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6] 덜어내고 비운다는 거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6] 덜어내고 비운다는 거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1.10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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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쌍둥이 손자들은 한국 겨울을 좋아한다. 아마 겨울에야 볼 수 있는 하얀 눈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뉴질랜드는 겨울이라고 해 봤자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으니 눈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이 신기하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려 수북이 쌓이게 되면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할 수 있어 마냥 신이 나는 모양이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겨울에 쌍둥이들이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심심해할 거 같아 집 근처 공원에 데리고 갔었는데 밤새 내린 눈으로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에는 눈이 녹아 있었지만, 발길이 뜸한 곳에는 여전히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처음에는 눈으로 덮인 길을 걸으며 발자국을 만들더니 이내 눈을 뭉쳐 조그맣고 앙증맞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쌍둥이지만 취향이 달라 만든 눈사람도 서로의 개성이 느껴졌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흔적을 남기고 가려 했는데 아직 성이 차지 않았는지 눈을 뭉쳐 던지며 눈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둘이 서로 눈싸움을 하더니만, 합심하여 할아버지에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도 정말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눈을 뭉쳐 던지고 도망도 다니면서 추위도 잊은 채 손자들과 재미있는 추억을 만든 적이 있었다.

이젠 할아버지와 키가 비슷할 정도로 성장한 청소년이 되어 다시 한국 겨울에 찾아왔다. 체형도 커지고 의젓하게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눈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올해 한국의 겨울은 쌍둥이들을 환영이나 하듯이 예년보다 눈이 많이 내려서 쌍둥이 손자들에게 볼거리와 놀거리를 주었다.

눈을 만난 쌍둥이 손자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눈을 뭉쳐서 굴리며 눈사람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힘이 달려 눈덩이를 충분히 굴릴 수가 없어서 조그맣게 눈사람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제법 눈덩이가 커졌다.

문제는 눈덩이를 굴릴 때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눈을 묻혀야 동그랗게 균형 잡힌 눈사람이 될 텐데 아직 요령이 부족하여 한쪽으로만 굴리다 보니 동그랗고 통통한 몸매의 눈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힘에 부쳐 굴릴 수 없을 만큼 크게 눈덩이를 만든 다음 예쁜 눈사람 모양을 만들기 위해 눈덩이를 덜어내면서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눈덩이를 덜어내고 다듬어서 보기 좋은 몸통을 만든 다음 머리 부분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눈을 뭉치고 굴려서 일단 머리가 될 눈덩이를 만들어 몸통 위에 올리고 눈덩이를 깎아 덜어내면서 다듬어 둥그렇게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주위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잘라 눈을 만들고 코도 만들었다. 그리고 기다란 막대기를 주워 몸통에 붙여 팔을 만들고 가지고 온 모자도 씌워주고 마스크도 씌워주니 시대를 반영하는 근사한 눈사람이 되었다. 사진으로 증거 사진을 남기면서 손자들과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손자들과 눈사람을 만들며 깨달은 게 있다. 근사하고 보기 좋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에 깎고 덜어내면서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듯 우리 삶이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기 위해서는 담고 채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국 덜어내고 비우면서 다듬어 나가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담고 채우고 쌓으려고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쌓고 채워가는 길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성공의 척도로 얘기하는 학위, 지위, 재물, 명예 등등이 다 쌓고 채워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의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니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인생의 소풍을 마치고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담고 채워놓은 것을 덜어내고 비우며 다듬는 과정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지위와 권세를 얻고 출세한 ‘난 사람’이나, 학식이 풍부한 ‘든 사람’보다는 훌륭한 품성과 인격을 지니고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지닌 ‘된 사람’이 되어야 하므로, 보기 좋은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을 깎아 덜어내듯이 우리 삶에서도 내려놓고 비우면서 다듬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도종환 시인도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삶도 그런 것 같다. 
살면서 좀 더 크고 넓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개울물이 강물을 이룬 뒤 끝없이 바다로 바다로 나아가듯이, 
무엇이 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야망 때문에 
사람들은 크고 넓은 세계를 향해 노 저어 간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때 묻고 상처받고 거칠어지곤 한다
... 
바다에서 돌아오는 날,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묻는다. 
바다를 거쳐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길을 택할 것인가, 
잔잔하던 내 최초의 강가를 행해 지금 욕심 없이 돌아갈 것인가”

쌍둥이 손자들이 멋지게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날이 풀리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남았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로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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