쟁터에서 대적하는 적군에 비유한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를 정서적으로 그렇게까지 적대시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나마 아직 어른 공경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실낱같지만 연명하기는 하므로.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세계화되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메커니즘 속에 있는지라 노인, 특히 늙은 여성을 대하는 눈길이나 태도가 언제 돌변할지는 알 수 없다. 어르신들은 그저 빨리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라고만 되풀이한다. 그 말 안에는 많은 것들이 함의되어 있다.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지도 못하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지도 못한다. 백세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노인은 돌봄과 부양의 대상인 사회의 골칫덩이에 불과한 개체로 인식된다.

신체의 변화를 전제하면서 사회적 문맥 속에서 존엄적 존재로 자기정체성을 갖게끔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요원하다.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강박적으로 신경을 쓰며 수동성, 광대짓, 자신이 노인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 등을 보인다. 나이 듦을 부정적으로 보고 두려워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에게 천착해 ‘무한정 중년으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품게끔 한다. ‘안티에이징’이라는 상품이 성형외과와 피부과, 쇼핑몰 등등 삶 곳곳에서 등장하며 ‘성공적 노화’라는 왜곡된 문화를 조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마거릿 크룩생크 지음/ 동녘출판사/031-95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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