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입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비정규직 입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 승인 2006.03.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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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해설] 불합리한 차별 금지…임금 · 근로조건 양극화 해소해야

하갑래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비정규직 근로 관련 법안이 4년여에 걸친 오랜 산고 끝에 지난 2월 27일 여야 합의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아쉽게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다음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사회양극화 문제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고용과 차별은 대표적인 사회양극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입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화급한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에 대해 일부 노동계는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지 못하고 고용이 더욱 불안해진다고 하는 반면, 경영계는 인력활용의 유연성은 떨어지고 기업의 부담만 늘어난다고 상반된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2001년에 364만 명이던 비정규직 근로자가 2005년에는 1.5배인 548만 명으로 꾸준히, 그리고 급격히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근로조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은 정규직의 63% 수준이고 사회보험 가입률은 40%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해왔다. 우선, 노사정위원회가 2001년부터 2년간 100여 차례의 각종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충분히 논의했다. 그후 정부는 1년 동안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부처 간 협의를 거쳐 2004년 11월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서도 노사정이 26차례의 회의를 통해 이견을 좁혀 왔고, 그 결과 여야 단일안을 마련하여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다른 소수가 물리적으로 의사진행을 막아 입법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떻게 보호되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목적은 주로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는데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지금까지와는 달리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하게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했다. 회사는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이나 다른 근로조건을 차별할 수 없다.

차별을 받은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고, 이 때 회사가 차별여부를 입증하여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는 회사에게는 1억 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

둘째, 현재는 회사가 기간제 근로자를 사실상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근로계약을 반복하여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2년으로 제한되고, 이를 초과하면 정규근로자로 간주된다.

셋째, ‘파견기간 초과’, ‘파견업종 위반’, ‘무허가 파견’ 등 불법으로 파견된 근로자를 사용하는 회사가 받는 벌이 더 엄해졌다. 벌칙이 ‘1년 이하 징역’에서 ‘3년 이하 징역’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는 ‘기간초과 파견근로자’만 사용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나(고용의제), 앞으로는 사용회사가 불법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용의무). 고용의무를 지키지 않는 회사에게는 벌칙이 주어지는 외에 3000만 원까지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넷째, 파견대상업무에 대하여는 지금처럼 열거하는 방식(Positive list)을 유지하되 그 분야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기술진보, 업종의 다양화 등 노동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점과 ‘파견대상업무를 제한하는 나라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법은 2007년부터 시행된다. 다만 차별금지 규정은 기업규모를 고려하여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설득력 떨어지는 비판들

노동계는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360만 명에 달하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하여 사용사유를 제한하면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이 너무 클 것으로 우려된다. 다시 말해서 고용이 감소하거나 근로조건이 더 좋지 않은 사내하청 또는 용역으로 전환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선진국도 사용사유 대신 사용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면 기간제 근로자를 교체하여 사용함으로써 고용이 불안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숙련된 근로자를 교체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또 신규채용에 따른 노무관리 비용도 늘어난다. 아울러 차별금지제도가 강력히 시행되면 비정규직을 고용하더라도 인건비 절감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회사가 다른 비정규직 근로자로 계속 교체할 가능성은 적을 것이다.

‘파견기간 초과 근로자’에 대하여 ‘고용의제’를 ‘고용의무’로 바꾸면 보호가 약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부분적으로는 일리 있다. 그러나 '고용의무'로 바꾸더라도 '기간초과' 자체에 대해 처벌이 강화돼 3년까지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더구나 ‘기간초과’ 이외의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고용의무를 새로이 부과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근로자를 더 크게 보호할 수 있다.

한편, 비정규직 법안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는 경영계의 주장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고, 선진국과 비교할 때 차별금지, 기간제한 등 보호의 내용도 합리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차별 없는 일터 제공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세계적 추세다. 따라서 기업이 필요에 따라 기간제 근로자나 파견근로자를 활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핵심은 이들 근로자가 차별 없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고용과 근로조건의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다. 비정규직 입법은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는 대부분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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