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9] 논어(論語)를 쓰고 보니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9] 논어(論語)를 쓰고 보니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4.11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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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두툼한 논어 서적을 접하고 이걸 언제 쓰나 했는데 마침내 끝마쳤다. 달을 넘겼지만, 정확히 말하면 매일 쓰질 못했으니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온양 향교에서 주최한 논어를 베껴 적는 논어 필사(筆寫) 행사에 온양 향교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부설로 있는 서예 교실 회원들에게도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바람에 시작한 일이다.

참여자들에게 세로로 길게 줄 쳐진 필사용 한지 공책 한 권과 붓글씨처럼 쓸 수 있는 붓펜 한 자루와 논어 문장을 복사한 인쇄물을 나눠주었다.

인쇄물에는 뜻풀이도 없이 한자만 잔뜩 적혀 있어 책방에 가서 여러 논어 해설집을 살펴 보고 중국과 조선 역사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집필도 하는 오세진 작가의 책을 구입했다. 

서예를 배우고 있지만, 세필(細筆)은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글씨로 줄에 맞춰 세로로 한자를 적은 일이 쉽지 않았다. 또한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들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며 적는 일이 처음에는 고역스러워 끝까지 마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런 탓인지 중간에 손들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여럿 나왔다.

직접 쓴 논어 필사본

하지만 한 장 두 장 쓰다 보니 조금씩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세필도 시나브로 요령이 생겨 글이 다듬어졌고 줄 한가운데 맞춰 쓰려고 애쓰다보니 집중하게 된다.

그동안 논어는 필요할 때만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보고 인용만 해오다 이번 기회에 필사하면서 맘먹고 책을 정독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

논어는 기원전 551년에 중국에서 태어난 공자(孔子)가 그의 제자 및 위정자들과 나눈 대화를 펴낸 책이다. 정치에 관한 부분도 있지만, 개인의 인격 수양에 관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인용될 만큼 많은 사람에 의해 회자하고 있다. 이 책은 공자 사후에 제자들 또는 그 제자의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논어는 학이(學而), 위정(爲政), 팔일(八佾), 이인(里仁), 공야장(公冶長), 옹야(雍也), 술이(述而), 태백(泰伯), 자한(子罕), 향당(鄕黨), 선진(先進), 안연(顏淵), 자로(子路), 헌문(憲問), 위령공(衛靈公), 계씨(季氏), 양화(陽貨), 미자(微子), 자장(子張), 요왈(堯曰)로 모두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만만찮은 분량의 기록을 필사하면서 나눠준 한지 공책이 모자라서 추가로 10장을 더 얻어 나중에 책 제본을 다시 했고, 붓펜도 8개나 바꿨다. 

내가 펜이 다 닳도록 써본 경험은 50이 넘어 법 공부할 때 시험 준비를 하면서 처음 해보았는데, 고희를 앞둔 이 나이에 다시 경험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붓펜은 오래 쓰면 글씨가 흐려지는 것뿐만 아니라 펜 끝이 뭉그러져서 가는 글씨를 쓸 수가 없어 바꿀 수밖에 없다. 논어 필사를 하면서 이런 물리적인 대가를 치른 거뿐만 아니라 집중하여 쓰면서 ‘몰입’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몰입’(flow)이란 말은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주장한 이론으로 머릿속의 생각과 목표, 행동 등 모든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는 상태를 말한다. 

몰입의 특징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몇 시간이 한순간처럼 짧게 여겨지는 ‘시간 개념의 왜곡’ 현상을 경험하고, 몰입하게 되면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 혹은 흐르는 물에 온몸을 내맡기고 자유롭게 떠내려가는 편안함을 연상시키는 의식의 최적 경험을 하게 되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최고의 행복감을 맛볼 정도의 몰입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붓글씨를 쓸 때 느끼곤 하는데, 글자 한 자 한 자에 집중하여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게 되고,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런 몰입에서 오는 감정을 고스란히 논어 필사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논어 필사는 칙센트미하이가 주장한 몰입의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몰입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몰입하려는 과제가 자기 능력에 비해 너무 어려우면 수행 과정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좌절감에 빠져서 결국 포기하게 되고, 반대로 자기 능력에 비해 너무 쉬우면 권태감에 빠져서 이 또한 결국 그만두게 된다고 하면서 적당한 선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논어 필사 작업은 나에게 이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과제였고, 내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당한 목표였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었고 필사하는 시간 내내 행복할 수 있었다.

행복의 길은 단순한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더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면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작업을 하면서 나는 행복을 맛보았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 첫 장 학이(學而)편 첫 문장 중에서-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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