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7] 배움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7] 배움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1.17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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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나는 학창 시절에 그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염려를 끼친 적은 없었다. 또한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 들은 기억도 없는 것을 보면 공부 방면으로는 그저 평범한 학생에 속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동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마 주변에서 나를 지켜봐 주면서 동기를 유발할 멘토가 있었다면 엉덩이가 무겁고 끈기가 있는 내 성격으로 봐서 공부도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텐데 그게 아쉽기도 하다.

공부에 별로 흥미와 관심도 없었던 내가 한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거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에서도 대학교와 대학원을 나와 국내외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가 두 개씩이나 있을 정도로 가방끈이 길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공부하면서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까?” “괜히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거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돌아보니 배움에 쏟은 투자와 희생은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연세 교육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다. 지금은 ‘K-문화’ 열풍으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수요가 많아 대학교에서도 프로그램을 개설할 정도로 유명한 과정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처음 개설된 생소한 분야였다. 

따라서 흥미가 있어 배웠지만 졸업 후 써먹을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비싼 등록금과 시간을 투자했으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석사 학위 덕분에 직장에서 인정받아 승진했고, 결정적으로 덕을 본 것은 뉴질랜드 이민 갈 때 고학력으로 이민 점수에 보탬이 된 일이다. 공부할 때 이민을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배움에 투자한 것이 몇 년이 지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가져다준 셈이다.

뉴질랜드에서 배움에 투자한 것도 여러모로 삶에 도움을 주었다.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다시 대학교 문을 두드린 것은 오클랜드에 있는 ‘오클랜드 기술 대학교’(Auckland University of Technology)의 ‘번역사 자격증 과정’(Certificate in Translation Studies, Level 7)이었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 통역/번역 업무를 해볼 생각이었다. 계획대로 그 길로 나가진 않았지만, 이 자격증으로 여러 교민을 위해 통역을 도와줄 수 있었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잘 써먹고 있다. 

얼마 전에도 뉴질랜드 연금 문제로 서류를 번역하여 공증해서 보낼 일이 있었는데, 번역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따로 번역 사무소에 맡기지 않고 내가 번역하여 공증만 받아 보낼 수가 있었다. 배움에 투자한 효과를 지금까지 보고 있다.

또 다른 예는 뉴질랜드에서 직장을 잡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지인의 소개로 오클랜드 비지니스 스쿨(Auckland Business School)에서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 자격증’ 과정을 공부한 일이다. 

인문학도로서 컴퓨터를 그것도 영어로 배운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마친 후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 일은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얻은 일자리였으며,  낯선 배움의 길이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준 예가 되었다. 

이 일은 우리가 해밀턴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배움에 대한 투자의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뉴질랜드에서 법과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 법대에 들어가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면서 내가 이 나이에 왜 사서 고생하고 있는지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졸업하여 변호사가 되어도 나이가 많아서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느지막이 시작한 배움은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다. 키위 변호사 사무실과 오클랜드 사립 대학에서 법률 고문으로 근무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또한 한인회 회장과 대양주 총한인회 법률 고문으로 봉사할 기회도 얻게 되면서 인적 교류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공무원연금공단 및 여러 곳에서 수년간 유언과 상속에 관한 분야를 강의하게 되어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수능에서 만점 받은 학생이 인터뷰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 해서 한때 많이 회자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학생에게는 공부가 제일 쉬웠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다른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배움에 투자하며 고생스럽게 공부한 시간들이 내 인생 여정에서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기회의 신인 카이로스(KAIROS)는 앞머리는 무성하지만 뒷머리는 대머리고 양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고 어깨와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것은 기회를 발견한 자가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지만, 뒷머리가 대머리이기 때문에 돌아서면 붙잡을 수 없다. 

어깨뿐만 아니라 발 뒤꿈치에도 날개가 달려 있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양손에 든 저울과 칼은 기회를 볼 때 저울과 같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칼처럼 날카롭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카이로스가 벌거벗고 있어 누구에게나 쉽게 눈에 띄듯이 기회는 모두의 눈에 띈다. 하지만 순식간에 달아나 버리는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배움은 준비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고, 배움은 준비를 갖추게 해준다.

내 인생에서 배움은 절대 배신하지 않았고, 배움에 투자한 일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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