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Leader라면 정조(正祖)처럼
[전대길 CEO칼럼] Leader라면 정조(正祖)처럼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0.12 0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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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조선 22대 국왕인 정조(正祖...1752~1800)대왕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는 지역 차별을 해소하는 ‘통합의 정치’였다. 정조 이전에 가장 큰 차별을 받은 곳은 서북 지역(平安道)과 동북 지역인 함경도(咸境道)였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일찍부터 한양 사람이나 삼남지방 유림들로부터 오랑캐인 여진족과 가까운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갖은 멸시를 받았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조정에서는 평안도나 함경도 출신 인재들을 등용하기를 꺼렸다. 

실제로 이 지역 사람들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해 왔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오랑캐와 비슷하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新豐樓) 앞에서의 장용영 수위(守衛) 의식>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新豐樓) 앞에서의 장용영 수위(守衛) 의식>

여기에 더해 이징옥(李澄玉)과 이시애(李施愛)의 역모(逆謀) 사건으로 지역 인재 차별은 더욱 더 극심(極甚)해졌다. 이에 세조(世祖)는 이시애의 반란을 진압한 후부터는 서북 지역 무사들의 무과시험을 원천적으로 금지시켰다. 

이때부터 이들은 분노와 설움으로 나라를 원망했다. 그래서 함경도 백성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의 위기가 처했을 때 의병(義兵)을 일으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적(敵)에게 협조하기까지 했다. 그 사례로 함경도 백성들은 선조의 큰아들 임해군을 붙잡아서 왜군(倭軍)에게 넘겨주었다. 

<정조(正祖) 대왕>
<정조(正祖) 대왕>

1776년 정조대왕은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서북 출신 무사들의 차별부터 철폐했다. 
정조 7년인 1793년에 조선 왕권의 강화를 위해 새롭게 설치한 군영(軍營)인 ‘장용영(壯勇營)’에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무사(武士)들을 적극적으로 선발, 등용했다. 조선 조정의 잠재적 위협 세력이었던 서북인들이 조선에 충성하는 ‘장용영(壯勇營)’ 군사가 된 것이다.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화성행궁(華城行宮)의 정문인 신풍루(新豐樓) 앞은 ‘장용영(壯勇營)’ 군사들이 활동 무대였다. '신풍(新豐)'란 이름은 한나라 고조의 '새로운 풍요로운 고향'이란 고사에서 왔다. 

정조에게 수원 화성이 고향 땅과 같다고 해서 신풍루(新豐樓)란 편액(扁額)을 걸었다. 1795년 을묘 행차 때 신풍루 앞에서 정조 대왕은 친히 참석하여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끓여 먹이는 등 진휼(賑恤) 행사도 벌였다. 

뿐만 아니라 정조 대왕은 신하들에게 늘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신하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했다. 경연(經筵) 시간에 어려운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이는 왕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신하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쉬운 질문만을 한 것이다. 그는 신하들에게 무리하게 나랏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자”고 정조대왕은 침실 벽에다 써 붙여 놓고 늘 다짐했다. 세종대왕 리더십이 훌륭하지만 정조대왕의 리더십도 우리는 배우고 익혀야 한다. 리더(Leader)라면 정조 대왕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기업의 CEO와 국가지도자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어느 지도자처럼 구설(口舌)에 휩싸이지 않게 말을 아끼고 과묵(寡默)하면 좋겠다. 

전국 8도의 인재(人材)를 골고루 등용(登用)시켜 당쟁(黨爭)을 불식(拂拭)시키는 탕평책(蕩平策)을 바탕으로 한 인사관리(人事管理)를 시현(示顯)하면 좋겠다.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 직장연(職場緣)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참 좋겠다. 

자신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려고 억지로 환심(歡心)만 사려고 하지 말고 기업의 조직원과 국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득심(得心)해야 한다. SKY대학 출신들만 신입사원으로 뽑길 선호했던 어떤 대기업은 인화(人和)를 이루지 못해서 사라졌다. 

전국 각지의 인재를 골고루 선발해 온 S, L그룹은 승승장구(乘勝長驅)하고 있다. 인사관리(人事管理)의 탕평책(蕩平策)은 기업이나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바탕이며 그 원동력이다. “사람은 적재적소에 골고루 써야 한다”는 말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알고 있는 진리(眞理)다. 

영어 리더(Leader)의 어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리더(Leader)는 고대 영어에서 ‘여행 가이드’, '길잡이'를 뜻하는 리탄(Lithan)에서 유래했다. 

선사시대 유럽인들은 대부분 부족 단위로 양(羊)을 방목해서 먹고 살았다. 양을 기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의 먹성이 워낙 좋아 수천 마리의 양을 초원에 풀어놓으면 몇 달 이내에 넓은 초원이 황폐해졌다. 그래서 양치는 유목민들은 끊임없이 양을 몰면서 초원을 가로질러 이주해야 했다. 

그런데 지도나 나침반, 동서남북 개념조차 없던 시절, 넓은 대지 한가운데에서 다음에 갈 곳을 찾아 나서야 했던 유목민들은 당장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면 푸른 초원을 만나게 될지, 또 얼마나 가야만 할지 등을 알 수가 없었다. 

길을 헤매다가 깊은 숲으로 잘못 들어가면 야생동물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너무 추운 북쪽으로 올라가면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여행 중에 물을 찾거나 먹을 것을 구할 때도 그것이 먹을 수 있는 물인지와 독초인지 등 구분할 줄 아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이런 노하우(Know-how)를 선조들로부터 구전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기억력 좋은 소수의 사람들만 주변 지리에 밝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고 있어 부족들이 이주할 때마다 이들은 유목민들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길이 없던 시대에 이러한 길잡이에게 많은 것을 의지했다. 길잡이는 자연스레 많은 권한을 갖게 되었고 여행에 방해되는 사람을 처벌하는 등 부족의 안전보호를 위한 강력한 권한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원래 '여행하다'를 뜻하던 고대 영어 리탄(Lithan)에서 나온 리더(Leader)란 말은 '길잡이'에서 '지도자(指導者)'로 그 의미가 발전한 것이다. 참고로 재앙(災殃)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aster'는 사라진다는 뜻의 ‘dis’와 별을 뜻하는 ‘aster’의 합성어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 뱃사람들은 별을 보고 이동할 방향을 잡았다. 구름이 끼거나 폭풍우가 오면 별이 사라져 방향을 잃게 되는 것을 재앙(災殃)이라고 했다. 

끝으로 조직원이나 국민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게 지도자(指導者)다. 자국의 영토(嶺土)만 넓히려고 전쟁을 일으킨 못난이는 지도자(指導者)가 아니고 지도자(地圖者)일 뿐이다.  

끝으로 리더라면 명심해야 할 금언을 적는다.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며 안다고 다 말하지 말자.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며 들었다고 다 믿지 말자.”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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