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도 아웃소싱 시대, '기업·정부기관 등 300곳 시행'
내부고발도 아웃소싱 시대, '기업·정부기관 등 300곳 시행'
  • 이준영
  • 승인 2015.02.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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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비리에 대한 제보 시스템을 구축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내부고발도 아웃소싱하고 있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직원이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100억원대를 횡령한 사건을 겪은 이후, 10억원의 포상금을 내걸고 직원 내부 비리에 대한 제보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1년간 제보 건수가 1건에 불과해 내부고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국민은행 측은 고심 끝에 내부 비리 고발 업무를 외부 전문업체에 아웃소싱하기로 했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아무리 내부 제보자에 대해 신분 노출을 최대한 보장해줘도, 업무용 PC를 통해 홈페이지에서 제보하는 것은 IP주소 기록에 남는 문제가 있고 또 어떻게든 조직에 소문이 퍼져 나가 해당 직원이 고통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로부터 이 업무를 위탁받은 업체는 '레드휘슬'이라는 부정부패 신고대행업체다. 레드휘슬처럼 기업의 내부 비리 고발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전문기업이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재이컨설팅 등 3~4곳 되는데, 금품수수, 성희롱, 공금횡령 등 직원들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기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 같은 신종 비즈니스가 성업 중이다.

현재 이들 업체에 비리 제보 업무를 맡긴 기관과 기업체는 300여곳으로, 법무부, 국민안전처, 경찰청, 대구시청, 국민연금관리공단, 한국수력원자력, 성주그룹, 메리츠금융그룹 등이 고객 명단에 들어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내부 비리 고발 업무를 외부 업체에 아웃소싱하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돼 있다. 현재 미국은 6000여개, 일본은 3500여개 기관과 기업이 내부 비리 고발 업무를 외부기관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오필환 한국기업윤리경영연구원장은 "내부고발자들이 신분이 노출돼 '왕따'를 당하기 십상인데, 외부업체를 이용하면 이런 문제를 차단할 수 있어 기업체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신변 보호가 경쟁력의 원천

내부 고발 업무 위탁업체들의 경쟁력의 원천은 내부 고발자에 대한 철저한 신분 보호 노하우이다. 이들은 내외부 고발자의 '익명성'을 어떻게 보장할까. 비결은 제보 접수와 동시에 IP 기록 등 제보자 정보를 삭제하거나 유출을 막는 최첨단 보안 시스템의 사용에 있다.

내부 고발 위탁업체는 우선 기업체 직원들에게 QR코드가 담긴 명함과 스티커를 배포한다. 내부고발자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스마트폰 화면에 '신고하기' 창이 뜨고, 고발자는 이 창을 통해 고발 내용을 적은 뒤 '신고하기' 버튼을 누르면 된다.

신고를 접수한 위탁업체는 신고자의 IP주소 등 인적 정보를 삭제한 뒤 해당 기업 법무팀이나 인사팀 직원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신고 내용을 전달한다. 레드휘슬 박애경 이사는 "제보 내용이 유출되면 모든 손해배상 관련 책임을 업체가 진다는 '보안각서'를 쓰고 계약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위탁업체들은 연간 500만~60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개별 기관, 기업과 계약을 맺는다.

레드휘슬의 지난 1월 제보를 유형별로 보면, 알선청탁·특혜제공(41.6%)이 가장 많고, 금품수수·공금횡령(12%), 성추행·성희롱(11.8%) 등의 순이었다. 제보 내용은 업종별로 달라 금융기관의 경우, 수십억원대 부정대출·횡령 제보가 많고, 공공기관의 경우 소액의 금품수수·접대 비리가 많이 접수된다고 한다.

B기업 감사실 관계자는 “인사 시즌이 되면 ‘승진 대상인 00 부장은 부적절한 인물이다’는 식의 음해성 제보가 넘쳐나지만 인사와 관련된 제보는 인사가 끝난 뒤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비리에 대한 직원 경각심 높이고, 갑의 횡포 줄이는 효과

내부 비리 고발을 외부업체에 아웃소싱하면 내부 제보가 활성화된다. A유통기업의 경우, 위탁업체를 쓰면서 상품권 유용 등 직원들의 비리에 관한 제보가 30~40% 늘었다. B교육청의 경우 학부모들로부터 촌지를 수수했다는 교사들에 대한 제보를 받고 5명을 징계처분했다. C금융사 관계자는 “직원들의 자금횡령 관련 제보가 일부 사실로 드러나 징계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내부 비리 고발의 활성화는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甲)의 횡포를 줄이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한 제조업체의 부장급 직원은 “예전엔 하도급업체 임직원들을 만날 때 ‘우리한테 밉보이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겁을 많이 줬는데, 내부 고발 업무를 아웃소싱한 이후엔 하도급업체를 파트너로 대하는 자세가 정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은 직원 근무 연한이 짧고, 법이나 규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옆자리 회사 동료도 잘못하면 고발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회사 동료를 지켜주는 성향이 강해 내부 고발 문화가 약하다”며 “그러나 국내 기업·기관들에도 근무 연속이 짧아지고, 윤리경영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어 내부 고발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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