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6] 나이가 별건가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6] 나이가 별건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5.30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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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아산에 있는 평생교육원에서 취미 삼아 기타를 배우고 있다. 인기가 높은 강좌인지라 경쟁률이 높아 수강 신청한 후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당첨되면 결제하고 등록하게 된다. 잘 나오던 사람이 다음 수강 때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알아보면 추첨에서 떨어져 등록을 못 했다고 하는데, 나는 매번 당첨됐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수강생들의 비중은 여자들이 많고 남자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나이는 더 많은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일 오전에 진행되는 강습이니 젊은 남자들은 실업자나 자영업자 또는 시간제 근무로 용케 시간이 맞는 사람이 아닌 이상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체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강습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강사가 준비해 온 노래를 가지고 노래에 따른 전주와 반주법을 연습한다. 그러다 보니 계속 연이어 수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딱히 고급반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새로운 노래를 배우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시작된 새로운 학기에도 계속 등록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고 또 새로 등록한 낯선 얼굴들도 보였다. 첫 시간에 서로 일어나 통성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남자들은 거의 다 60을 넘겼고, 여자들은 3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해 보였다. 이렇게 추측성 표현을 쓴 것은 나이는 본인이 원하는 사람만 밝혔기 때문이다.

나이를 당당하게 밝힌 사람 중에는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에도 총무라는 직함으로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악보도 나눠주는 등 궂은일을 하며 봉사하고 있는 수강생이 있었는데, 나이가 42살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봐서 그렇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미혼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30대 초반이나 많이 잡아야 3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분만의 경우가 아니다. 다른 강좌에서 총무로 봉사하던 분도 50이 넘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10여 년을 줄여 말해도 믿을 수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이 가늠을 하기 어려운 일은 비단 여자들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남자들도 관리 여하에 따라 나이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평소 관리를 잘하시는 장인어른은 누구도 96세라고 보지 않는다. 얼굴 피부도 그렇고 몸도 꼿꼿하시기 때문에 80대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장인어른을 모시고 매주 화요일마다 집 근처에 있는 호텔 온천탕을 가는데, 오전 시간에 가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그중에는 꼭 나이를 묻는 어르신이 있는데, 아마도 자신이 제일 연장자일 거로 지레짐작하며 나이를 통한 비교 우위를 은근히 즐기려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자기보다 훨씬 연장자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고 말하면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며 장인어른도 당신이 최고령자라는 것에 우쭐해하셨던 경험이 있다.

나도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나이를 말하면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노인’으로 인정받아 전철 무임승차를 할 수 있는 시니어 카드를 발급받아 가끔 전철을 이용하더라도 경로석에는 앉기가 쑥스럽다. 서서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부러 경로석을 피해 탄다. 

혹시라도 나를 보고 노인 취급하여 자리를 양보해 주는 젊은이가 있다면 민망할 텐데 다행히 아직은 그런 경우가 없어서 다행이다. 이처럼 나 자신도 내 나이에 걸맞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보면 나이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모양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가 곡강시(曲江詩)에서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면서 사람이 칠십 살기가 옛날부터 드물다고 했지만, 요즘은 칠십이 아니라 구십 넘은 어르신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거동에 어려움이 없는 어르신들은 나이보다 대부분 젊어 보이신다.

나이를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거나 아니면 더 들어 보이는 극과 극의 시대이지 제 나이로 보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이러다 보니 나이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나이가 별건가 하며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백발 소년단’이란 특이한 시니어 보컬 그룹을 본 적이 있다. 평균 연령이 64세인 이들은 영화감독, 대학 교수, 자동차 회사 근무, 식당 경영, 마트 운영 등 다양한 경력 소유자인데, 현대적 감각에 맞게 ‘제논’, ‘로운’, ‘주짱’, ‘백수’, ‘알렉스’, ‘스미스’라는 활동명으로 함께 모여 그룹을 결성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흰머리를 염색하거나 염색 샴푸를 쓰면서 가리기 바쁜데 이들은 오히려 나이 듦의 상징인 백발을 당당히 내세우며 그룹 이름에 실었다. 

정년퇴직이니 은퇴니 하는 나이의 굴레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택한 이들의 모습이 ‘주책’스럽지 않고 멋지고 부럽기까지 했다. 이들에겐 나이는 정말 별거 아니고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구글에서 2조 원이라는 돈을 투자해서 설립한 ‘칼리코’(Calico: California life company)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인간 수명 500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세상이 오면 나이는 정말 별거 아닌 아무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우린 이미 알게 모르게 그런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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