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토인비의 21세기 예측과 대한민국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토인비의 21세기 예측과 대한민국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10.1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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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1975년에 사망한 영국 출신의 세계 최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는 총 12권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역작으로 20세기를 움직인 책으로 평가된다. 

‘클리프턴 패디먼’이라는 유명한 작가는 20세기에 발간된 모든 책 중 다음 100년간 계속 읽힐 것이 확실한 단 한 권의 책은 바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 책은 구상에서 완결까지 무려 40년이나 걸렸으며 집필에만 27년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토인비’ 역사관의 총체이며 문명의 백과사전이다.

‘토인비’는 1973년 1월 1일에 진행된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21세기에 세계가 하나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 중심은 동북아시아일 것이며, 그 핵심 사상은 한국의 ‘홍익’사상이 되어야 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세계는 온갖 위협과 국가 간의 다툼으로 물든 이 세상이지만, ‘홍익정신(弘益精神)’이라는 사상이 바탕이 된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동북아시아에서 핵심 세 나라를 든다면 한국, 중국, 일본을 들 수 있는데, 이 세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21세기를 주도해 갈 것인가는 한. 중. 일 3국의 역사를 세계사와 조망하여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는 문화를 수용 융화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나라가 주도해 왔다는 사실이 역사에 나타나 있다. 세계의 3대 문화를 든다면 단연 불교(佛敎), 유교(儒敎), 기독교(基督敎) 문화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세계의 3대 문화가 동북아 삼국에서 발전하여 온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나라가 가장 융화와 창조를 잘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세계 3대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래 된 역사를 살펴보면, 불교는 AD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전진의 고승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수되어. 급속하게 발전하여 호국불교로서 민간신앙으로서 그 뿌리를 깊게 심었다. 

3천 리 방방곡곡에 절 없는 곳이 없으며 나라를 지킨 의지의 표현인 팔만대장경은 불교 토착의 백미라 할 수 있으며, 석가모니 부처의 정통맥(대승불교)을 이어왔다는 불교계의 자부심 또한 큰 것이다.

유교의 전래 또한 AD 372년에 고구려에서 유교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설치한 이래 크게 발전을 거듭하여 이 땅의 생활관습으로 정착되었으며, 그 사상이 한 번도 배척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은 문화혁명 당시 공자의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 1966년 11월 28.29일, 이틀 연속 10만여 명이 ‘곡부’에 모신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큰 현판을 떼어내고, 공자의 무덤을 깎아서 평평하게 했으며, 봉건 제왕의 공덕을 기리는 묘비와 흙으로 만든 공묘 상을 부수어 버렸다. 

공부, 공묘, 공림에서 모두 천여 개의 비석이 부서지거나 넘어졌고, 6천여 개의 유물이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으며, 10만여 권의 서적이 불타거나 휴지로 처리되었다. 5천여 그루의 오래된 소나무가 벌채되었고, 2천여 개의 무덤이 도굴되었다. 

1979년 공자묘가 다시 복원될 때, 하드웨어는 그들이 복원하였지만, 소프트웨어는 우리나라 성균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는 공자를 모시는 향교가 전국에 산재해 있으며 유교의 본고장이라는 중국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의 정신문화를 지배해 왔다. 

기독교는 1784년 2월 이승훈(蔓川 李承薰, 1756~1801)선생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것을 효시로 볼 수 있는데, 기독교가 이 땅에 전파되어 불과 239여 년이 지난 지금에 전무후무한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세계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견할 정도로 성장했다. 

교회의 숫자와 교세의 성장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또한 세계의 전쟁은 종교전쟁으로 점철되어왔으나, 우리나라에는 종교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종교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이런 3대 문화가 동북아 3국 가운데서 가장 크게 융화 창조 발전되어온 우리나라가 ‘21세기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더 크게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동북아 3국의 가치관을 비교해 보면, 한국, 중국, 일본 어느 나라이든 충효의(忠孝義)의 가치관을 다 가지고 있지만 3국의 그 으뜸 가치관이 확연히 구분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지향성의 순위가 크고 작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충(忠)이 강한 나라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조직과 국가를 위해 종종 할복자살하는 사실을 자주 목격한다. 이러한 현상은 충이 일본에서의 으뜸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의(義)가 그 으뜸 가치관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의리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관계가 좋지 않고서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이 실증되고 있다. 

그 유명한 삼국지(三國志)에서 도원결의를 한 유비, 관우, 장비의 형제 의리는 대단하다. 그러나 그 의리 때문에 싸워서는 안 될 전쟁을 하다가 촉(蜀)이 먼저 망하게 되는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효(孝) 사상은 중국과 일본 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으뜸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부모와 조상을 섬기며 하늘을 크게 우러러 섬겼던 것은 ‘효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토인비’는 한국의 ‘효 사상’에 대해 설명을 듣고 눈물까지 흘리며 이는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며 서양에도 ‘효 문화’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오늘날 많이 약화 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효(孝) 사상’은 우리들의 생활에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나라를 천손민족(天孫民族)이라 하는 바탕에는 그 뿌리가 효(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토인비’는 이미 단군(檀君)의 건국 이념인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정신에 대해서도 굉장히 깊은 연구와 관심을 표해 왔으며, 세계의 많은 학자와 지도자들은 인류 미래의 유일한 통치 사상으로 ’홍익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주장을 했다. 

그만큼 인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종교 문화 사상 철학과도 부딪힘 없는 유일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경제의 비약적 성장, 동서 문화의 융합과 재창조 등이 고르게 발전하는 나라가 3국 중에 우리나라가 단연 앞서있다.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경제법칙에서 문화 법칙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효 사상‘의 가치와 ’홍익정신‘이 문화 법칙의 중심가치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할 수 있다. ’토인비‘의 예측은 결코 결코 어긋나지 않을것이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리더와 리더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활동하는 리더들의 행태가 비관적으로 관찰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근심과 걱정거리가 된 지가 오래되었다. 

1997년 6, 25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는 IMF가 찾아왔을 때 미국에서 발행되는 ‘월 스트리트 저널’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12월 12일 기사에 “한국 경제의 위기는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 한국의 리더십은 달러보다 더 고갈(枯渴)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무척이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던 기사 내용이었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어느 구석을 둘러봐도 진정한 리더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힘든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정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 경제, 행정, 기업, 군인, 각급의 사회계층 등 어느 한 군데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지도자의 롤모델이 될 만한 진정한 리더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과 같이 무기력하고 총체적으로 비틀거리는 이유는 리더를 자임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으나 리더의 자질을 제대로 갖추고 행동하는 리더가 보이지 않으며, 리더십을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올곧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가 부재한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경쟁의 새로운 원천이 되는 창조성, 감성, 도덕성, 포용, 지식, 문화와 같은 가치 창출 능력과 그런 자질과 행동력을 갖춘 리더와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피터 드러커’ 교수에 의하면 “많은 개발 도상국들이 경제개발이 부진한 이유는 자본 기술, 원자재 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는 리더와 그 리더의 리더십에 기인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따라서 자원의 효율적 관리는 자질 있는 리더와 뛰어난 리더십이 조직과 사회발전의 요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국민의 기본 의무마저도 저버리는 병역기피, 당연히 내야 할 세금 탈세 등, 의무는 멀리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도덕적 해이와 말 따로 행동 따로 책임회피와 자기 이익 추구를 위한 야만적 리더십(Brutal Leadership)이 판을 휩쓸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그런 리더십을 실천에 옮기는 지도자, ‘차갑고 냉정한 두뇌’와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가슴’을 가지고 ‘미덥게 실’천하는 행동력을 지닌 그런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 땅에 사는 모든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더불어 사는 도덕적이고 나눔과 공유를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나라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사상’으로 ‘토인비’가 예측한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로 발전할 것이다. 그것이 한낮 꿈이 아님을 증명하는 책임은 당연히 우리의 몫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사이에듀 평생교육원 교수
 •한국 생애설계연구소 소장 
 •한국 생애설계포럼 대표(경영지도사, 평생교육사, 생애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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