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9] 나잇값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9] 나잇값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4.26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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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일전에 SNS에서 감동적이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정거장에서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올라타셨다. 차비를 내려고 하는데 지갑을 두고 오셨는지 아니면 잃어버리셨는지 찾지 못해 버스비를 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으니 버스 기사는 차비가 없으면 빨리 내리시라고 했고, 할아버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셨다. 

버스 기사의 재촉과 성화에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없이 모두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어린 학생이 만 원을 대신 내주면서 버스 기사에게 남은 잔돈은 앞으로 이렇게 차비가 없다고 하는 어르신들이 계시면 공짜로 태워주라고 한마디 했다. 

글쓴이는 어린 학생의 행동에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내리면서 그 학생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는 황급히 내렸다는 내용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어른으로서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나이 어린 학생이 자신보다 더 어른스러운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졌다고 했다. 나이가 든 만큼 나잇값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나잇값이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이는 들었는데 그 나이에 맞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할 때 “나잇값도 못 한다”라고 하면서 주로 부정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을 철이 없다고 부르기도 한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경우에 철이 없는 사람을 순진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더 나아가 나이는 들어 성인은 되었지만, 아직도 어른답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을 ‘키덜트’(키드와 어덜트의 합성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키덜트’는 개인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나잇값’은 사회가 들이미는 보편적 판단과 요구를 바탕으로 한 평가가 함축되어 있다. 이 말속에는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에 대한 값어치가 올라간다는 암묵적인 통념이 깔려있기 때문에 그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경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렇더라도 나잇값에 따르는 언행을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이에 관해 말할 때 공자의 말씀이 자주 언급된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15세의 나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나이 30세는 이립(而立)으로 뜻을 세우고 입신하는 나이이고, 40세는 미혹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이며, 50세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이고, 60세는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라고 했으며, 70세가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 종심(從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마도 공자처럼 나이에 걸맞은 나잇값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만큼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를 따져서 위아래를 가리려는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걸 권세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물리적인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존중받는 건 아니다. 

더 먹은 나이만큼 보다 성숙한 행동을 보여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할 때는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존중받기보다는 나잇값을 못 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는 걸 내세우는 데 조심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기를 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지금은 뉴질랜드에서 정규직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막내아들이 보조 교사로 일하던 때였다. 

뉴질랜드는 휴가에 관한 자유가 물론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서 교사들이 집에 일이 있거나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거나 또는 가족 여행을 가게 되면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휴가를 쓴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대체 교사에게 수업을 맡긴다. 우리 아들이 정규 교사로 임명을 받기 전에 경험을 쌓기 위해서 학교에 보조 교사로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교사 결원이 있을 때마다 학교로부터 요청을 받아 대신 가르쳤다. 

하루는 스카이프로 화상 통화를 하는데 막내아들이 얼굴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형 중에 아무도 수염을 기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수염을 기른 얼굴이 낯설기도 했고 귀여운 막내아들의 모습이 아닌 딴 사람인 것 같아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기얼굴이 너무 어려 보여서 혹시라도 다른 선생들이 낮잡아 보지 않게 하고 학생들에게도 위엄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수염을 길렀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나이들어 보이게 됨에 따라 요구되는 나잇값에 대한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고자 했다.

나이는 좋든 싫든 해가 바뀌게 되면 누구라도 한 살씩 더 먹게 되고 나이 들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높은 값어치(나잇값)가 매겨지고 그 값어치에 걸맞은 말과 행동이 요구된다.

자신의 값어치는 누구나 가만있어도 나이를 먹듯이 그냥 높아지는 게 아니다. 나이는 거저 주어지지만, 나이에 걸맞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주워 담아 쌓아가야 할 것도 있고, 때론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다. 이걸 분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기에 나잇값을 한다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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