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명절에 생각나는 애주(愛酒)의 변(辯)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명절에 생각나는 애주(愛酒)의 변(辯)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9.2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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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명절이 다가오면 애주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때를 기다린다고 한다. 산처럼 쌓여있는 좋은 안주와 술이 넘쳐나니 그 마음 어찌 설레지 않겠는가? 벌써 올 추석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술에 대한 단상이 저절로 떠 오른다.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는 그의 시(詩) '화류(花柳)'에서 "하늘이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않게 하려면 꽃과 버들이 피지 말도록 하여라"라며 '신이 주신 선물'인 술을 예찬하고 있다. 술이란, 알코올 성분이 1% 이상 들어있는 모든 기호 음료를 총칭한다.

기원전 4,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트루키에) 유역의 고대 수메르인들이 포도주를 처음으로 만든 이래, 술은 우리 인간들에게는 최고의 음식 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벗도 없이 홀로 마신다.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 비쳐 셋이 되었네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이요, 주선(酒仙·술의 신선)인 이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 달빛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의 한 구절이다. 

이백의 주찬시(酒讚詩)인 ‘홀로 술을 마시며(獨酌)’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天若不愛酒) 
술별은 하늘에 없었을 것이고(酒星不在天)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地若不愛酒)
술샘이 땅에서 솟아날리 없도다(地應無酒泉)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했거늘(天地旣愛酒)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게 하늘에 부끄러운 일인가?(愛酒不愧天)
청주는 성인에 비유했고(已聞淸比聖)

탁주는 현자에 비했나니(復道濁比賢)
성자와 현자를 이미 마셨거늘(聖賢旣已飮)
하필 신선 되기를 바랄까 보냐(何必求神仙)
석 잔 술에 대도에 통하고(三杯通大道)
한 말 술에 자연과 합치하니(一斗合自然)
단 취중의 즐거움을(但得醉中趣)
술 깬 사람에게는 전하지 마오(勿謂醒者傳).

이 시는 소위 애주가의 궤변이자 술의 덕을 찬양하는 주덕송(酒德頌)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다'고 했으니, 애주가로서 이보다 더한 '술 예찬론'은 동서고금을 다 뒤져도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술이란? 술은 정직한 친구라 마신만큼만 취한다. 한번 만난 친구도 한 잔술을 주고받으면 좋은 친구가 되고 잔소리조차 콧노래로 들리게 하는 착한 물이다. 

할 일이 없는 백수도 한잔하면 백만장자가 되고 내일 삼수갑산에 갈망정 마시는 순간만큼은 최고의 기분이 된다. ‘사흘에 한 번 마시면 금이요, 밤에 마시는 술은 은이요, 낮에 마시는 술은 구리요 아침에 마시는 술은 납’이라고 탈무드에 나오는 경고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팔만대장경에는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들의 어머니"란 구절이 있다. 마시면 신나서 시름을 잊고 행복한듯한 술! 어울려 한잔하는 재미에 흥을 돋우는 촉매제이다. 뉘라서 음주를 탓할 것인가? 술은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 약도 되고 독도 되고, 즐겁기도 하고 우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권주(勸酒)는 하되 강요하지 말고 지나치게 오버해서는 안 된다. 능력에 따라 건강에 맞추어 적당히 마시면 삶의 윤활유가 되고, 정을 나누고 대화를 즐기며 우정을 나누면 된다. 서로 격려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절제와 품위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마시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 노년에 마시는 황혼주(黃昏酒)가 독(毒)이어서는 안 된다.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생명수가 되게 절제와 자중함이 으뜸임을 인식하고 즐기면 좋을 것이다.

술에 취하면 1단계는 신사 / 2단계 예술가 /3단계 도사 /4단계 건달 /5단계 신선(?)이고, 술의 양으로, 1병은 이 선생(이사장) /2병은 이형 /3병은 여보게 /4병은 어이~ /5병은 야! 임마 /6병은 이놈아 웃대가리면 다냐? /7병은 파출소행 /8병은 병원 응급실행 /9병은 산소호흡기 부착 사망 직전이 될 수 있다.

사장은 여자에 취해 정신이 없고, 전무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고, 부장은 눈치 보기에 정신이 없고, 말단사원은 빈 병 헤아리기에 정신이 없고, 술집 마담은 돈 세기에 정신이 없다고 한다.

얼큰히 취하는 사람이 최상의 술꾼이다. 술은 최고의 음식이고 최고의 문화이며, 술은 가뭄 속에 내리는 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진흙 속에 내리면 진흙을 어지럽게 하지만, 옥토에 내리면 그곳에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월요일은 월급 타서 한잔, 화요일은 화가 나서 한 잔, 수요일은 수금해서 한잔, 목요일은 목이 말라 한 잔, 금요일은 금주의 날이라서 한 잔, 토요일은 토하지 않게 한 잔, 일요일은 일하지 못해서 한 잔, 술잔을 비울 시간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다. 

술 속에는 많은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 술은 사람의 거울이다. 술잔 아래는 진리의 여신이 살아 있고 기만의 여신이 숨어 있다. 술 속에는 우리에게 없는 모든 것이 숨어 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다가온다. 

공짜 술만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은 공작 /술만 마시면 얼굴이 하얀 사람은 백작 /홀짝홀짝 혼자 술을 즐기는 사람은 자작 /술만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을 홍작이라 한다나.

술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사랑은 개인의 자유를 빼앗아 버릴 수 있다. 술은 우리를 왕자로 만들기도 하고 사랑은 우리를 거지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까닭이 있어 술을 마시고 까닭이 없어 술을 마신다. 그래서 오늘도 마시고 있는 애주가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온다. 또한 청명해서 한 잔, 날씨 궂으니 한 잔, 꽃이 피었으니 한 잔, 마음이 울적해서 한 잔, 기분이 상쾌해서 한 잔, 첫 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두 잔술은 술이 술을 마시고, 석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하니 절제하며 마셔야 한다. 

천국의 계단이 필요한가? 바로 술 마시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호주가(好酒家)들이 말한다. 누구나 술을 마시게 되면 곧잘 솔직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 솔직함이 좋아서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밤 뒷골목 포장마차의 목로에 앉아 고기 굽는 희뿌연 연기를 어깨로 넘기며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낭만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멋과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술이란? 한낱 음식이요, 배설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한 잔의 술에, 웃고 소리치는 술자리에서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한 개인의 출세와 영화를 누리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지금껏 많이 보아왔다. 

주객은 주유별장(酒有別腸:술 마시는 사람은 창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라는 말도 있다. 술에는 성공과 실패가 담겨있으니 ‘술 보기를 간장같이 보라고 한다. 놓지도 말고, 털지도 말고, 카 소리도 내지 않는 ’노털 카‘로 마시면, 한 멋이 더 살아나기도 한다.

인생의 강의실은 술집이고, 고전학 강의실은 막걸리집이요, 서양학 강의실은 양주집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자유와 즐거움을 논하는 좋은 자리를 만드는 습관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술을 마시면 반드시 대리운전을 불러야 한다. 음주운전은 나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적으로 추악한 인간이 되기가 십상이니 술을 사랑하는 애주가는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음주운전을 하는 애주가는 술 마실 자격이 없다. 자칫하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대리 운전비 몇만 원 아끼려다 패가망신하는 일은 없어야 함을 꼭 기억해야 한다.

지금 이 술은 술이 아니라 /불로초로 빚은 약주이오니 /이 술 한잔 드시고서 /유한한 인생 즐기며 살다 가오./ 백 이십 년(알파 에이지) 삶을 누리세요.

다가오는 한가위 긴 연휴에 술을 즐기되 술에 취해서 사고 치지 말고, 유쾌하게 애주(愛酒) 하는 밝고 건강하고, 행복한 명절을 맞이하시기 바란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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