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턱수염세(稅)와 창문세(窓門稅) 
[전대길의 CEO칼럼] 턱수염세(稅)와 창문세(窓門稅)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0.26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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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1698년 제정 러시아 시대의 실제로 있었던 세금에 관한 실화(實話)다. 
그 당시 러시아 귀족들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턱수염(Beard)을 기르는 관행이 있었다. 러시아 귀족들은 긴 턱수염이 자랑이자 귀족의 자부심이었다.  

  표트르 대제(Pyotr 大帝)
  표트르 대제(Pyotr 大帝)

7척(尺)에 가까운 장신(203Cm)인 ‘표트르 대제(Pyotr l..1672~1725)’가 유럽에서 유학하고 러시아로 귀국했다. 유럽인들의 날렵하고 깔끔한 콧수염에 비해 지저분해 보이는 긴 턱수염이 러시아의 후진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러시아 근대화를 위해 귀족들에게 턱수염을 깎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러시아 귀족들은 자신들의 긴 턱수염은 신(神)이 내려준 선물이라며 목을 내놓을지언정 턱수염만큼은 절대로 자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표트르 대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귀족들의 반발에 밀려 물러서면 황제의 권위가 흔들리고 귀족들의 턱수염을 강제로 깎으려면 근대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강압적인 방법을 써야 하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 

이때 표트르 대제는 강제로 턱수염을 깎지는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척하며 묘책(妙策)을 생각했다. 귀족들에게 턱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허용하되 턱수염을 기른 사람은 100루블(한화 약 400~500만 원)의 <턱수염세(稅)>를 물렸다. 

턱수염세를 납부한 귀족들에게는 그 징표로 토큰 한 개를 지급했다. 턱수염을 깎지 않은 귀족들은 세금을 냈다는 뜻으로 늘 이 토큰을 갖고 다니도록 했다. 

표트르 대제가 턱수염세를 부과하자 러시아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일부 귀족들은 세금을 내고 턱수염을 길러 전통을 수호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하나둘씩 세금에 굴복해 턱수염을 자진해서 깎았다. 

이처럼 귀족들이 턱수염을 스스로 깎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별 쓸모가 없어진 턱수염세가 유야무야(有耶無耶)될 정도였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턱수염세는 세금이 인간의 관습과 행동에 영향을 끼친 사례다. 

“세금 앞에는 어느 누구도 장사가 될 수 없다. 영국 신사(紳士)도 마찬가지다” 

영국에서 시행되었던 창문세(窓門稅)에 관한 이야기다. 
1697~1851년, 영국은 ‘큰 집에는 많은 세금을’이란 원칙으로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따라 세금을 피하려는 시민들은 벽돌과 진흙, 소똥으로 창문을 막았다. 그러자 채광과 통풍이 안 돼 질병이 퍼졌다. 

창문세 시행 후 햇빛은 공짜가 아니었다.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1812~1870)는 “생활에 꼭 필요한 햇빛과 공기를 아껴야 했다”며 한탄(恨歎)했다. 

영국 정부는 창문세(窓門稅) 시행에 따른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부(富)를 차등적으로 세금을 매길 수 있을까?” 하지만 공정 과세를 하려는 시도가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악화시킨 것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마이클 킨’ 국제통화기금(IMF) 공공재정국 부국장과 ‘조엘 슬렘로드’ 미시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쓴 <<세금의 흑역사>>에서 “세금은 모든 공적 문제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주장한다. 

세금 분야에서 인류의 잔머리 지수(JQ)가 만개(滿開)했다. 400년 전 폴란드, 네덜란드는 ‘집의 정면이 도로에 얼마나 넓게 접(接)하는지’에 따라 재산세(財産稅)를 매겼다. 그러자 기형적으로 폭이 좁은 ‘성냥갑’ 집이 들어섰다. 유럽을 여행할 때 “왜 유럽인들이 사는 집을 다닥다닥 붙여서 지었을까?”라는 의문이 이제야 풀릴 것이다.  

네덜란드와 폴란드의 성냥갑 집(Match-box of House)
네덜란드와 폴란드의 성냥갑 집(Match-box of House)

1990년에는 유럽연합이 담배세를 매겼다. 그러자 35㎝ 길이의 ‘롱 담배’, 직접 말아 피는 ‘롤 담배’가 유행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한술 더 떴다. 아예 법인세를 피해 네덜란드, 카리브해 등 조세 회피처로 회사 주소를 옮기기도 했다.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1588~1679)’도 “인간은 불평등 문제와 세금 부담 자체를 고통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금으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친 국민은 세상을 뒤엎기도 했다. 1773년 미국 보스턴 차(茶) 사건은 대영제국이 부과한 ‘차(茶) 세금’에 미국인들이 반발해서 일어났으며 1775년에 일어난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1852년 뉴욕 여성들은 “투표권 없이 세금도 없다”고 외쳤다. 2018년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파리 엘리트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노동자들의 분노가 깔려있다. 

세금 문제는 부(富)와 권력(權力)의 재분배 문제와 연관이 있다. “공정한 세금이란 무엇인가?” 고대 잉카에서는 극빈층에게도 몸에 붙은 ‘이(Sucking-lice)’의 숫자에 따라서 세금을 매겼다고 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아예 세금을 내지 않는 게 옳은가?”라는 문제가 부각된다.  

교정 목적세의 경우 어디까지 공정한 것일까? 황당하게 보이지만 교정 목적이란 측면에선 기후변화와 탄소세는 동전의 양면이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기업들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인은 왜 고분고분 세금을 내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이는 18~19세기 전쟁의 여파다. 영국 내전, 미국 독립 전쟁 등으로 국가 곳간이 비면서 토지세, 소비세 등이 도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도 정부의 징세권(徵稅權)을 강화시켰다. 가난해진 정부는 전쟁 특수를 누린 기업에 돈을 거두기 위해 법인세(法人稅) 제도를 도입했다. 

“중요한 것은 세금 자체가 아니라 세금의 목적과 국민들의 합의 여부다”.

턱수염세와 창문세가 우리에게 금시초문이듯이 미래 세대는 현대 세금 체제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는지 염려된다. 세제(稅制)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재앙적 피해를 막으려고 제때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국적 기업의 탈세를 피하기 위해 세제(稅制)를 정비해야 함을 강조한다. 

코로나19로 확대된 경제 불평등을 좁히기 위해 부자증세(富者增稅)를 시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상속세가 높아지면 사망률이 줄어든다. 더 오래 살려 하거나 사망 신고를 늦추기 때문이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앞으로 턱수염세와 창문세보다 희한(稀罕)한 조세제도(租稅制度)가 또 나올지 싶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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