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9] 변신(變身)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9] 변신(變身)
  • 편집국
  • 승인 2022.02.15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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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어느 날 아침, 잠을 자고 있던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시작되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젊은 세일즈맨인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등껍질이 딱딱한 갑충으로 변했다는 충격적인 전개로 시작하고 있다.

물론 인간이 벌레로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카프카는 그런 발상을 통해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실존적 위기감을 나타내려고 했다.

이와 같은 충격적이고 비사실적인 변신은 아니더라도 우리도 살아가면서 각자 환경과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살게 된다. 

몇 해 전에 한 평범한 할아버지가 전국 노래자랑 프로에 출연했다. 지긋한 연세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점잖게 안경까지 쓴 할아버지가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른다고 했을 때 섹시하게 부르는 손담비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어떻게 그 노래를 소화할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를 불식시키듯 얼굴에 미소를 지어가며 천연덕스럽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춤사위를 보이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자신의 ‘미쳤어’를 불렀다. 이 한 번의 출연으로 할아버지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1943년생이니까 올해 만으로 79세가 되신 지병수 할아버지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반지하에 살던 평범한 할아버지에서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방송 출연 이후 그 해에만 방송국이며 신문사, 잡지 등 대략 150개 매체와 만났고, 전국 각지의 행사장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하면서 하루 20통이 넘는 섭외 전화를 소화하기 위해 그를 돕는 매니저도 생기고 10여 편이 넘는 광고까지 찍은 시니어 스타가 된 것이다.

사업 실패와 조카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살고 있던 아파트도 날리고 월셋집에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로 남은 인생을 후회 속에 살 수도 있었지만, 70세 중반을 넘긴 나이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면서 이젠 기부도 하고 봉사도 다닐 만큼 유명 유튜버가 되어 화려하게 변신한 삶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성공적인 변신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노숙자들의 사연을 다룬 탐방 기사에서 지금은 노숙자로 전락했지만, 전에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잘 나가던 사업가이었거나, 같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전력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업 실패나 잘못된 선택으로 원치 않은 모습으로 어쩔 수 없이 변신하게 된 경우다.

모두의 인생이 이처럼 드라마 같은 변신이 일어나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배우라는 직업은 매력적인 것 같다. 여러 배역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삶을 살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대학 시절 연극을 전공하면서 여러 배역을 맡아 다양한 변신을 했던 적이 있다. 나의 첫 무대 데뷔는 1학년 때 선배들이 하는 연극에 친구와 함께 스카우트(?)되어 교도소 간수로 출연한 것이다. 

단지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뽑혀 대사 한 마디 없는 간수로 변신하여 무대에 선 이후로 독립투사, 장군, 왕자 그리고 리어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로 변신하여 잠시나마 다른 환경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배우가 맡은 역할로 제대로 변신하려면 자신이 맡은 배역다워야 한다. 왕은 왕다워야 하고, 걸인 역할을 맡은 사람은 걸인다워야 한다. 아마추어 연기자는 모방에 그치지만, 명연기자는 그 역할에 자신을 일체화시켜 그 배역답게 연기한다. 

내가 20대 중반의 나이로 늙은 리어왕 역할을 맡았을 때 외모는 분장하고 수염을 붙여서 나이에 맞게 변신할 수는 있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젊어서 리어왕답지가 않았다. 

그래서 연습 마치고 혼자 남아서 대학극장 뒤쪽 마당에서 목소리가 쉬도록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건너편에 있는 기숙사에서 미친놈 소리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덕분에 목이 쉬어 제대로 된 늙은 리어왕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역할로 변신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자녀라는 역할로부터 시작하여 학생, 직장인, 남편과 아내, 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 변신해 나간다.

연극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그 배역다워지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과정에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때마다 그 역할을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인답게, 그리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철없다든지 성숙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작년에 외모에 변신을 꾀하는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강남에서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가 내 머리에 정형화된 2대 8 가르마를 없애고 내 머리를 몇 번 만지니 내가 보기에도 훨씬 젊어 보였다. 거기에다 내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색깔을 입힌 다른 스타일의 옷을 차려입으니 생경하긴 해도 확실히 젊게 변신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다시 원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외적인 변신은 오래가지 않는다. 내적인 동기화를 이룰 때 진정한 변신을 한다.

인생 여정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지 그 역할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 역할다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때 우리는 매순간마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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