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3] 가는 날이 장날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3] 가는 날이 장날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5.09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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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내자(內子)가 오랜만에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미국에 사는 둘째 아들네를 방문하기 위해 한 달 예정으로 떠났다. 혼자 외국 여행은 처음이라 염려도 되지만 설레는 모양이다. 

설렘은 오랜만에 외국 여행을 하면서 갖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고, 아들이 낳은 둘째 아이를 아직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첫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들만 넷을 두었는데 모두 결혼하여 자녀를 둘씩 낳는 바람에 고맙게도  손자녀가 여덟 명이 되었다. 그중에 여섯은 뉴질랜드에 살고 둘은 미국에 살고 있는데, 미국에 사는 손자를 직접 보지 못해 늘 아쉬웠다. 

근데 최근에 둘째네가 이사하고 마침 아이 생일도 있으니 겸사겸사 우리 부부를 초청했고, 둘 중에 한 사람은 남아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니까 내가 남기로 했다.

아내는 손자들 재롱이나 보면서 편히 지내야 할 나이인데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거의 10년 가까이 모시다 보니 심신이 많이 약해져서 재충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에는 둘째 아들네가 살고 있는 거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언니와 동생이 살고 있어서 이번 여행을 통해 못 본 손자도 보고, 자매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아내가 가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방문이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걱정거리들이 있어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우선 내가 아직 허리로 인한 신경통이 낫지 않아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한국에 남아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아내가 제일 젊고(?) 가장 연장자는 장인어른으로 올해 96세이다. 평균 연령이 80세이니 양로원 같은 상황이고,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전형적인 노노(老老) 돌봄 가정이다. 

그러다 보니 정규적으로 다니시는 온천과 병원도 모시고 가야 하고 식사도 챙겨드려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식사 준비가 제일 걱정되는 모양이다. 

말로는 매일 외식하거나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라고 쉽게 얘기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내심 염려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고 안심시키지만, 주방을 책임졌던 사람으로서 걱정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뉴질랜드에 사는 큰 며느리가 스시 가게를 인수해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기존 가게를 인수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가게 분위기와 주방을 만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고쳤다. 

워낙 음식 솜씨가 좋아서 잘하리라는 건 의심하지 않지만, 스시 가게를 직접 운영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연어 가시를 빼고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재료를 다듬고 스시 밥 짓는 것 등등 이것저것 배워야 했다. 

아내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스시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때 그동안 배웠던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도움을 주면 훨씬 일이 수월할 텐데, 미국 방문으로 함께해 줄 수 없어 너무 안타까워했다.

더구나 한국에 계신 친정어머니가 딸내미 사업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해 뉴질랜드로 가셨다는 말에 아내가 더 미안해했다.

친정어머니는 연희동에서 유명한 한정식 점을 오래 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업 경험이 많으셔서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딸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실 수 있지만, 스시 분야는 처음이라 어차피 일은 큰 며느리가 감당해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아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주에 친정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오도록 일정이 잡혀 있어서 큰 며느리가 오로지 혼자 일을 감당해야만 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여기저기 뉴질랜드에 있는 지인에게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까마귀 똥도 약에 쓰려면 오백 냥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내가 있을 때는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어렵더니만, 우리가 필요하니 이번엔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혼자 외국 여행길이라 비행기를 갈아타고, 세관 검사도 받고 짐을 잘 찾아 무사히 미국 땅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다른 큰 걱정거리에 묻혀 입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몇 년 동안 벼르고 별러 떠나는 여행길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가는 날이 장날’이고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정이지만, 그래도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이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건강 문제나 큰아이 사업도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이왕 모처럼 떠난 여행길 모든 걱정거리를 다 잊고 좋은 시간 보내며 새로운 힘을 얻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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