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9] 친구에게 가는 길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9] 친구에게 가는 길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6.20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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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뉴질랜드에 살 때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뜻이 마음에 들어서 집에 걸어 놓은 액자가 있었다. “The way to friend’s house is not far away”라고 번역하면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는 말이다. 아마도 고국에 두고 온 친구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에 이 글이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이 글에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가는 길이 아무리 멀어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오는 친구를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로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학이(學而)편에서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주에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했다. 강릉에서 대학교수로 있다가 정년퇴직한 친구가 설악산 오색 약수터에 자리 잡은 오색그린야드호텔을 예약하고 1박 2일 일정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대면 모임을 하지 못하고 SNS를 통해 서로 안부만 주고받았기에 일정이 허락되는 친구들은 반갑게 초대에 응했다. 

공지는 배재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오고 태권도와 유도부 활동을 했던 친구 몇몇이 함께하는 단체 카톡방에 올라왔다. 단톡방에는 총 10명이 있었지만, 한 친구가 암으로 재작년에 일찍 떠나는 바람에 9명이 되었다. 

그중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은 뉴질랜드에 있었고, 두 명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내가 먼저 한국에 돌아오고 또 다른 뉴질랜드 친구도 지난달에 영구 귀국해서 미국에 거주하는 두 친구만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다. 그래도 단톡방을 통해 수시로 소통하고 한국 방문 때는 꼭 모두 모여 시간을 갖는다.

친구 초대에 응한 사람은 외국에 있는 친구들 빼고 부부가 같이 오기로 한 친구 포함해서 모두 5명이었지만, 만나기로 한 바로 전날 부부 팀 중 아내가 코로나 확진을 받는 바람에 함께하지 못하고 결국 3명만 가기로 했다.

요즘 코로나 여파로 지방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 여러 곳이 문 닫았다는 소식을 얼마 전 접해서 혹시나 하고 아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보니 강원도 방면 노선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안내 직원을 찾아보았지만, 매표 창구는 모두 폐쇄하고 무인 매표기가 설치되어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창구에서 물어보면 전국 어느 지방 도시든지 시간과 요금을 척척 알려주던 친절한 매표 창구 아가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강릉이나 양양까지만 오면 목적지까지 함께 갈 수 있다고 해서 버스 노선을 알아보니 서울까지 가서 갈아타야 하므로 요금도 그렇고 시간도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보다 배 가까이 걸려서 하는 수 없이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어 보니 고속도로를 타면 3시간 40분이 걸리고 국도를 이용하면 4시간 10분이 걸리지만 국도로 가는 게 거리가 더 짧게 나왔다. 따분한 고속도로보다 아기자기하고 옛 지방 도시 풍경도 볼 수 있는 국도를 선호하기도 하고 30분 정도 차이는 괜찮을 거란 생각에 국도를 타기로 했다. 

뉴질랜드 살 때 대여섯 시간은 어렵지 않게 다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요 몇 년 동안 가까운 거리만 다니고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았고 허리 통증으로 한 달여 고생했음을 간과한 것이 실수였다. 

‘친구 집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4시간이 넘는 운전 길은 생각보다 지루했고 힘들었다. 한국에서의 장거리 운전은 도로 사정이 더 좋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뉴질랜드에서 운전할 때보다 더 힘이 들고 피곤하다. 

아마도 뉴질랜드에서는 푸르른 자연과 청명한 하늘을 보면서 운전하고 거리에 차도 많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양평에서 잠시 쉬면서 점심을 해결하고 술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편육을 한 접시 사 갈까 하다가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마음을 접었다. 나중에 모임을 준비한 친구가 간식거리로 떡, 닭강정, 과일, 과자 등을 잔뜩 준비한 것을 보고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마음만 전했다. 

지루하고 멀기만 느껴졌던 운전 길은 설악산 입구에 접어들면서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양옆이 숲으로 둘러싸인 구불구불한 길도 운치가 있었고 눈 앞에 펼쳐지는 기암절벽이나 물 맑고 소리도 청량한 계곡은 물장구치며 놀던 아련한 추억까지 소환하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인천 친구 역시 연결하는 교통편이 만만치가 않아 자가용을 몰고 왔고, 서울 사는 친구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는 바람에 두 시간이나 기다려 시외버스를 탔다고 하는 데 그리 많이 늦지 않고 모두 무사히 모였다. 

작년에 인천 친구 모친상 때 문상가서 만난 친구도 있지만, 함께 얼굴을 보는 것은 햇수로 3년은 된 것 같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처럼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죽마고우들은 몇 년이 지나 만나도 마치 엊그제 본 사이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고 자연스러운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박사 학위를 받은 교수 친구, 한국과 미국에서 사업하는 친구, 학교 교장 또는 공무원 출신 친구 등 다양한 배경이 있지만, 만나면 시쳇말로 ‘계급장 떼고’ 학창 시절에 어울렸던 그때 친구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체면이나 명예, 신분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인디언들에게 친구란 ‘내 짐(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라는 말처럼 친구와 만나면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걱정거리도 스스럼 없이 털어놓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화 소재도 다양하고 끊임이 없고 흥겹다. 오랜만에 산행하고 온천도 해서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젊은 노친네들의 수다는 자정을 넘겨도 끝날 줄 몰랐다.

거리상의 이유로 또는 개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에겐 유감이지만, 우리들은 남은 인생에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많은 의미를 담아 “너무 좋다”라고 말하니 “그럼 다음에 또 오자”는 친구의 말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더니 비수가 되어 꽂힌다. 과연 우리가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 십중팔구 ‘다음에’라는 약속은 공약(空約)이 될 수 있는 나잇대를 살아가기에 지금 이 순간 하나하나를 모두 마지막인 양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의 만남이 각별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생각해 보니 역시 친구에게 가는 길은 결코 멀지 않았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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