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6] 노욕(老慾)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6] 노욕(老慾)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3.21 0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노욕(老慾)이란 ‘늙은이가 부리는 욕심’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 정의를 구체화하려면 두 단어에 대한 추가적인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첫째는 ‘늙은이’의 범주를 명확히 해야 한다. ‘늙은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중년’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요즘처럼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사전적 정의에 따라 마흔 살 안팎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늙은이’로 구분한다면 어폐(語弊)가 있다. 근거는 불분명하지만, 유엔에서 새로 규정한 나이 구분이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기준에 따르면 65세까지 ‘청년’이고 66세부터 79세까지를 ‘중년’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늙은이’라는 개념이 중년을 지난 나이가 많은 사람이란 사전적 정의가 현실적 감각을 지니려면 66세부터 중년이라고 구분한 범주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또 다른 단어인 ‘욕심’에 관한 구체적인 정의도 필요하다. 얼마만큼을 욕심으로 볼 것인가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사람을 박수치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이 든 사람의 욕심으로 폄훼하는 시각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욕(老慾)은 최소한 법적으로 노인이라고 규정한 65세를 넘긴 나이로서 보편적인 사람의 시각으로 과욕(過慾)으로 여겨질 수 있는 욕심을 내는 경우라고 정리하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노욕의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과 명예 욕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은 형제가 다섯인 집안에 둘째이다. 다섯 형제 중 형님과 넷째 동생이 돌아가셔서 세 형제만 남았다. 지인과 바로 아래 동생은 이미 90세를 넘겼고, 막냇동생도 거의 90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었다. 

지인과 막냇동생은 이미 오래전에 사업을 정리하고 내려놓았지만, 제법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의 바로 아래 동생분은 90이 넘은 연세에도 아직도 회사에 출근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 물론 직함은 명예 회장으로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명목상 물러나 있지만, 회사의 중요한 결정 사항에 관여하고, 은행 관계 업무는 당신이 직접 챙긴다고 한다. 

아직도 당신만이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 그런지 모감르겠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겐 노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서 감투나 명예직에 연연해하는 것도 노욕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내가 한국에서 사회 참여 활동의 일환으로 몸담고 있는 조직이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아산시 자치위원회’라는 곳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대통령 직속 조직이고, ‘아산시 자치위원회’는 아산 시장 직할 조직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의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게 된 경위는 뉴질랜드에 거주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질랜드에서 한인회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우연히 관여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연계가 되어 계속 봉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다른 자문위원들과 데면데면하여 회의가 있을 때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 참여하다가 임기가 끝나면서 그만두려고 재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또다시 자문위원으로 선정됐다고 위임장을 받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뉴질랜드에서 민주평통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려면 선발 과정도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봉사직임에도 불구하고 회비를 내야 한다. 물론 자발적인 기부라고 하지만, 대부분 의무 조항으로 여긴다.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희생하여 봉사하면서 회비까지 낸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른 자문위원들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기꺼이 회비를 내더라도 민주평통 자문위원이라는 직함을 얻어 내세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 중에 많았는데, 젊은이들 보기엔 늘그막에 사회적 명예를 얻으려는 노욕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마음을 둔다.

공자는 논어(論語) 계씨(季氏) 편에서 세 가지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해 말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血氣未定)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戒之在色), 장성해서는 혈기가 왕성하므로(血氣方剛) 싸우는 일을 경계해야 하고(戒之在鬪),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약했으므로(血氣旣衰)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戒之在得)”

혈기가 이미 쇠약했는데도 무엇이 되려 하거나 무엇을 얻으려고 과한 욕심을 부리면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고, 남들에게 안쓰럽게 보이고 더 나아가 추하게 보여 노추(老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이 부리는 욕심이 모두 노욕이 되고 노추가 되는 것은 아니다.내 친구 중에는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배재학당 뉴욕총동창회 회장으로 세계 어느 동창회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24/7/365’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동창회 일에 온전히 몰두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헌신적인 봉사를 두고 누구도 노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이들 못지않게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는 행보에 아낌없는 찬사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고 했다. 나이 들어서 우리들의 행보가 자신만을 위해 지나치게 노욕(老慾)을 부리다가는 노년을 욕되게 하는 노욕(老辱)이 될 수 있지만, 남을 위한 욕심이라면 우리의 행보는 아름답게 늙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