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8] 벚꽃 지듯 봄날은 간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8] 벚꽃 지듯 봄날은 간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4.19 0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봄을 다시 찾았다.
거의 15년 가까이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면서 아쉽고 그리웠던 것 중의 하나가 봄을 만끽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뉴질랜드가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계절을 살고 있기 때문에 3, 4월에 맞이하던 봄을 9, 10월에 맞게 되니까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 눈 내리고 얼음이 어는 겨울 같은 겨울을 보내고 맞게 되는 봄은 한겨울 추위에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하는 진정한 봄이고 봄을 알리는 친숙한 꽃들의 환한 미소에 다시 봄을 찾은 기분을 갖게 해주었다.

지난주에는 안동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하고 갔다. 뉴질랜드에 살 때는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 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고 자주 다녔었는데, 2시간 반에서 3시간 걸리는 안동행 길은 별로 막히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멀게 여겨졌다. 아마 늘 가까운 곳만 다니다가 오랜만에 장시간 운전을 한 탓도 있겠고 나이 탓도 한몫했을 것이다.

안동 하면 유명한 안동찜닭과 간고등어로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좋은 시간도 보냈지만, 하룻밤 자고 나니 기억나는 건 안동 시내 대로변에 늘어서서 눈이 부시게 피어 있던 하얀 벚꽃들이었다.

안동에 내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아산에는 아직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아 아쉬웠는데 안동은 남쪽이라 그런지 벚꽃이 활짝 피어서 제대로 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날씨도 청명하여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 순백의 벚꽃은 오랜만의 지방 나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마음마저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봄꽃을 조사해 보니 벚꽃이 1위이고 튤립이 2위, 개나리가 3위, 매화와 진달래가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만큼 벚꽃은 한국 사람이 봄에 제일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도시들이 많아서 이젠 꼭 진해나 서울 여의도에 가지 않더라도 웬만한 도시에서도 봄에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아산에도 잘 알려진 벚꽃길들이 여럿 있지만, 온양온천역 뒷길 산책로에 심어놓은 벚나무는 봄만 되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터널을 만들어 장관을 이룬다.

안동을 다녀온 다음 날 차를 타고 온양온천역 뒷길을 가다 보니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벚나무들이 모두 기지개를 활짝 켜고 저마다 꽃망울을 터트려서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놀랍게 탈바꿈을 한 것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을 자연이 올해도 어김없이 만들어 냈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벚꽃 터널을 이룬 산책로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가면서 보는 풍경과 오면서 보는 경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순백의 꽃잎으로 온통 하얗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분홍빛이 감돌고 붉은 꽃대들이 가운데 박혀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웅크린 벚꽃잎은 마치 팝콘을 연상시킨다. 

황지우 시인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밥 튀겨 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 갈 일이다/
(중략)
내장사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길을 걷다 보면 정말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더 머물고 싶어진다. 완연한 봄이 왔음이 실감 나고 봄도 벚꽃도 함께 오래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만 갖는 생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벚꽃이 빚어낸 딴 세상의 수명은 뉴질랜드의 봄같이 짧다. 요 며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더니만, 하늘을 향해 피어있던 하얀 벚꽃들이 모두 땅에 내려앉았다. 

하얀 잎이 떨어진 벚나무는 생소하기만 하고 마치 가을에 낙엽을 떨군 나무를 보면서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듯이 꽃잎을 잃은 벚나무를 보면 봄이 가고 있음을 성급히 느끼게 된다.

물론 벚꽃이 진다고 해서 봄날이 갔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도 유채꽃, 튤립 그리고 철쭉 등 봄꽃들이 남아서 봄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영월 시인이 벚꽃을 “요절한 시인의 짧은 생애다”라고 표현했듯이 속절없이 지는 벚꽃은 봄과 짧은 만남을 암시해 주는 듯하다. 

그리고 황홀할 정도로 화사하고 눈이 부시게 아름답던 벚꽃잎이 하룻밤 비바람에 무심하게 떨어져 땅에 내려앉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내 인생의 봄날이 겹친다. 

봄의 상징인 벚꽃이 지듯이 봄날도 곧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지는 벚꽃만큼 빨리 가는 봄이 아쉽지만, 다시 봄이 오면 어김없이 벚꽃이 피어날 것이고, 우리 인생도 또 다시 봄날이 오리라는 바람이 있기에 벚꽃 따라가는 봄과의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으려 한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