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8] 반려견(伴侶犬) 선미와의 이별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8] 반려견(伴侶犬) 선미와의 이별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6.13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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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지난주에 우리 집 반려견 선미가 지상 소풍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나이가 많아서 조만간 우리 곁을 떠날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았는데 떠나기 며칠 전부터 간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때가 됐음을 알려줬다. 가족들도 비로소 이제 그때가 왔음을 받아들이고 화장실이 아닌 거실에 흔적을 남겨도 나무라지 않았다.

선미는 떠나기 전날에도 외출했다 돌아온 나를 문 앞에서 맞아주면서 자기 소임을 다했다.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리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떠나는 날 아침에 선미는 마치 마지막 뒷마무리하듯이 평소와 같이 화장실에서 흔적을 남기고 힘이 드는지 방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안아서 거실에 데려와 아침을 주었지만, 그렇게 맛있게 먹던 사료와 간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집에서 병치레하셨던 아버님은 식구들이 없는 사이에 조용히 숨을 거두셨고, 어머님은 우리가 뉴질랜드에서 모시다가 한국 누님 집에 가 계시는 동안 돌아가셨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임종 순간도 함께한 경험이 없는데, 반려견 선미가 떠나는 모습은 지켜보았다.  

선미의 마지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로 누워 숨을 쌕쌕거리다 마지막 숨을 쉬고 편히 잠들었다. 생과 사의 순간이 절대 길지 않음을, 그리고 죽음이란 우리 가까이 있고, 죽음 앞에선 인간이든지 동물이든지 같은 생명체일 뿐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반려견들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라고 하는데 선미는 거의 제 수명을 다하고 큰 고통 없이 떠났으니, 사람으로 치면 호상(好喪)이라고 봐야 한다. 

선미와 아버님과의 인연은 어미가 네 마리를 출산했는데 세 마리는 모두 분양되었지만, 선미는 눈이 조금 보기 이상해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려고 해서 아버님이 데리고 오시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보기가 좀 이상했지만, 자라면서 괜찮아졌고 어느 강아지보다 귀엽고 영리했다. 

아버님이 먹이를 주고 잠도 같이 주무시다 보니 선미에게는 아버님이 선호도 1 순위였고 하루 종일 아버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그만두셨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매일 아침 아파트 뒷산을 오르셨는데 대부분 선미가 동행했다. 

같이 산에 가더라도 늘 아버님 곁에 바짝 붙어 아버님과 보조 맞추며 산을 오르는 선미는 산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혹시라도 동행하지 않으면 선미의 근황을 물어볼 정도였다.

아버님이 바깥출입이 뜸해지시면서 선미도 집에서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집 거실에 놓여 있는 아버님 전용 레이지 보이 의자 밑에는 항상 선미가 곁을 지켰다. 의자 밑에 앉아 있다가 의자 위에 오르고 싶으면 아버님이 쳐다볼 만한 거리로 가서 아버님을 빤히 쳐다보며 올려달라고 신호를 준다. 

아버님이 텔레비전에 열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하면 남은 식구들이 애가 타서 아버님께 선미를 봐달라고 하면 그제야 선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의자 옆을 툭툭 치시면 선미는 잽싸게 의자 옆으로 가서 들어올리기 좋도록 몸을 돌려 자리를 잡는다. 의자에 올려놓으면 널찍한 왼쪽 팔걸이가 자기 지정석인 양 배를 깔고 자리 잡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집사람이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식사하세요.”라는 말을 하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제일 먼저 식탁으로 달려와 기다리는 것도 선미였다. 평소에는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며 경계심을 보이는 어머님 곁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은 이때뿐이다. 어머님이 음식을 잘 흘리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부러 음식을 주기도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몇 번 주의 주고 달구쳤더니 꼭 화장실에서 흔적을 남기는 영리한 아이였다. 낮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버님과 함께 잠자러 가기 전에는 꼭 화장실에 들러 볼일 보고 잠자러 들어가는 게 정말 사람과 같았다. 

집 밖에 누구라도 오는 기척이 있으면 우리 식구인지 아닌지를 보지 않고도 귀신같이 알아보고 짖으며 신호를 보내는데, 식구가 왔다는 소리와 손님이 왔다는 소리가 달랐다. 

모르는 손님이 오면 처음에는 경계하며 짖다가, 우리가 반갑게 맞이하고 우리 편(?)이란 걸 알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갑게 다가가 응석을 부리고, 다음에 또 방문하면 알아보고 환영의 꼬리를 흔들었다.

선미와 오래 함께 살다 보니 가끔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조금이라도 자기에 관해 싫은 소리를 하고 있으면 마치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눈치를 본다.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무람없이 뻗대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식구들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환영의 깃발을 흔들 듯 격하게 꼬리를 흔들고 폴짝폴짝 뛰면서 반갑게 맞이해 줘서 반겨주는 가족이 있는 집에 돌아왔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주인의 신분, 성별, 나이, 지위, 재산 정도에 상관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을 보이는 개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짝이 되는 동무인 ‘반려’(伴侶)란 말이 어울리는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반려견 선미가 떠난 자리가 사람이 떠난 만큼 허우룩하다.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과 고통을 겪는 정신적 후유증을 ‘펫 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라고 하는데, 남자들은 친한 친구를 잃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고, 여자들은 자녀를 잃은 슬픔만큼 고통이 크다고 한다.

이러구러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잊히겠지만,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 때 꼬리를 흔들며 폴짝폴짝 뛰며 반가워하던 모습, 조금이라도 음식 먹는 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달려와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 모습을 다신 볼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최고의 교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상의 소중함이다. 매일 나가는 산책, 매일 먹는 밥, 밥을 먹은 후 함께 조는 시간, 함께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이 행복함을 알게 해준다.” (리타 레이놀즈, ‘펫 로스, 반려동물의 죽음’ 중에서)

한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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