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0] 격세지감(隔世之感)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0] 격세지감(隔世之感)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9.20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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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란 신문물이 들어 온 것은 중학교 다닐 때라고 기억한다.
흑백 텔레비전이었고 방송국도 몇 개 되지 않아 프로그램도 다양하지 않았지만, 조그만 네모 상자 안에서 사람들이 나와 말하고 노래하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전까지는 만화방이 TV 극장이었다. 우리 집은 신당동에 있었고 텔레비전이 있는 만화방은 금호동에 있어서 거의 30분 가까이 걸어가야만 했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만화방으로 가서 만화를 보면 저녁에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표를 나눠주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제일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저녁 시간에 하는 만화 영화였다. 대여섯 시에 하는 만화 영화를 보기 위해 나처럼 미리 표를 받은 친구들이 만화방으로 하나둘 모여들면 만화방은 텔레비전 극장으로 변신한다. 텔레비전을 가운데 비치하고 벽을 따라 둥글게 의자를 놓은 다음 가운데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가마니를 깔아 놓는다. 

당연히 텔레비전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앞자리가 명당자리고, 혹시라도 늦게 가서 뒤에 앉게 되면 앞 친구 머리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불평할 수가 없었다. 귀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주로 만화 영화를 보러 가지만, 당시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프로 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만화방은 우리 또래뿐만 아니라 형들 심지어는 어른들까지 구경하러 오기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으로 꽉 차서 몸을 옴나위 할 수 없었다. 특히 당시에 국민적 영웅 취급을 받던 김일 선수가 나오는 경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때에는 라디오가 최고의 친구였다. 특히 우리가 엽서에 사연과 함께 노래를 신청하면,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한 노래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았다. 

운 좋게 내가 원하는 노래가 나오면 재빨리 종이에다 한글로 가사를 옮겨적었다. 나중에는 카세트테이프가 있는 라디오에 녹음하는 기능이 있어서 노래 가사를 옮겨적는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한국 가요보다는 외국 팝송을 더 선호했고, 야유회에 가서도 팝송을 부르는 친구들이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너도나도 팝송 하나쯤은 십팔 번으로 부르고 싶어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영미권 노래와 영화에 매료되어 내남없이 추종하던 때였고 모든 문화의 중심이 그곳이었다.

그런데 상전벽해(桑田碧海)할 일이 생겼다. 한국 문화가 케이 컬쳐(K-culture)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사로잡아 새로운 문화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미 K팝이란 명칭으로 방탄소년단(BTS)이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대상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빌보드 차트 핫200,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전 세계에 팬덤을 구축했다. 

우리나라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진입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꿈같은 일이었다. 특히 싱글 앨범의 스트리밍, 음원 판매량,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을 따져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차트 핫100은 현지에서 활동하지 않거나 비영어권 가수들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탄소년단이 ‘버터’라는 노래로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니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최초로 빌보드 핫 100에 입성한 원더걸스나, 전 세계적으로 말춤을 유행시키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싸이, 그리고 블랙핑크 등 여러 가수로 인해 지구촌 젊은이들이 K팝에 빠져들고 있다. 

여러 해 전 천안 S 대학교에서 외국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등등 세계 곳곳에서 유학왔는데, 대부분 한국 노래와 가수들에 매료되어 한국과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왔다는 것에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노래뿐만이 아니다. 한국 영화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란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극영화상 등 4관왕에 오르면서 K영화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국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이 방송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에미상 수상식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감독상과 주연배우상을 포함한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모 일간지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에서 에미상을 수상함으로써 K팝, K영화에 이어 K드라마에 이르기까지 ‘한류 트라이앵글’이 완성되었다고 표현했다. 

늦은 밤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가사를 뜻도 모른 채 들리는 대로 한글로 종이에 옮겨 적어가며 흥얼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지구촌 젊은이들이 한국 노래를 배우고 따라 부른다.

팝송을 부르고 미국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미국이란 나라와 문화를 동경했었는데, 이젠 지구촌 곳곳의 젊은이들이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국 영화 및 드라마에 빠져들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이란 나라를 동경하고 있다.

내 생애에 보는 이런 변화가 생경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랑스럽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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