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빨간 내복, 빨간 깃발, 빨간 풍선
[전대길 CEO칼럼] 빨간 내복, 빨간 깃발, 빨간 풍선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2.0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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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빨간 적색(赤色)과 관련한 소소한 3가지 이야기를 생각 주머니에 담았다.
인간이 내의를 입기 시작한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내의를 입은 사람의 그림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내의, 내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속저고리인 '내의(內衣)'와 속치마인 '내상(內裳)'을 삼국 시대에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처럼 내복을 입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다. 내복의 대명사인 빨간 내복이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속옷은 대부분 흰색이었는데 빨간 내복이 전국을 휩쓸고 유행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빨간색 내복이었을까? 당시 염색 기술의 한계로 가장 물들이기 쉬운 빨간색 제품이 먼저 시장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고급품'이던 내복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서 눈에 띄는 색상을 선호했다. 

빨강은 양(陽)의 기운을 가진 색으로, 동양에서는 귀신이 빨강을 싫어한다고 믿었다. 음의 기운으로 활동하는 귀신은 어둡고 축축한 상태를 좋아한다. 장을 담글 때 잘 익은 고추를 띄우고, 금줄에 빨간 고추를 매달고, 동짓날 문설주에 붉은 팥죽을 뿌리는 풍속도 모두 나쁜 기운을 물리치려는 뜻을 담고 있다.

빨강은 활기찬 생명력이 넘치는 색상이어서 볕이 부족한 겨울에 입는 빨간 내복은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고 활기찬 기운을 북돋아 준다. 이런 연유로  신입사원이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내복을 사드리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다.  

에너지 부족 시대에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해결책 중 하나는 내복을 입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 온도를 조금 낮추면 우리의 몸은 바깥 온도에 자연스럽게 적응해서 거뜬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게다가 실내와 바깥의 기온 차이가 심해서 걸리는 감기도 예방할 수 있다. 내복(內服)은 ‘내 안에 있는 복(福)'이라는 주장도 있다.

빨간 색상과 관련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빨간 깃발 법’ 이야기다.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한 증기 자동차는 유럽 각국에 퍼져나갔다.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교통문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자동차문화의 선봉을 이끈 것이 영국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는 교외용 증기   버스가 수 십 대 정도 운행했다. 이런 증기 버스는 시속 17~25km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느리게 보이나 그 당시에는 소리 없이도 굴러간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수많은 영국인은 새로운 교통수단인 자동차의 가능성에 대해 눈여겨보았으며 진지하게 자동차 연구에 매진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영국 자동차의 등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마차꾼이었다. 

마차꾼들은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가 언젠가는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할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동차에 놀란 말(馬)들이 사람들을 헤치는 교통사고가 일어나자 이들은 참지 못하고 분노로 폭발했다. 그래서 마차꾼과 보수적인 영국인은 관련 법령을 제정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운송수단 법' 즉 '빨간 깃발 법'의 핵심 내용이다. 
1. 영국의 모든 자동차는 최소 3명의 조작원이 탑승해야 한다.
2. 한 명은 운전하고 두 번째 사람은 보일러에 석탄과 물을 집어넣는다.
3. 세 번째 사람은 자동차의 60m 앞에서 빨간 깃발을 마구 흔들며 
   '자동차다! 자동차다!'라고 외치며 사람들이 자동차에 놀라지 않도록 한다.
4. 세 번째 사람은 다리가 아프면 말을 타도된다.
5. 자동차 최고 시속은 6.4km/h 이하로 제한한다. 
   도심 시가지에서는 그 3.2km/h로 운행한다.
6. 마차를 끄는 말이 놀라지 않도록 증기를 방출하지 않는다.

'빨간 깃발 법'이 시행된 후 영국 자동차산업은 점차 위축되었다. 이 법은 내연기관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1896년에야 폐지되었다. 무려 31년이나 지난 후였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는 푸조, 벤츠 같은 경쟁회사들이 나타났다.   

빨간 색상과 관련한 미국에서의 빨간 풍선 찾기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미국 전역에 무작위로 빨간 풍선 10개를 날려 보내면 그 풍선들을 어떻게 찾아낼까? 쉽지도 않지만 다소 엉뚱한 발상이다. 

이 문제를 제기한 곳은 미국 국방성 산하 핵심 연구개발 조직인 방위 고등 연구 계획국(DARPA)이다. DARPA는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위성항법 장치와 음성인식,  S/W, 탄도미사일 방어시스템, 인터넷 등 기술혁신을 연구한다.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 탄생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이 행사는 DARPA 과학자들의 주도 아래 ‘Red Balloon Challenge’가 시작되었다. 이 문제는 여러모로 테러리즘이나 전염성 질병 같은 현실 속 딜레마와 닮아 있었다. 

DARPA는 10개의 풍선을 모두 찾아내는 첫 그룹에게 4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미국의 방대한 국토 면적을 감안하면 성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국립 지리성보국의 수석 애널리스트가 공식 석상에서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2020년 12월 5일 오전 10시, DARPA는 미국 텍사스 휴스턴 외곽의 야구장인 델라웨어 크리스티아나 인근의 숲에서 미국 전역으로 빨간 풍선을 날렸다. 수천 개의 팀이 풍선 찾기 활동을 개시했다. 

주최 측은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장시간 기다릴 준비를 했다. 그런데 풍선을 날린 지 8시간 52분 41초 만에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우승자는 MIT 팀이었다. 그들은 4,665명의 도움을 받아 풍선 10개를 모두 찾아냈다. 

그렇다면 빨간 풍선들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 방법은 엄청난 첨단 기술로 풍선을 찾아낸 게 아니었다. 인터넷에 '풍선 찾기 중앙 웹사이트'를 개설해서 누구나 무료로 가입할 수 있게 하고 인터넷 네트워크로 풍선의 위치를 알려주면 보상해준다는 아이디어만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MIT 팀은 우수한 장비를 갖춘 수많은 팀을 압도하며 빠른 팀워크와 협동으로 우승을 이끌어냈다. 인화(人和)가 바로 정답이었다. 

최근 미국 본토 상공에 날아든 백색의 대형 풍선은 중국에서 쏘아 올린 것으로 판명이 났다. 미국 전투기로 폭탄을 쏘아 풍선을 터트렸는데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국에서도 중국 하늘에 대형 풍선을 날려 보내지 싶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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