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7] 나도 문인?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7] 나도 문인?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6.07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글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을 통칭해서 ‘문인’(文人)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렸을 때 ‘문인’(文人)이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근접하기 어려운 비범한 사람들의 집단이라 생각했다. 노천명 시인의 ‘사슴’에 나오는 ‘관이 높은 족속’이란 표현에 떠오르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문인들의 글이나 시를 감상하기보다는 시험과 대학 입시를 위해 분석하고 해석하며 공부했기 때문에 아마 더 어렵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미려하고 깊이가 있으며 울림을 주는 글을 접할 때마다 문인들의 작품 세계는 ‘넘사벽’으로 여겨졌다.

‘문인’이라는 울타리는 너무 높아서 쉽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지만, 나는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수줍은 처녀처럼 남에게 들어내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동경하며 울타리 너머로 들어가고 싶어 했었다. 

한창 민감하고 감성적이었던 사춘기 때에는 왠지 있어 보이고 싶고, 책을 가까이하는 문학 소년으로 보이고 싶은 철없는 생각에 제대로 끝까지 읽어 보지도 않는 ‘창작과 비평’이나 ‘문예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또한 ‘문학’이란 매개체를 핑계 삼아 이웃 여학교 학생들과 그룹 미팅을 했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제사보다는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해찰하다 보니 한두 번 모임을 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었지만 내 생애 최초의 문학 모임이었다.

교회 활동 모임에서 적은 내 글을 보고 소질이 있다고 덕담해 준 선생님의 칭찬이 늘 가슴 한구석에 상장처럼 자리 잡고, 틈날 때마다 슬몃슬몃 펜을 들도록 부추겼다. 

그래서 문학이라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감성이 풍부했던 사춘기 학생으로 끙끙 속앓이를 해가며 여분의 노트에 시답잖은 글을 적었다 지우고, 끄적이다 찢어버리곤 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검색해 보면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조언과 서적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보려는 생각도 못 했고 마땅히 도움받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되는 대로 자신과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무언가 끄적이며 적는 것이  좋았고,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차용해서 연애편지에 끼워 넣어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짓도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운동부에 가입하는 바람에 문학과는 멀어지게 되었고, 대학교에서는 연극을 하며 주어진 역할에 빠져들어 살다 보니 차분히 앉아 글을 읽거나 쓰는 일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졸업 후 직장 생활, 결혼, 자녀 출산 및 교육 등 자기보다 자녀들과 가족을 위해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노사연의 ‘바램’ 가사 일부) 보니 글쓰기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 하는 사치처럼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다시 글쓰기를 떠올리게 된 데는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나이가 된 덕분도 있지만, 더 구체적인 계기는 역설적으로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로 인해 하던 강의도 끊기고 시간이 많이 남게 되자 책상에 앉아 책을 잡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고, 책을 읽으면서 꺼져버린 줄만 알았던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다시 살아났다. 

내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생각에 응모한 ‘한국수필 공모전’에 뜻밖에 상을 받으면서 과분하게도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고, 그렇게 높아만 보이던 ‘문인’의 길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지난주에는 문인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다. 아산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아산 문학’ 62호 발간 기념행사에 초대받아 참석한 덕분이다. 

한국문인협회 아산지부에서 발간한 ‘아산 문학’ 62호에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고(故) 이어령 선생 1주기 추모 특집 글과 아산에 거주하거나 아산을 통해 문학 활동을 하는 문인들의 시, 동시, 수필 등이 담겨 있고, 아산에 거주하는 다문화 여성들의 작품도 포함된 게 눈길을 끌었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아산 문학’지 발간을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한 내외 인사들 소개와 인사 말씀 그리고 시상식이 있었고, 2부에서는 시 낭송 시간을 가졌다. 

내가 아산 문예지에서 등단한 것이 아니고 서울에 있는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으로 등록된 지도 얼마 되지 않고, 아산문인협회와는 교류가 없다 보니 초대해 준 지회장과 사무총장만 낯이 익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문학을 사랑하고 글을 쓴다는 공통 분모가 있어서인지 자리가 아주 어색하진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아산에 거주하고 있으니 아산문인협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어물쩍대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직함에 걸맞은 자격과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직함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비록 등단했어도 아직은 ‘문인’이라 불리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누구나 ‘글 쓰는 이’는 될 수 있어도 ‘글 쓰는 이’ 모두를 문인이라고 부르는 데는 어폐(語弊)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문인의 울타리가 높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애면글면하며 쓰는 걸 보면 나는 ‘문인’은 커녕 ‘글 쓰는 이’라고 불리는 것도 과분할 따름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