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9] 트로트 전성시대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09] 트로트 전성시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1.31 0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나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텔레비전을 틀면 방송국마다 연예인이나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등장하여 음식을 먹거나 만들거나 하는 먹방 프로그램에 질려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코드가 맞지 않아서인지 예능 프로그램에 별로 흥미가 없어졌고 감흥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을 볼 바에는 잘 만든 드라마를 보는 편이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능 프로그램은 내 텔레비전 시청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외국으로 이민을 가기 전에는 텔레비전 시청 선호도 1순위가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저녁 9시 뉴스는 웬만하면 빼먹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날 하루 있었던 뉴스를 접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루틴이었다. 

하지만 귀국 이후에는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귀국 후 처음 얼마간은 오랜 외국 생활 탓에 느꼈던 낯섦을 빨리 벗어버리고 속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뉴스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뉴스를 보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밝고 희망적인 소식보다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고나 우려를 자아내는 사건들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또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정치적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부 시민들의 집단 편향적인 추종도 우려를 낳게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일부러 채널을 맞춰가면서 뉴스 프로그램을 보려고는 안 한다.

뉴스 보는 것도 소원해지고 예능 프로그램도 코드가 맞지 않아 채널을 돌리게 되지만, 예외적으로 꼭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다.

내가 늦은 밤까지 본방 사수를 할 정도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유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도전자들의 열띤 경연도 재미있지만, 그들의 절절한 사연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음악계에서 비주류였고 사회적으로도 “뽕짝’이라며 엽신 여겨졌던 트로트를 부르며 무명 가수의 길을 걷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온갖 궂은일을 해가면서 소규모 행사장이나 시장 장터 등 장소를 마다하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기꺼이 노래 부르면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절실함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또한 다니던 직장에서 사표까지 내며 ‘파부침주’(破釜沈舟: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힘)의 심정으로 이젠 돌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는 결연한 배수의 진을 치며 트로트 가수의 길에 올인하는 절박함을 보며 나도 같이 응원하게 된다. 

2020년 1월 초 C 방송국에서 시작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은 코로나 블루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와 걱정 속에서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며 열띤 호응을 얻었다. 

지상파 방송으로는 유례없는 3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 속에 큰 성공을 거두면서 트로트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 후 여러 방송국에서 너도나도 유사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실력 있는 신선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배출되면서 그들을 따르는 폭넓은 팬덤 층이 구축되어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트로트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음악 장르로 확장하면서 대세가 되었다.

내가 젊었을 때 트로트계에서는 나훈아와 남진이 쌍벽을 이루며 라이벌전을 벌였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트로트라는 장르는 술자리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며 쉽게 불러대던 노래로 여겨졌고, 이들을 추종하며 열광하는 팬들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절묘하게 꺾어주며 불러제끼는 트로트에 마음이 동하고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빛바랜 감성까지 되살아난다. 때론 트로트 가락에 흥겨워 나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고, 어떤 때에는 애달픈 곡조에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어느새 트로트에 무장 해제되어 이성의 끈을 놓고 감성에 빠진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이만큼 내 음악 세계에서도 트로트가 대세가 되었다.

이런 추세를 반영이나 하듯 작년 말에 시작된 M 방송사와 C 방송사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마치 노래 부르는 모든 사람의 꿈이 트로트 가수가 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듯이 보인다.

트로트 가수가 되려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들부터 시작하여 고등학생, 대학생도 있고, 농촌 및 어촌 출신 도전자, 일반 직장인, 자영업자, 전문 직업인, 스포츠 선수, 프로 발레리나, 마술사, 아나운서 및 방송인 등등 어느 나이, 어느 직종에 종사하고 있든지 트로트 가수가 되려는 꿈을 꾼다.

심지어는 아이돌 출신 가수, R&B 가수, 래퍼, 성악가, 뮤지컬 배우 등 다른 음악 장르에서 나름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들도 트로트 가수가 되려고 도전장을 내민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가수의 길은 트로트 가수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히 트로트 전성 시대이다.

한때는 ‘뽕짝’이라고 폄하되거나 ‘왜색가요’라는 오명을 쓰고 일부 노래들이 금지까지 당했던 우리의 대중가요인 트로트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음악계에서 대세가 되었다.

더 나아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가수들과 그 팬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기부 등을 통해 건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 또 새로운 트로트 영웅들이 탄생하게 되고 그를 좇는 열성 팬들이 또 다른 팬덤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새로운 트로트 영웅들의 탄생과 그 팬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가 더 밝아지길 기대해 본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