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2] 보신탕의 추억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2] 보신탕의 추억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7.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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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올해는 6월부터 무더위가 시작되어 삼복더위란 말이 무색해졌지만, 그래도 이번 주에 초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있는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일러 삼복(三伏)이라고 하는데, 초복은 하지(夏至)로부터 단오, 소서에 이은 세 번째 경일(慶日)이고 중복은 네 번째 경일 그리고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보통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런 해이다. 삼복 기간은 한해 가운데 가장 더운 때이기 때문에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를 일컬어 ‘삼복더위’라는 표현을 쓴다.

복날에는 수박, 참외와 같은 제철 과일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보신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었다. 

과거에는 개장국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기운을 보양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해충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 행위의 일환으로 개를 잡았고 삼복 일을 그날로 잡아 액운을 막은 것이다. 또한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팥죽을 먹기도 한다.

세시 풍속으로는 복날에 목욕하면 몸이 여윈다는 속신 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하지 않고 어른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계곡에서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하며 더위를 이겼고, 여인들은 복날 계곡물에 머리를 감으면 풍이 없어지고 부스럼이 낫는다고 하여 머리 감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물맞이’라고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한국에서는 주로 초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본다. 뉴질랜드에서 살 때는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끼어 있는 절기는 나름 찾아 먹었지만, 한국과 같은 무더위가 없기 때문에 따로 복날을 잡아 몸보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한 날짜에 따른 계절도 한국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한국의 복날은 뉴질랜드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대로 된 한여름을 맞이하고 삼복더위를 실감하면서 복날을 챙기기 시작했다. 장인어른을 모시고 함께 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장인어른이 원하시는 메뉴를 따라가다 보니, 누구에겐 혐오 식품으로 여겨지는 보신탕을 주로 먹게 된다.
 
내가 보신탕을 먹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지방에서 지낼 때였다. 그것도 외국 친구 덕분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방에 살 때 아마 진주였다고 기억되는데, 외국 친구들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자고 하면서 특이하게도 보신탕을 먹자고 하길래 나는 당연히 농담이라 생각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했다. 하지만 보신탕으로 유명한 식당까지 검색하여 제안하는 게 사뭇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이었다. 

한국 사람인 내가 한 번도 보신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의아해하면서 믿지 않으려고 했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먹는 한국 음식인데 한국 사람인 나는 싫다고 하고, 외국 친구들은 먹자고 하는 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따라가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 일행이 식당에 들어갔을 때 식사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쳐다보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8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지방에서는 외국 사람을 보는 것도 드문 때라 외국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신기했을 텐데, 그 신기한 외국 사람들이 보신탕집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용감하게 자리 잡고 주문은 자연스럽게 내가 하게 되었다. 탕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기대에 부풀어 들떠있는 외국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안절부절못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처음 마주하게 된 보신탕은 일단 보기에는 육개장처럼 보여서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유명한 맛집이어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맛도 괜찮았고 선입견 없이 모르고 먹으면 누구나 무난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외국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모두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은 것뿐만 아니라 다음에 또 축하할 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며 다시 먹자고까지 제안할 정도로 좋아했다. 

그중 한 친구는 자랑삼아 미국에 있는 부모님께 보신탕 먹은 경험담을 써서 보냈더니 어머니로부터 장장 여섯 장이나 되는 장문의 답장을 받았다. 요약하면 한국에서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하고 문화를 배우는 것은 좋지만, 개고기를 먹는 것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의 우려가 담긴 장문의 편지에 대해 걱정하는 나에게 친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경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보신탕을 안 먹는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 먹었다고 얘기하지 않겠다고. 당연히 우리는 기념할 만한 특별한 날에 다시 보신탕을 먹으러 갔고 그 친구의 편지에서 보신탕 얘기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개나 닭고기는 따뜻한 성질이 있어 여름철 더위로 안이 차가워져서 위장 기능이 약해지고 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보신탕을 먹는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을 정도로 애호가는 아니고, 더구나 반려견을 키우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보신탕보다는 삼계탕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닭고기를 싫어하시는 장인어른 때문에 올해 복날에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보신탕 집 문을 두드리게 될 것 같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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