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안, 여당은 과연 처리 의지 있는가
비정규직법안, 여당은 과연 처리 의지 있는가
  • 승인 2005.09.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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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ISSUE / “연내 처리 사실상 물 건너 갔다"

여당, 노동계·언론·야당 눈치 보며 전전긍긍

노동계, 11월 전 조직 올인 ‘총파업 계획'

지난 6월 노사정간 수십 차례 이르는 의견 조율에 실패한 후 정기 국회가 열린 9월부터 다시 비정규 관련 법안들이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잇따른 비정규근로자들의 분신과 투신으로 인한 사망사건들이 발생해 조속한 비정규법안 해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법안을 둘러싼 노사정간의 대립은 다시 지난 6월의 연장선에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정부안이 오는 11월 노동부가 일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비정규법안과 맞물려 '이것도 저것도 안 될 확률'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이에, 노동계는 양대노총의 단일화를 통한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비정규 투쟁에 노동계의 힘을 결집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비정규법안은 가히 '태풍의 핵'이라 할 수 있다.

법안 장기표류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도 비정규법안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고착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국회의 강력한 의지를 촉구하면서 법안 처리를 독려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은 지난 6월과는 달리 상당히 힘을 소진한 듯한 인상이 짙다.

최근에 불거진 X파일 문제와 대통령의 연정발언에 대해 진땀을 빼고 있는 와중에 정기국회 회기 중에 치러지는 10ㆍ26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당력을 총결집하는 상황이어서 법안 처리는 상당히 요원한 문제라는 것이 여당 내 분위기다.

여당에서 법안 처리에 가장 의욕을 가진 이목희 의원 역시 몇 번의 인터뷰와 전화 요청을 거절하면서 “다음 기회에 따로 정리해서 밝히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지난번 임시국회 때 고생한(?) 흔적이 역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각종 언론에 나타난 정부와 여당의 관계는 ‘과연 법안 통과 의지는 있는가' 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지난 해 12월부터 올해까지 4차례에 걸쳐 노사정의 의견이 충분히 조율된 만큼 이제는 국회 입법권에 의한 실행이 필요한 때"라는 입장이다. 이미, 수십 차례에 걸친 공론화 작업이 통했고,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법안에 대한 ‘의지'도 이미 명확한 만큼 국회 차원에서의 결단만 남았다는 것이 한결 같은 노동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표명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최근 한 언론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정규법안 쟁점에 관해 열린우리당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 7명은 전원 응답을 거절했다는 소식이다. 당내의 의견을 말하기 앞서 노동계가 먼저 대화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이러한 분위기 이면에는 최근까지 노사정 협상을 주도했던 소속당의 모습과는 너무나 판이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이다. 민감한 사안이라서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민감할수록 확산적 사고를 가지고 문제 해결에 가장 선두에 서야 할 사람들이 바로 여당의 역할인 것이다.

결국,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향후 노동시장의 혼란은 고스란히 여당의 자충수로 인한 결과임은 명약관화할 것이다.

9월 정기국회 비정규법안 ‘생사기로'

현재까지 법안에 대해서는 정부는 ‘정부 원안대로 강력 추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재계는 비정규법안 외에 로드맵 문제도 다뤄지기 때문에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정부 입법안 국회 통과저지 및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결국, 지난 6월 노사정의 조율은 접점을 만들지 못한 채 계속 표류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 기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일을 하고 있는 시점에 명확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근로자와 기업의 몫으로 전가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2003년 9월에 마련된 ‘노사관계 로드맵'이 2년 넘도록 입법 절차가 지연되는 것 또한 향후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감안한다면 그 피해 파장 역시 무시 못할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반응이다.

2007년부터 단일 사업장 내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 금지 등 주요제도가 새롭게 시행되도록 되어 있는 이번 문제도 지금 정부와 여당의 입장에서 보면 올해도 결국 넘어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이다.

그리고 노사정의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단독 입법 추진을 제출한다면 노사 모두 적지 않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에서 “비정규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을 동시에 처리할 경우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은 “지금까지도 비정규직의 굴레에 갇힌 800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확산을 위한 법안에 대해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밝히며, “김대환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문제에 대한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것이며,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적극 수용 할 것"을 주장했다.

아울러 한나라당 환노위 위원인 정두언 의원도 “노사정의 입장차이가 극명한 시점에서 가급적 접점을 빨리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안"임을 강조하면서 “비정규직 법안 및 노사관계 로드맵이 장기적 표류가 된다면 장관 퇴진도 고려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리고 파견제도에 관해서는 정두언 의원은 ‘포지티브 방식 유지'를 고수하였으며, 단병호 의원은 ‘원칙적 폐지가 맞지만 불가피할 경우 현행제도 유지'쪽으로 의견을 밝혀 지난 6월과는 달리 노동계에서도 협상의 여지가 충분히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회기 내에 관련 법안이 심층적으로 논의되어 어떠한 식으로 결정이 나지 않는다면 이번 참여정부 내에서는 획기적인 노동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견해임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계, 11월 APEC 겨냥 투쟁 계획

최근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잇단 사망 소식에 10월 중순 양대노총이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 결의대회'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11월 경 전국 규모의 총파업 투쟁을 전개하여 전 역량을 결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쟁취를 위한 하반기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불법파견과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핵심요구로 제기 할 것"임을 밝혔다. 이미 지난 6월, 비정규 관련 정부 입법안에 대한 저지 투쟁이 아니라 노동계가 제출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입법 쟁취 투쟁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보다 탄력을 붙인 것이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최근 국제 유류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임을 감안한다면 노동계 주장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는 의외로 쉽게 형성 될 수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나날이 격렬해지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전무하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특수노동직은 최근 수년 사이에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에 대한 시급한 보호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오는 11월 17∼18일 부산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현장 총파업을 벌이는 방안을 설정해 놓았다"며, 이번 11월 노동계의 총력 투쟁에 올인 할 것임을 시사했다.

전세계적으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의 확산의 주범은 결국 APEC의 정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노동계의 일관된 생각이다.

아울러 이 사무총장은 노사정 협상 결렬 문제를 거론하면서 “노동계가 무리한 요구를 하니까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정부와 재계의 착각이지 협상의 여지는 언제나 열려있었다. 다만,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퇴진 문제는 현 정부에 대한 노동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충고임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많은 토의를 통해 노사정의 접점은 어느 정도 가시화 할 수 있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정부와 여당의 적극적인 의견 조정이 시급하며, 재계 역시 방관적인 자세를 버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 줄 것"을 요구했다.

사회적합의 통한 빠른 입법 최선책

지난 6월 노사정 위원회는 각자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전략적인 측면의 성격이 상당히 강했다는 것이 각계의 인식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내어주는 식의 협상은 결국 서로간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심각한 이견 차이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견지한다면, 이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있는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분명히 나와야 할 것이다.

최근 불법파견과 위장 도급, 특수고용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비단 노동계가 주장하는 상황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에서 산업 인력 구조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기업들의 고용 구조도 많이 변화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 투자되는 외자 유치비율이 7%를 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기업의 수출과 경쟁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며 “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두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눈앞의 현안을 보기에 앞서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야 하며, 더 나아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사정 모두가 화합하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국회와 여당의 적극적이고 포용적인 자세에서 소속집단의 이익을 위한 전술을 배제한 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결국 비정규직 법안을 비롯한 산적한 노동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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