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8] "쌤통이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8] "쌤통이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4.04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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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드디어 고장이 났다. 
허리가 삐끗하더니만 꼿꼿하게 서 있기조차 힘들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엉거주춤하게 걷는 모습이 영락없는 촌로(村老) 몰골이다.

얼마 전에 참석한 1박 2일 연수 모임을 가기 전부터 허리 상태가 좋지 않고 조금씩 통증이 와서 자세를 바로잡고 앉으면서 버텼었는데, 연수 모임 둘째 날 아침에 샤워하다가 갑자기 삐끗하더니 허리를 반듯하게 펴기가 어렵고 통증이 심해졌다.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을 때도 허리, 오른쪽 엉덩이와 종아리 통증이 있는 좌골신경통 증상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미련하게도 버티고 버티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겪은 후에야 어쩔 수 없이 가정의를 찾아갔다. 

사정 얘기를 하니,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추천해주었다. 뉴질랜드 의료 체계는 가정의에게 일단 진료받고 더 정밀 진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가정의의 추천을 받아 전문의에게 진료받을 수 있다. 

전문의가 여러모로 진찰하더니만 허리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아주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뼈 주사다. 주사를 맞고 나니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통증이 없어지는 것을 왜 그리 고생했나 싶었다.

그 후 허리에 신경 쓰면서 조심해 왔었는데 다시 재발한 것이다. 나름대로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견뎌보려고 애쓰다가 결국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디스크가 의심된다고 하면서 정확한 판정을 위해서는 MRI를 찍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단 신경 주사를 맞고 물리 치료를 해보자고 권한다. 

말이 신경 치료지 뼈에 주사 놓는 것만큼 아팠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니라 허리뼈를 따라 무려 여덟 곳에 주사를 놓는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조금 따끔, 찌릿합니다.”라고 의사가 경고하는 데 부사가 틀렸다. ‘조금’이 아니라 ‘엄청’으로 바꿔야 했다. 바늘이 들어갈 때는 따끔하고 약물을 투입할 때는 찌릿찌릿한 게 엄청 아파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벌써 2주째 주사를 맞았는데, 허리를 펼 수 있고 엉덩이 부분의 통증은 조금 가셨지만, 아직도 종아리는 여전히 당긴다. 특히 걸을 때 통증이 있어 오래 걷기가 어렵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는 괜찮았다가도 일어서면 통증이 온다. 제일 편한 자세가 침대에 바르게 누워있는 것이다. 침대에 바르게 누운 자세로 허리를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불현듯 생뚱맞게 ‘쌤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아마도 나잇살이나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음만은 청춘이라서 몸을 무리하게 쓰다가 화를 자초한 것에 대해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역설적으로 표현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의 근저(根底)에는 요즘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배 주위가 두툼해지는 ‘배둘레햄’이 형성되는 것이 우려되어, 윗몸 일으키기를 다시 시작하고 평소에 하지 않던 양팔 벌려 제자리에서 뛰는 PT 체조를 했는데, 나이를 무시한 채 옛날 생각만 하고 무리하게 목표를 높게 정해 하면서 허리에 무리를 준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허리 통증의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이 또한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런 추측을 낳게 한 오래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체육을 담당하던 선생님은 배재 고등학교 동문으로서 키가 훤칠하고 우람한 체격을 지니고 누구보다 배재 정신이 투철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후배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어, 가끔은 체육 시간에 혹독한 훈련을 시키셨다.

그날도 혹독한 훈련의 일환으로 체육 시간에 우리들을 역도부실로 데려가셨다. 지하실에 위치한 역도부실은 육중한 역기들이 주는 중압감이 가득했다. 거치대 위에는 역도 경기장에서나 보던 거대한 크기의 바벨이 걸려 있었는데, 무게는 차치하고라도 크기만으로도 압도당해 우리는 이미 기가 죽었다. 

한 사람씩 불려나가 그 바벨을 어깨로 지탱하고 스쿼트를 했는데 대부분 바벨 무게로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일어났다. 내 차례가 됐을 때 제법 무게를 견디며 일어서자 선생님은 계속하라고 시키셨다. 나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기를 쓰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몇 차례나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거의 10번은 했던 거 같다. 

간신히 마친 후에 하체 근육이 이완되어 걷지 못하고, 친구의 부축을 받아 학교 조퇴까지 하며 택시 타고 집에 온 적이 있었다. 난 하체에 큰 이상이 생긴 줄 알고 걱정했는데, 하루 쉬고 나니 다리에 근육통은 있었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그 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절대로 무리하게 운동해서는 안 된다는 확실한 교훈을 배웠다. 그런데 어느덧 고희를 앞둔 나이에 그 교훈을 잊고 무리했으니 마음 한구석에서 ‘쌤통이다’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명심보감에는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이 순리(順理)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거슬릴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고 나이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 순리인데 따르지 않으려고 하다 망한 것이다. 

그동안 나이를 이겨 보려고 흰머리를 염색도 하고, 젊은이들 못지않게 근육을 키우려고 애쓴 몸을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뿌듯해하고, 매일 온천욕 할 때 슬쩍슬쩍 동년배들과 몸을 비교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던 교만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나잇살이나 먹고서 주제도 모르고 기를 쓰다가, 어쩔 수 없는 노친네임을 깨닫게 되는 낭패를 보고 남에게 쌤통이라는 말을 듣기 전에 나 스스로 쌤통이라고 자책하며 깨닫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이젠 순리대로 살아야겠다. 이 나이에 여전히 몸으로 배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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