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박사의 물류이야기] 생계형 엔잡러와 ESG
[이상근 박사의 물류이야기] 생계형 엔잡러와 ESG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2.13 0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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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산업경영공학박사
삼영물류(주) 대표이사

‘N잡러(N jober)’란 여러개(N)의 직업(job)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로 기존의 투잡(two-job)족인 ‘생계형 N잡러’와 한 직장에 소속되어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단기 일자리를 추구하는 ‘프로 N잡러’로 나눌 수 있다.

생계형 N잡러인 투잡(two-job)족은 자신의 본업만으로는 수입이 부족해 ‘생존형’ 일을 병행해 겸업을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프로 N잡러는 수입보다는 자아실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본업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일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다. MZ세대가 경제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이런 트랜드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전에는 한 사람이 한 개의 일자리에만 종사하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전일제로 근무하고,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근로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방앗간 주인(Miller)의 경우도 방앗간 일 외에 농부를 겸했다. 그는 남는 시간에는 경매업자로 일하기도 했고 생필품과 농작물을 판매하기도 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수익을 챙기는 대금업자로도 일했다. 

한가지 만의 소득은 불안정했고, 여러 일을 겸직해야만 중산층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해 고정된 임금을 지급하는 고용 형태가 정착했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평생 한 두개의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세대는 대부분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다. 

◆자영업자, 직장인과 영끌족까지 ‘생계형 N잡러’가 되고 있다
코로나 19이후 모든 게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부업이 일상이 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다. 또 고물가·고금리·고유가의 3고까지 겹쳐 직장인과 영끌족도 ‘생계형 N잡러’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일자리로는 수입은 한계가 있고, 고물가로 생활비 증가와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 내기에도 역부족이 되면서 여러 직업을 가지는 ‘생계형 N잡러’가 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2년 1~3분기 기준 투잡에 나선 가장(가구주)은 36만8000명을 기록했다. 2017년 26만1000명에서 5년 만에 41%(10만7000명) 늘었다. 20·30세대 부업자는 2017년 7만8000명에서 지난해 10만7000명으로 37.2% 증가했다.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를 분석한 수치다. 이는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청년층이 비대면·플랫폼 일자리나 아르바이트를 통해 추가 소득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배달 라이더 수는 2019년 상반기 11만9626명에서 2022년 상반기 23만7188명으로 3년 새 약 두 배가 됐다. 근로시간 축소, 플랫폼의 활성화, 고용 형태의 다변화로 원하는 시간에 부업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한 새로운 노동과 고용 트렌드가 화두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등장으로 평생직장, 정규직 일자리, 안정된 직업 등 ‘취업’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한 새로운 노동 및 고용 트렌드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처럼 긱 경제와 엔잡러의 확산으로 경제시스템의 재편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긱 경제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과 노동시장에 끼칠 긍정적인 효과를 통해 일자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반면 가장 큰 우려는 긱 경제의 등장이 오히려 임시직, 단기계약직 노동자인 ‘생계형 엔잡러’를 양산해 고용의 질과 고용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의 반발도 크다.

◆ESG 사회항목에 등을 돌리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마존'이 꼽히고 있다
미국 CNBC는 '아마존의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ESG 과제는 노동자'라는 기사에서 "노동자 안전은 ESG에서 종종 간과되는 요소"라며 "이 문제는 아마존에서 찾아볼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전미산업안전보건협회는 '더티 더즌'(Dirty Dozen) 명단에 아마존 이름을 올렸다. 이 명단은 미 업계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업무 환경 개선에 노력하지 않은 '가장 위험한 고용주'를 정리한 목록이다.

미국 주요 4개 노조의 연합 전략조직센터는 지난 6월 아마존 근로자는 월마트 근로자보다 업무상 다칠 확률이 2배 더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아마존 배달기사의 부상율은 물류회사 UPS보다도 50%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아마존은 직장에서 인간 상호작용도 제거했다. 아마존에서 노동자는 로봇에 의해 관리되고, 애플리케이션(App)에서 과제를 받고, 심지어 문자로 해고되기도 한다. 때문에 노동자 이탈율은 더 확대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 조사에서 아마존의 연간 이직률을 150% 수준으로 집계했다.

쿠팡도 산업 안전과 근무여건 등 사회항목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쿠팡은 2020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최하 수준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2020년 10월 ESG 평가 전문기관 지속가능발전소는 2019년 6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AI-비재무 기반 중소기업 신용정보 서비스' 방법론에 따라 쿠팡을 분석했다.

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지속가능 등급은 'S8'이었다. 쿠팡이 받은 'S8' 등급은 △ESG 관리 수준이 우수한 편이지만 리스크가 과도하게 심각한 경우이거나 △리스크 자체는 크지 않더라도 ESG 관리수준이 미흡한 때 부여되는 점수다. 쿠팡이 자체 공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매겨지는 ESG 평가점수는 52.05점(100점 만점)으로 '보통' 수준이었다. 

쿠팡의 ESG리스크 중 S(사회) 리스크는 5점 만점에 5점으로 최고치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사업장 안전보건 위반(5점) 소비자 문제(5점) 근무환경(4.98점) 불공정 관행(4.94점) 공급망 리스크(4.93점) 등 S 부문의 대다수 이슈에서 쿠팡은 최저 점수를 받았다. 

2020년 쿠팡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한 데다 쿠팡이츠 라이더의 안전 문제, 새벽배송을 하던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 등이 잇따라 불거지며 리스크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2021년 7월 대형화재로 소방관 1명이 희생된 덕평물류센터는 2018년 3월 옹벽 붕괴 등 안전사고 우려가 제기돼 온 바 있다. 같은 해 2월에는 덕평 물류센터 내 소규모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이에 쿠팡 측이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슈가 보도되는 등 안전 이슈가 불거졌었다. 

이처럼 쿠팡 물류센터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고가 잇따르던 중 발생한 물류센터 대형화재를 계기로 SNS에서는 쿠팡 회원 탈퇴와 불매운동까지 이어졌다. (머니투데이, “쿠팡 덕평물류센터 참사, 'ESG 평가' 경고했었다”, 21.6.23)

◆ LA주 일명 ‘아마존 법’이라 불리는 AB701 법안이 시행
AB701 법안은 물류기업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처리 생산성 제고를 위해 과도한 작업량 할당을 금지하고 작업량 측정 기준을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22년 1월 AB701 법안이 시행에 들어가면 물류업체의 업주는 작업량 할당 기준과 측정 기준을 직원에게 공개해야 하며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원의 휴식 시간이나 화장실 이용과 같은 건강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게 된다. 

할당된 물량이 과도하다고 판단한 직원은 업주에게 작업 할당 근거 기준 공개와 함께 90일 이내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업주는 이 기간 동안 해당 직원을 징계하거나 해고할 수 없다.

AB701 법안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입법 초기부터 아마존의 과도한 작업량 할당 체계의 개선을 위한 법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아마존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마존의 물류 알고리즘은 저성과자 해고의 근거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불만 대상이었다. 

매체에 따르면 시시각각 모든 움직임을 감시받으면서 아마존 물류 직원이 1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물량(UPH)은 크기에 관계없이 최소 200개 정도이다. 크기가 큰 물건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면 ‘작업 태만’ 경고음이 울려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직원은 화장실 사용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페트병에 소변을 보는 일까지 발생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물질적 보상보다 감정적인 보람을 중시하는 프로 엔잡러들이 긱 이코노미를 떠받치고 있다
긱 경제 시대가 오면서 미국 LA의 AB701법안과 같이 선진국들은 새로운 비정규직 N잡러의 모호한 지위를 새롭게 규정하고 법률 보호 테두리를 마련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 이전의 고용계약은 고용주와 피고용주 사이의 근로계약을 통해 임금·보수, 취업안정성과 비자주적 노동을 교환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에서는 기업의 수요에 따라 초단기 계약 형태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활용한다. 전통적인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파괴된 것이다.

N잡러인 긱노동자는 과거처럼 실업에 놓일 위험은 적어졌다. 긱 경제 이전에는 일자리를 잃으면 근로 수입은 100에서 0으로 떨어졌다. 사업장에서 해고되면 일자리를 잃는 동시에 수입도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긱 경제하에서 노동자들은 쿠팡 등의 단기 일자리를 통해 다양한 수입을 얻는다. 따라서 긱 경제는 실직당할 확률을 없애주진 않지만 낮춰줄 수는 있다. 한 가지 일자리를 잃어도 수입이 50퍼센트나 30퍼센트로 줄어들 뿐, 0이 되지는 않는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가 발표한 ‘긱 이코노미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숙박·배달·청소 등 단순한 분야에서 출발한 긱 이코노미는 최근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제작, 변호사 컨설팅 등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서비스로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아기 돌보기, 주차 대행, 매뉴얼 제작, 강의, 온라인 개인비서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있다.  

원하는 때에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긱 이코노미를 선택한 프로 N잡러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N잡러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열정을 발산하고, 행복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긱 이코노미를 이용한다. 

프로 N잡러는 경직된 노동환경은 해소되고 유연성이 향상하는 선순환의 트랜드를 만들고 있다. 긱 이코노미의 성장으로 선순환을 이어가려면 생계형 N잡러는 산업 안전과 근무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프로 N잡러에게는 돈보다 성취와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자리가 늘려야 하겠다.

이상근(ceo@sylogis.co.kr)
ㆍ산업경영공학박사 
ㆍ삼영물류(주) 대표이사(현)
ㆍ국토교통부  '국가물류정책위원회 정책분과위원'(현)
ㆍ서울특별시 교통정책위원회 위원(현)
ㆍ인천지역 인적자원개발위원회 위원(물류분과위원장) (현)
ㆍ대한상공회의소 물류위원회 부위원장(겸 실무위원장) (현)
ㆍ국립 인천대학교 전문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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