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4] 섭리(攝理)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4] 섭리(攝理)
  • 편집국
  • 승인 2022.03.22 0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송강호가 아들에게 한 말로 널리 알려지고 많은 패러디가 만들어진 말이다.

우리들의 삶을 조금 벗어나 살펴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해서 미리 계획된 것처럼 벌어지는 일들이 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손길 또는 섭리가 있었다고 표현한다.

섭리(攝理)란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란 의미도 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으로 더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에 비해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방편을 마련해 놓게 계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다 보면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깨닫게 되고 전지자(全知者)의 계획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나도 뒤돌아보면 내가 몰랐던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깨닫게 되는 경험이 여럿 있었는데, 최근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얼마 전에 내가 속해 있는 단체 카톡방에 모 공단에서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곳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 내가 여러 해 강의했던 곳이라 반가웠다. 

공단에 속해 있는 퇴직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미래 설계’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나는 변호사 자격으로 생활 법률 분야에서 ‘유언과 상속’이라는 주제로 여러 해 강의했었다. 그러다 유언과 상속 부분을 세무 분야에서 다루게 됨으로써 부득불 강의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번에 모집하는 분야도 이전과 거의 비슷하고 생활 법률 분야는 없었기 때문에 은퇴 설계의 중요성에 관한 주제 강의 쪽으로 신청하기로 했다.

강사 신청서와 강의 교안, 강의 자료 초안 등은 별문제 없이 준비할 수 있었지만, 5분여의 강의 동영상을 찍어 보내는 것이 문제였다. 강의 동영상을 찍으려면 PPT도 띄워가면서 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히 프로젝터와 스크린 등을 갖춘 장소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인근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지인이 떠올랐고, 요즘 코로나로 학생들 수업을 대부분 인터넷으로 하니까 빈 강의실이 있을 거 같아 조심스럽게 전화로 부탁을 하니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주었다.

약속 시각에 맞춰 대학교에 방문하니 중요한 동영상을 찍는 줄 알고 대학교 내 전문 스튜디오를 주선해 놓았고 도움을 줄 스텝들도 여러 명 대기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그리고 사적인 일로 여러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호의는 고맙지만 빈 강의실에서 간단하게 찍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조교의 도움을 받아 빈 강의실에서 준비해간 PPT를 띄워가며 별 어려움 없이 강의 동영상도 준비할 수 있었다.모든 일이 순조롭게 준비가 되고 나름대로 강의에 자신도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접수하고 잘 될 거라 기대하며 발표를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강의하던 사람들도 모두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했기 때문에 기존 강사들의 강의 평가가 극히 나쁘지 않은 한 새롭게 강사로 선정되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이 분야에 경력도 있고 이전 강의 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기대한 만큼 실망이 컸다.

온종일 시무룩해 있는 이유를 묻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아내는 또 다른 기회가 있을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긴다.

코로나 여파로 언제 강의 기회가 있을지 모르는 터라 공단 강사 자리는 일정 기간 강의 기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강의를 나가면 안 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올해 96세가 되신 장인어른이 토요일 아침에 밤새 복통으로 밤새 잠을 주무시지 못했다고 하셨다. 

지난달에도 복통을 호소하셔서 인근 병원에서 진찰해 보니 담낭염으로 염증 수치가 높아서 염증 수치를 내리기 위해 며칠 입원하시고 집에서  약을 통해 치료하고 계셨는데 효과가 없었던 것이었다.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 담낭 제거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일단 관을 꼽아 염증을 빼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그 시술을 할 의사가 없으니 다른 병원에 가서 빨리 염증을 빼내라고 제언했다. 

그래서 장인어른이 다니시던 천안 단대 병원 응급실에 가서 시술을 받고 하룻밤을 머문 다음 다시 집 가까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 담낭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다. 

워낙 고령이시고 심장 스텐트를 네 개나 넣고 계시기 때문에 수술 전에 심장 기능 검사를 포함한 여러 검사를 하다가 또 다른 혈관도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스텐트를 두 개 더 넣는 시술을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 후 며칠 경과를 지켜본 후 담낭 제거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날짜가 길어지게 되었고, 워낙 고령이시라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내도 강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90이 되시는 장모님도 심장 혈관이 좁아져서 스텐트 시술을 하려고 대기 중이었다. 

아내가 장인어른 일로 병원에 함께 입원해 있는 바람에 내가 집에서 장모님의 건강 여부를 살펴봐야 하고 병원에서 요청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심부름을 해야 하는 비상 대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장인어른이 수술을 마치시고 입원해 계신 동안 장모님도 스텐트 시술을 받고 같은 병원에 입원하시기 되었다.

이런 상황이 닥칠 것을 알지 못한 채 강사 제의를 받고 강의를 해야만 했다면 이런 비상사태에서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강사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겨우내 얼어 죽은 것 같던 만물이 기적과 같이 되살아 나는 봄이 찾아오고, 훈풍으로만 여겨졌던 봄바람이 견디기 어려운 폭염으로 변하는 여름이 오고, 다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가을이 뒤를 잇는 자연의 섭리처럼 우리 삶에서도 늘 불행만 있지 않고, 매사에 기쁨만 있지도 않다는 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섭리이다.

터널이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뚜벅뚜벅 걷다보면 끝이 보이고 그 끝에는  밝은 빛을 마련해 놓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에게 불행과 역경이 닥쳐도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유익이 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견디고 이겨내게 해준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