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등화가친(燈火可親)과 독서광 김득신(金得臣)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등화가친(燈火可親)과 독서광 김득신(金得臣)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9.21 0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은 밤에 등불을 켜고 글을 읽던 시절에 생긴 말로서 흔히 가을이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므로 독서를 권장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공자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표현은 원래 '벗을 얻기 위해 깊게 알아보지 않고 가깝게 하려 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등화가친의 의미는 가을밤은 시원하고 상쾌(爽快)하므로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읽기에 좋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고대 중국의 문인 한유(韓愈)의 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을을 일컬어 등화가친지절(燈火可親之節)이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책을 읽는 일은 낮이 아니라 밤에 할 일(晝耕夜讀)이었다고 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그걸 책과 친하다고 바로 말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밝힌 등불과 가까워지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수명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죽고 나면 전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문서'라는 것이 개발되면서 인간의 역사는 180도 바뀌게 된다. 인간의 지식을 문서로 저장하면서 수 천 년 전의 역사, 종교, 과학 등 수많은 정보를 계승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개인이 아무리 고생해도 얻을 수 없는 응축된 지식과 경험을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좋은 책의 저자는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도 많이 한 자기 분야에 내노라 하는 지식인이 인생을 살면서 얻은 최고의 지식과 경험과 인사이트들을 압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많은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책 한 권으로 몇 년을 아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또한 책을 읽으면 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창의력과 사고력을 늘려주고, 정신적 노화를 늦춰주며, 공감 능력을 제고(提高)하고, 어휘력을 향상(向上)시킬 수 있다. 또한 개인의 품격과 국격을 높일 수도 있고 국가발전의 바탕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 실태를 살펴보면 조금 부끄럽게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2022. 1. 14.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19세 이상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2021년 국민 독서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 독서 실태는 2년에 한 번(홀수년)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20.9.1.~2021.8.31)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7.5권)에 비해 각각 8.2%포인트, 3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며, ‘오디오 북’ 독서율은 4.5%로 2019년에 비해 1%포인트 소폭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우리나라의 선진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길은 독서 강국이 되는 것인데 독서 통계를 보면 암울해지는 마음을 제어하기 어렵다.

독서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살펴보면 지독하고 놀라운 독서광을 발견할 수 있다. 
"재주가 다른 이에게 미치지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짓지 말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에는 이루었다.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의 묘지명에 새긴 글이다.

조선 숙종 시대 문신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 1604-1684)은 둔재로 태어났으나 끝없는 노력으로 당대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인정받았다. 독서광(讀書狂) 김득신은 묘지명을 미리 지어 독서 의지를 다졌으며, 쉬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진주대첩을 이끌었던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 조선 중기 시인이자 다독가로, 번번이 과거시험에 낙방했던 그는 59세라는 늦은 나이에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아둔하다고 하며, 수없이 반복하여 책을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김득신(金得臣)은 자못 엽기적인 노력가다. 지능지수가 절대로 두 자리를 넘지 못한 것이 분명한 그는 평생을 두고 잠시도 쉬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역대 시화(詩話) 속에는 믿기지 않는 그의 둔재(鈍才)와 무식한 노력이 전설처럼 돌아다닌다. 한 사람의 인간이 성실과 인내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한번 척 보고 다 아는 천재도 있고, 죽도록 애써도 도무지 진전이 없는 바보도 있다. 정말 대단한 것은 진전이 없는데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 바보다.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을 뚫기가 어려울 뿐, 한번 뚫리게 되면 크게 뚫리게 된다. 한 번 보고 안 것은 얼마 못 가 남의 것이 되지만, 피땀 흘려 얻은 것은, 평생 내 것이 되게 마련이다.

김득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쓴 ‘독수기(読数記)’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의 지극한 독서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읽었을까? 의심마저 들기도 한다.

사기의〈백이전(伯夷伝)〉은 10만 1천3백 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伝)〉․〈분왕(分王)〉․〈벽력금(霹靂琴)〉․〈주책(周策)〉․〈능허대기(凌虚台記)〉․〈의금장(衣錦章)〉․〈보망장(補亡章)〉은 2만 번을 읽었다. 

〈제책(斉策)〉․〈귀신장(鬼神章)〉․〈목가산기(木仮山記)〉․〈제구양문(祭欧陽文)〉․〈중용서(中庸序)〉는 1만8천 번,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송수재서(送秀才序)〉․〈백리해장(百里奚章)〉은 1만5천 번, 

〈획린해(獲麟解)〉․〈사설(師説)〉․〈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남전현승청벽기(藍田県丞庁壁記)〉․〈송궁문(送窮文)〉․〈연희정기(燕喜亭記)〉․〈지등주북기상양양우상공서(至鄧州北寄上襄陽于相公書)〉․〈응과목시여인서(応科目時与人書)〉․〈송구책서(送区冊序)〉․〈마설(馬説)〉․〈후자왕승복전(朽者王承福伝)〉․〈송정상서서(送鄭尚書序)〉․〈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후십구일부상서(後十九日復上書)〉․〈상병부이시랑서(上兵部李侍郎書)〉․〈송료도사서(送廖道士序)〉․〈휘변(諱辨)〉․〈장군묘갈명(張君墓碣銘〉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 

〈용설(竜説)〉은 2만 번 읽었고, 〈제악어문(祭鱷魚文〉은 1만 4천 번을 읽었다. 모두 36편 621,500번을 읽었다고 한다. 

이 외에 ‘장자莊子’ ‘사기史記’ ‘대학大學’, ‘중용中庸’ 등도 많이 읽었는데 횟수가 1만 번을 채우지 못하여 독수기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독서 횟수는 까무러칠 듯 놀랍기만 하다. <36년간의 독서일기, 백곡(栢谷)의 독수기(読数記)>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는 데서 뜻이 꺾이고,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느라 학업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데서 작은 성취도 하지 못하여 실패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김득신은 젊어서 아둔하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독서에 힘을 쏟았으니 그 뜻은 지고(至高)하다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천 번, 만 번씩이나 읽고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자신의 마음을 올곧게 지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김득신을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정신은 벤치마킹할만하다. 

이번 가을에는 길어지는 밤에 등불을 가까이하여 저마다 꼭 읽고 싶었던,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밀쳐 두었던 책 몇 권 꺼내 읽으며, 등화가친(燈火可親) 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