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0] 아버지로 산다는 것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30] 아버지로 산다는 것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6.27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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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어둑어둑 해질 무렵 집으로 가는 길에
빌딩 사이 지는 노을 가슴을 짠하게 하네
광화문 사거리서 봉천동까지 전철 두 번 갈아 타고
지친 하루 눈은 감고 귀는 반 뜨고 졸면서 집에 간다
아버지란 그 이름은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그냥저냥 사는 것이 똑같은 하루하루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리고 캔 맥주 한잔
홍대에서 버스 타고 쌍문동까지 서른아홉 정거장
운 좋으면 앉아가고 아니면 서고 지쳐서 집에 간다
남편이란 그 이름은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나훈아, ‘남자의 인생’)

지난주 일요일은 미국에서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었다. 한국에서는 아버지 날과 어머니 날을 하루에 담아 퉁 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따로따로 기념하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뉴욕배재총동창회 단톡방에 아버지 날이라고 자축하면서 들어 보라고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얼마 전 M 방송국에서 ‘보이스 트롯’이란 제목으로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에 중년 남자 다섯이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이란 노래를 부른 동영상이었다. 

이전에도 나훈아가 부른 노래를 들으면서 공감이 가서 좋아했었는데, 가사에 걸맞은 나이의 중년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감정을 넣어 부르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해지면서 울컥해졌다.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들도 스스로 감정이 올라와 울컥하면서 담담하게 때론 울먹이며 부르는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청중들은 기립하여 손뼉 치며 화답해 주었다. 노래를 들으며 모두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말은 ‘어머니’라는 말보다 울림이 덜 한 것처럼 여겨진다. 어머니들이 자식을 몸속에서 키우고 낳는 생물학적 관계로 인해 자식과의 관계는 그 어느 관계보다 끈끈하고 밀접하며 무조건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식 사랑에 관해서는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더 지극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전에 뽀빠이 이상용이 진행하던 군 장병들과 함께한 프로그램에서 장병들을 울리는 하이라이트는 역시 어머니가 깜짝 출연하여 장병과 상봉하는 장면이었다. 

연출자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출연이 더 감동적이고 자극적이라는 걸 알기에 어머니를 모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생물학적 우위를 가진다면 아버지는 사회학적 우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라는 역할은 큰 울타리와 같다. 가족들이 울타리 안에서 세상의 위협과 도전에도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고 지키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 

히브리어로 ‘아버지’라는 단어에는 ‘한 집의 힘’이란 의미가 있다고 하듯이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이 아니라 늘 든든한 아버지임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라고 해서 울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으로 삼킨다. 전쟁터라고 불리는 사회에서 살아남고 호시탐탐 딛고 일어서려는 경쟁자들과 거친 호흡 몰아쉬며 싸우고 지친 걸음으로 집에 오더라도 늘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다. 

하청호 시인은 ‘아버지의 등’이란 시에서 이렇게 아버지를 대변했다.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수명이 길지 않은 것도 이런 아버지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아버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체면이나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남들에게 잘 털어놓지 못한다. 

술이나 담배 등 건강에 좋지 않은 방법으로 풀려고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 끙끙 앓다가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쌓여서 질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되기는 쉽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아버지가 되더라도 자식들이 닮아가고 싶은 아버지가 되거나,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자식들에게 아버지다운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국제 시장’이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덕수는 아버지 사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독백한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언젠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아버지 품에 안겨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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