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77] 어떤 사별(死別)과 잊힘에 대하여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77] 어떤 사별(死別)과 잊힘에 대하여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6.21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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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에 살면서 기억에 남는 두 번의 부부 사별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한번은 한국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지인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사별이고, 또 한번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 친구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사별이었다.

한국 교민이었던 고인은 무척 가깝던 사이는 아니더라도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던 사이였다. 고인보다는 고인의 아내와 한국에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알고 가깝게 지냈던 인연으로 뉴질랜드에 와서도 서로 왕래하며 종종 모임을 하곤 했었다.

고인은 나보다 먼저 뉴질랜드로 이민을 와서 오클랜드 시내 중심가에서 한국 교민 및 일본, 중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학원을 운영했었다. 특히 일본 유학생들에게는 제법 잘 알려진 영어 학원으로 한국인 이민 일세로서 건실하고 안정적으로 학원을 운영하면서 뉴질랜드에서 잘 정착해 살고 있었다.

고인의 형제들은 유전적 지병으로 모두 50세가 되기 전에 단명했었기 때문에 자신의 50세 생일을 넘긴 후 자기 형제들은 모두 50세 이전에 죽었는데 자신은 50을 넘겼으니 오래 살 것 같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0을 넘긴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학원을 마치고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 저녁도 잘 먹고는 잠시 후에 구토 증세를 느껴서 몸이 이상하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부인이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는 길에 정신을 잃더니 그 길로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 소식을 듣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몇몇 지인들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하고 고인의 마지막 길에 함께 하고자 운구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묘지에 봉분을 만들지 않고 땅에 묻고 평평하게 바닥을 고른 다음 나지막한 묘비만 세우기 때문에 고인을 묻은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평해진 땅이 더 무상하게만 느껴졌다.

고만고만한 자녀 셋을 두고 떠난 남편을 땅에 묻으며 서럽게 울던 부인의 가녀린 모습을 보면서 낯선 외국 땅에서 남편도 없이 어떻게 어린 자녀들을 키울까 하는 염려와 걱정으로 애처롭게만 여겨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다른 사별은 뉴질랜드에서 알게 된 마오리 친구 아내의 죽음이었다.  
마오리 친구는 우리 가족이 오클랜드에 살다가 해밀톤으로 이사한 후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고 중고 자동차 중개업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자동차를 구매하면서 친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새집을 지으면서 실내 내부 페인트칠을 가족끼리 해보려고 했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건축일을 한 경험이 있는 아들이 와서 몇 날 며칠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원래 봉사 차원으로 도와준다고 했지만, 거의 도맡아 일해주었기 때문에 공사가 끝난 후 우리가 금전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나중에 친구 아내가 소식을 듣고는 그때 아들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우리가 사례한 것이 그들 가족에게 많이 도움이 됐다면서 일부러 찾아와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이유로 그 가족과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됐었다.

50대였던 친구 아내는 지병으로 자주 교회를 빠졌지만, 민망할 것 같아 친구에게 자세한 근황을 묻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죽었다는 황망한 소식을 들었다. 가족이 함께 처음으로 뉴질랜드인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을 때 울음을 참으며 의연한 척하려는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교회에서 진행된 장례식에서 가족 및 몇몇 친구들이 고인에 대해 추모하는 얘기를 전했다. 대부분 고인과의 행복했던 추억이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담들을 나누며 슬프고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웃음과 행복한 미소 속에 고인을 기억하는 모습이 한국 장례식과는 다른 것 같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교회 예배당에서 교회 밖에 세워놓은 장례 차량까지 운구할 때 고인 아들 친구들과 후배들이 양옆으로 늘어서서 운구 행렬이 지나갈 때 마오리 전통 의식인 ‘하카’를 해준 것이었다. 

하카(HAKA)는 원래는 전쟁에 참전하기 전 전의를 다지기 위해 행했던 의식으로 오늘날에는 뉴질랜드 국가 대표팀들이 시합 전에 의식처럼 행하거나 장례식에서 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또는 결혼식이나 학교 졸업식 등에서 축하하기 위한 특별 의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전쟁무(戰爭舞)답게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가슴과 허벅지를 힘차게 내려치며 행하던 하카 의식을 지켜보며 나도 울컥해지면서 벅찬 감정이 올라옴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중년 이후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안겨준다고 한다. 특히 사랑하는 배우자를 죽음으로 사별한 경우에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가 죽은 자가 사랑했던 나를 놓아주고 다른 사랑을 찾는 것이고 정신 분석전문의인 김혜남 박사에 의하면 잉꼬부부들이 사별하면, 다른 사람의 예상을 깨고 금방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겨진 아내는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와 그리고 마오리 친구는 죽은 친구의 아내와 각각 재혼하여 잘살고 있다. 

죽을 만큼 사랑한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총 맞은 가슴처럼 뚫린 구멍이 아물 것 같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메워지며 새싹이 돋고, 사별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품고 살 것 같아도 어느덧 새 사랑을 찾는다. 

죽은 사람은 잊혀 가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이게 우리의 삶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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