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0] 교실 밖의 스승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0] 교실 밖의 스승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2.07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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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스승은 교실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친구 중에 얼마 전 대학 교수로 정년퇴직을 한 친구가 있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것뿐만 아니라 동네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죽마고우(竹馬故友)이며 단짝 친구이다. 이 친구와 내가 학창 시절에 교실 밖의 스승을 만난 적이 있다.

친구는 금호동에 그리고 나는 길 건너 신당동에 살았고, 방과 후 활동도 같은 태권도부였기 때문에 함께 집에 올 때가 많았다. 정거장에 내리면 그 친구 동네로 걸어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가까워지면 나를 바래다준다면서 우리 동네로 오고, 그러면 다시 또 내가 바래다준다고 그 친구 동네로 걷기를 반복하곤 했다. 

그러다가 합의를 본 것이 중간 지점에 있던 호두과자를 구워 팔던 노점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우리가 헤어지기로 정한 호두과자 노점은 리어카를 개조해서 기계를 설치하고 희미한 가스 불을 켜놓고 호두과자를 구워 팔며 장사하던 가게였다. 

앞 가림막을 제치고 들어서면 리어카 한 편에 걸터앉아 호두과자를 굽고 있는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30대쯤 되어 보이던 주인 남자는 모자를 눌러 쓴 채 거의 매일 저녁에 그 자리에 나와 장사했다.

방과 후 운동까지 해서 배가 고팠던 우리는 그 집 단골손님이었고, 돈이 모자라면 외상으로 주기도 했다. 우리가 자주 들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고 급기야 인생 상담까지 하게 되었다. 어린 우리에게 호두과자 노점 주인은 단순히 호두과자를 구워 파는 상인이 아니라 인생 선배이자 스승이었다. 

우린 호두과자 스승에게서 공부 스트레스를 포함한 학창 시절의 애로 사항부터 연애 상담에 이어 성교육까지 받았다. 모든 문제에 술술 답변을 늘어놓는 걸 듣고 있노라면 마치 은둔 고승(高僧)과 같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불우한 철학자같이 느껴졌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노점에서 호두과자나 굽는 평범한 상인이었지만, 우리에겐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걸 가르쳐준 인생 스승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에게 깨달음을 준 또 다른 스승(?)을 보게 되었다. 외발로 떡을 팔고 있는 최영민이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방송이었다. 한 발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힘든 삶이겠지만, 어린 시절의 삶도 불행의 연속이었다. 

3살 때 양친을 모두 잃고 보육원에 맡겨져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다. 그 후 친척이 데려다 키우다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버림받게 되었다.

그래도 살아보려고 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장애가 있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으로 취업할 수 없었다. 

그러다 찹쌀떡 외판원 모집 공고를 보고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시작은 했지만, 어렵게 용기를 내서 들어선 술집 주인으로부터 심한 수모와 괄시를 받으며 쫓겨나서 한없이 울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편견과 선입견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시 도전했다고 한다.

한 발이 없는 모습으로 찹쌀떡을 팔다 보면 불쌍하게 여기는 손님이 적선하듯 돈을 주면 절대로 받지 않는다고 한다. 동정을 받게 되면 나약해질 수도 있고, 자신은 동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찹쌀떡을 파는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늘 웃는 얼굴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손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찹쌀떡을 팔다 보면 밥도 못 먹고 애쓰는 모습이 측은해서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며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손님들도 만나게 된다.

불행하기만 하고 힘들고 막막했던 인생을 스스로 끝내려는 생각까지 했었지만, 그는 “죽음까지 각오한 내가 뭐든 못하겠는가!”라는 각오로 일떠섰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내 일을 하니 더 많은 사람이 내 편이 되어 주고 비난하기보다는 걱정을 해준다”고 했다.

한 발로 목발을 짚으며 무거운 떡 통을 둘러매고 찹쌀떡을 팔더라도 떳떳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삶이 고맙다고 했다.

비록 배움이 짧고 장애가 있더라도 역경을 이겨내며 당당하게 삶에 맞서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이 탓으로 돌리며 느즈러지려는 마음에 정신이 번쩍 났다. 이 나이에도 나에게 깨달음을 준 인생의 스승이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그중에 선한 사람을 가려서는 그를 따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을 가려서는 잘못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학교에서 가르침을 주며 우리 인생길을 인도해주는 스승뿐만 아니라 인생 여정에서 만나 인연을 맺는 모든 사람이 우리 스승이 될 수 있다. 좋은 사람에게선 훌륭한 점을 배우고, 나쁜 사람에게서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니 모두가 스승이 된다. 

이 사회에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거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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