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사람의 현상학
[신간안내]사람의 현상학
  • 박보람
  • 승인 2017.08.03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은 사람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유로 ‘사람답다’는 말을 듣게 되고, 때로 ‘사람’으로서 권리를 옹호받고, 때로 ‘사람이 아니’라고 힐문당하는 걸까? 그리고 결국 언제 ‘사람’으로서 사라져가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어느 때인가 ‘사람’으로서 태어나, 어느 때인가 ‘사람’으로서의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탄생과 죽음을 ‘사람’의 탄생과 죽음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나 자신에 관한 것인데도 나 스스로 잘 알 수 없다. 내 안에는 다양한 ‘목숨’이 살고 있고, 그것들은 언제나 서로 상처 입힌다. 나 자신은 ‘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하나로 정리될 수 없고, 언제나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갈가리 찢겨 있다. 나는 나 아닌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러한 중얼거림을 가슴에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니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우리가 어떤 장애에 부딪히게 되는지, 사람답게 살고자 할 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근본적인 위험은 무엇인지, 즉 무엇이 우리를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길로부터 비껴나가게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밟아가는 삶의 국면에서 어떤 계기들이 그 사람을 ‘사람’의 삶으로 살아가기 위한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저자는 한 개인, 한 사람의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삶의 국면을 특징짓는 주제―타자와 최초로 조우하는 ‘얼굴’로 시작해서 이름이 있는 ‘이 사람’, 타자에 집착하는 애증, 가족이라는 장(場)을 거쳐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 ‘개(個)인’으로서 지니는 자유, 시민성, 다양성, 인간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이라는 주제까지―를 통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 즉 ‘사람답다’나 ‘사람이 아니다’에서처럼 ‘사람’이라는 말을 우리가 쓰는 방식에서 알 수 있는 그 ‘사람’의 삶을 위해 필요한 성찰의 지점들을 펼쳐보인다.

저자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근대성의 기획이 노출하고 있는 크레바스가 ‘사람’의 위기를 만들어낸 상황을 진단하는데, 그 과정에서 영혼, 마음, 안과 밖, 내 것, 자/타, 정상(보통)/비정상 등 주체의 자기동일성을 규정하는 다양한 계기들을 해체한다.
저자에 따르면 ‘나’라는 사람의 동일성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 생각되는 얼굴도, 이름도, 마음도 “타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타자의 의식을 수신하는 향태, 즉 ‘타자의 타자’일 수 있다는 것에서 ‘나’의 마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얼굴은 다른 얼굴과 접촉하는 가운데 ‘누군가의 얼굴’이 된다. 이 접촉, 다시 말해 ‘쳐다봐달라는 부름’에서 비켜난 얼굴은 넋이 나갈 수밖에 없다. (중략) 나를 얼굴로서 존재시키는 타자의 얼굴 자체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얼굴이 불러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자의 얼굴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 내 얼굴을 지금 불러내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는 서로 보이지 않는 자기 얼굴의 이러한 교환이 얼굴을 마주하도록 불러낸다. 이러한 소환 가운데 나는 ‘나’가 된다. 얼굴이란 실로 타자가 선물로 보내준 것이다.”

“내 ‘마음’은 내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 이름이 그런 것처럼 타자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마음’을 낳는다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도 그런 뜻이다. 타자에게 소중히 여겨짐으로써 겨우 꾸며지는(모습을 갖추는) ‘내 마음’, 그것은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라는 식으로만 느낄 수 있다.”

태어나 최초 3년간의 타자(가족)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생존할 수 없었을 거라는 자명한 사실 역시 그 “타자에게 소중히 여겨짐으로써” ‘나’라는 존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존재의 무게는 무엇보다 싫다고 도중에 포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타자와의 관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관계, 또는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소유’나 ‘자율’이라는 근대성 기획의 일환으로 형성된 주체의 자기정체성 규정은, 타자와의 상호의존성이나 공동성이라는 ‘사람’의 토대를 기울임으로써 ‘나’를 비탈길로 내몬다. 저자는 ‘자기 소유’나 ‘자율’ 혹은 ‘자유’라는 개념으로 ‘나’의 자기동일성을 규정하는 현대사회의 기획(교육, 제도, 국가)에 의해, 점점 더 ‘나’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대체가능한 혹은 처분가능한 물건이 되어버린 현 사태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있다.

철학적 깊이와 성찰의 예리함이 함께 하는 저자의 이 철학적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우리 자신과 흔한 삶의 경험을 새롭게 지각”하는 동시에 “철학이 친숙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저자가 그린 새로운 성좌를 따라 되짚어보고 성찰하다보면 ‘나’의 삶은 새로운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선물은 이 철학적 여정에 ‘나’의 곁에서 쌍으로 함께 했던 타자가 보내준 ‘사람’의 삶이고, 이 철학적 여정의 끝에서 솟아오를 두툼하고 속 깊은 윤리의 가능성이다.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 김경원 옮김 | 문학동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