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8] 어느 가족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8] 어느 가족
  • 편집국
  • 승인 2022.02.08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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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새해 초부터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음력 설을 맞이하여 가족이 모두 모이고 싶어 하는 시기에 처사촌 큰 오빠가 안타깝게 가족 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어찌 보면 호상(好喪)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안타깝다고 표현한 것은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무릎 수술을 받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여 고생하긴 했으나 몹시 걱정되도록 심하게 앓는 된시름 상태는 아니었는데,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증세가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궂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고인은 장인어른의 5남 2녀 형제 중 돌아가신 형님의 큰아들이라 김씨 가문 장손으로 김씨 문중 일을 도맡아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궂긴 소식을 전해주는 아내의 작은 아버님 목소리엔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슬픔과 함께 걱정이 묻어 있었고, 장인어른은 문중 일은 차치하고라도 형님에 이어 큰 조카도 일찍 떠나보내게 된 것에 대한 충격이 크신 것 같았다. 

또한 당신도 코로나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고초를 겪긴 하셨지만, 무사히 이겨내고 퇴원하셨기 때문에 조카가 코로나로 인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예감은 좋지 않으셨으나 그래도 이겨내지 않겠냐고 생각하셨는데 입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으니 더 마음 아파하시는 듯했다.

고인이 코로나에 감염됨으로 인해 아내도 격리 중이고, 미국에서 돌아온 아들도 격리 중이라 가족 중 아무도 임종을 함께하지 못하고 뒤늦게 통보만 받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사망하게 되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바로 화장터로 옮겨지는 바람에 유족들이 고인의 얼굴도 한번 못 보고 화장터에서 멀리 떨어져 절을 올리며 고인을 보내 드리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너무 애처롭게 느껴졌었는데 장례를 치른 후에 화장하도록 방침이 바뀐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직계 가족만 모여 장례를 치르게 되어 유족들이 모두 격리 상태라 난감하였는데,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받아 고인의 아내와 아들이 격리 해제가 되어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고인의 아버님 형제들이 많아 사촌들을 포함한 방계 가족들이 많지만, 코로나로 인한 장례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아무도 고인을 보내드리는 데 함께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처지도 애처롭지만, 전해 들은 남겨진 유족들의 삶도 녹록지 않을 것 같아 안쓰럽다. 

고인에게는 유족으로 아내와 1남 1녀가 있는데, 큰딸이 태어날 때부터 지적 장애와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듣기로는 임신 중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배에 큰 충격을 받아 장애아를 낳았다고 한다. 

현재 나이가 50대이지만, 지적 수준은 서너 살 어린아이와 같고 뇌전증이 있어 다른 데 맡기지도 못하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고인의 아내가 전적으로 함께하며 일일이 돌보아 주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며 사는 가족의 삶이 쉽지는 않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해온 나를 깨우쳐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접하게 된 그 사건은 아직도 나에겐 강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뉴질랜드에 이민 가기 전에 교회를 통해 알게 된 한 가족이 있었다. 엄마와 딸이 교회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내가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고민 상담도 해주면서 가깝게 지냈던 가족이었다. 

자녀가 1남 1녀였는데 아들이 자폐 장애가 있었다. 대소변도 가릴 줄 모르고 말도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고함만 반복적으로 질러 댔었다. 

우리가 가 만나던 때에는 나이도 어렸고 체격도 작아 통제가 될 수 있었지만, 우리가 이민 가서 만나지 못하는 동안, 이 아들은 성인이 되었다. 몸집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는 짓은 어린아이라서 도저히 통제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마침내 그 아이의 아버지는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다. 아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운 다음, 방 틈을 모두 막고 가스를 켜고 아들과 동반 자살을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으로 진정이 되지 않는 가슴을 움켜잡고 밤길에 문상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내와 딸의 미래를 위해 자폐 장애가 있는 아들에 대한 짐을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길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남겨진 가족이 과연 그 불행한 사건을 잊고 남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제삼 자인 나도 이렇게 가슴에 큰 못이 박힌 듯 잊지 못하고 있듯이 남은 가족들도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고인이 된 처사촌 오빠 댁의 이야기가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딸을 50년 넘게 돌보느라 심신이 많이 쇠약해져서 남편보다 더 병치레했다고 하는데 이제 기댈 수 있는 남편조차 잃었으니 버틸 힘이 남아 있을지 걱정된다. 

장애를 지닌 자녀가 있는 가정이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또 다른 가정은 늦게 낳은 딸이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지만, 그로 인해 가족이 더욱 단합하고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고 순수하기만 한 그 아이를 통해 웃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장애의 경중, 가정의 형편, 가족 간의 관계 등등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해서 쉽사리 말을 보탤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행하는 희생 중에 값지지 않은 희생이 없겠지만, 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 둔 부모들의 희생은 훨씬 더 값지고 위대하다는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탈무드의 말은 이런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너무 상투적으로 느껴져 입에서 꺼내기조차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견디고 힘을 내라는 말이 마음에 닿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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